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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스케치 -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그곳
박윤정 지음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스위스에 대한 여행책은 국내엔 몇권 없다. 그나마도 한번 스쳐지나가는 지점이나 휴식의 공간으로만 언급될 뿐, 스위스 얘길 온전히 담아낸 책은 스위스 가이드북이 전부일 정도였다. 물론 인터넷을 두드리면 스위스에 대한 온갖 여행정보들이 튀어나오지만, 그보단 아날로그적인 책의 형태로 야금야금 읽어내려가고 싶었다. 여행이란 행위자체가 너무나 아날로그적인 외유니까 말이다. 사실 스위스란 나라에 대해서 여행책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유명한 유적지나 전시관이 있는것도 아니고, 대표적인 음식이 있는것도 아니라 여러모로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는 세네개정도 혼용해서 쓰지, 물가마저 전세계에서 손에 꼽힐정도로 비싸니, 편히 경치구경하며 쉬고 오겠단 목적이 있지 않는 이상 굳이 스위스로 여행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만 나는 스위스에 가고 싶었고, 스위스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최고치에 달했을 무렵 우연히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스위스의 굵직한 도시들을 11개의 지역으로 묶어서 소개한다. 개중엔 제네바나 취리히처럼 유명한 도시들도 티치노처럼 생전 처음들어보는 낯선 지역들도 있었다. 익숙한 도시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반가웠고, 처음 알게된 도시들에선 그들이 주는 신선함에 가슴이 설레였다. 중립국이라는 스위스의 특성 때문에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머물렀다는건 알고 있었으나 그들 중에 오드리 햅번이나 아인슈타인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다. 어렸을때 분명히 아인슈타인 위인전기도 읽었으면서 난 왜 아인슈타인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건지. 그들이 머물렀던 카페나, 집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것도, 그들과 교류했던 사람들이 생생히 남아서 그들을 추억하고 있다는 모든 것들이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게 바로 스위스란 나라의 원동력인 것 같다. 지나간 이들을 추억하고 그들에게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하는 것, 그러면서도 현재와의 합리적인 조화를 찾는 것. 이런 스위스 인들의 모습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깨끗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와 노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인터라켄에 올라가 스위스의 원동력을 몸소 체험해 볼날이 올까? 그리 멀지 않은 때에 그날이 오면 좋으련만.
개인적으로 여행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글솜씨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한쪽이 보완해주면 되는데, 이 책은 서로 보완해주질 못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성격과 타겟이 분명치 않다. 책 속의 사진도 온전한게 별로 없다. 스위스 스케치라는 제목처럼 책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에 일러스트를 그려놓아서 온전한 사진으로도 일러스트로도 감상하기가 애매하다. 그냥 딱 작가의 포트폴리오 책이란 느낌이다. 그렇다고 글이 좋은것도 아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어딘가에서 한번쯤 들어본듯한 전형적인 표현들로 글을 이쁘고 교훈적으로만 풀어간다. 지금이 90년대도 아니고, 언제까지 여행책을 읽는 내내 우리 자신과 우리 나라를 거국적으로 반성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자기 자신의 여행기를 풀어내는것도 아니고, 여행 가이드북에 실릴법한 전형적인 소개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이 책은 애매모호하다. 여행 책이라기엔 여행자로써의 이야기가 별로 담겨있지도 않고, 가이드 북이라기엔 여행지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부족하고, 작가의 에세이나 포트폴리오라기엔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독일어권 지역이라지만 생 모리츠를 장크트 모리츠라고 할건 뭐란 말인가. 보통은 생 모리츠라고 부른다는 설명을 붙여줬다면 내가 갸우뚱하며 인터넷으로 검색해볼일도 없었을텐데, 이 책은 이런 친절마저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스위스 여행이란 갈증을 해소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긴 했다. TV로 꽃보다 할배를 틀어놓고 이 책을 읽는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였다. 하지만 이 책의 다른 여행 시리즈들까지 읽어보고 싶진 않다. 만약 다음번에 다시 책을 또다시 출판하게 된다면 그때는 온전한 사진과 온전한 일러스트를 가득넣는 쪽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은 최소한 진심을 담아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쪽으로 하고. 빌 브라이슨의 책이 왜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읽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나는 정말 이 책을 읽는 내내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 생각났다. 단언컨데 스위스 부분은 고작 서너장 밖에 되지 않음에도 발칙한 유럽산책이 이 책보다 더 나았다. 빌 브라이슨, 그대는 정말 여행꾼이자 이야기꾼이였구료. 그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절감하게 된건 유감입니다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