국립현충원에 이렇게 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이하 친일파)가 묻혀 있을 줄이야 누가 제대로 알았으랴.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이 불철저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 사실상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처벌하지 못해 좌절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옳을 것 같다 - 그것의 명확한 현주소를 우리는 이 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를 통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책은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4.19국립묘지, 효창공원에 안치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2020년 올해 광복회장 김원웅의 8.15 광복절 기념사로 촉발된 논란은 대한민국 친일파 청산의 현실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이정표였다. 광복회장의 발언 중 현충원과 관련된 부분은 국립묘지에서 친일파의 묘를 이장할 것인지, 만약 이장을 안할 경우에는 묘지에 친일행적비를 세우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런 내용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 찬반을 물었더니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의 2/3가 넘는 인원이 찬성했고,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미래통합당도 과반수 넘게 찬성했으니 올해 법개정을 기대해 본다는 것이었다.
책을 통해 확인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의 면면은 놀라웠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등재된 '국가 공인 친일파'가 너무도 많았다. 특히 만주의 항일무장부대 토벌에 앞장섰던 간도특설대 출신의 인물들(김백일, 송석하 등)과, 일본 육사 졸업 후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던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한 인물들(이응준, 신태영 등)이 국립현충원에 독립지사들과 함께 묻혀 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실이다. 그것도 친일파의 묘가 독립운동가의 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거나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위치라니!!!
흔히 회자되는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공연히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안동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 씨의 말은 너무 서글프고 가슴 아팠다.
"이상룡 지사의 후손인 이항증 선생은 많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그랬듯 그 역시도 어린 시절 고아원에 갈 정도로 어려웠다. 언젠가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밝힌 적이 있는데, 그는 "나 사는 모습 보면 누가 애국하려고 할까 싶냐"면서 "잘사는 애국지사 후손들이 (언론에) 나와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니까 국가가 보호해주는구나' 하고 애국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107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