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도서관에 있길래 냉큼 빌려 왔다. 책 겉표지를 벗긴 상태로 내 손에 들어왔는데, 제목이 한땀한땀 실밥으로 꼬맨듯한 느낌으로 쓰여있다. 얼핏보면 마치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였다처럼 보여서 동생에게 할머니가 킬러라고 말하며 낄낄거렸다. 물론 책의 내용은 내 착시와는 전혀 무관하다. 할머니가 킬러시긴 커녕 캐나다의 평화로운 평야 한복판에서 그저 꾸벅꾸벅 졸기 바쁘시니까.

 

이 소설은 화자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과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소설적이면서 에세이적이고 사색적이며 철학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됐다. 이 책보단 아홉살 인생 쪽이 같은 메세지와 비슷한 구성이라도 훨씬 좋았다. 이건 단순히 시대와 배경과 국적의 거리감에서 오는 느낌만은 아니다. 이 소설의 문체와 구조가 이미 세월을 너무 지나버린 탓이다. 덕분에 난 이 소설에서 빨간머리 앤을 읽을 때 받았던 느낌을 고스란히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절을 배경으로 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문체와 구조가 어딘지 모르게 지루해서 이미 빛바랜 느낌을 말이다. 

 

이 책엔 총 4개의 단편이 실려져 있는데, 그 이야기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차곡차곡 진행되기 때문에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도 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첫번째 단편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를 읽고서 이 책을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만약 두번째 단편인 노인과 아이도 첫번째 단편과 비슷했다면 고민하던 마음을 깨끗이 접고 이 책을 그대로 덮어버렸을거다.

 

두번째 단편이 마음에 들었던 건 내용보단 단편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소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몹시 무더운 한여름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와 노신사의 차림에 뒤질새라 이쁜 원피스를 차려입은 소녀가 기차를 타고 푸르른 호수로 향하는 모습이란 내 상상력과 가슴에 불을 지폈다. 너무 귀엽고 깜찍하지 않은가. 이야기 속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군중들이 많았다는 묘사가 있는걸 보면 아마 작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어디선가 느껴본게 분명하다. 자전적 에세이니만큼 본인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세번째 단편 이사와 네번째 단편 알타몬트를 지나는 길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마 노인과 아이에 설정을 빼고 이야기 자체로만 본다면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로 세번째 단편 이사를 꼽았을 거다. 전체적인 이야기구조나 동화처럼 보이는 결말도 좋았다. 알타몬트를 지나는 길은 첫번째 단편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와 상응을 이루는 이야기이자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라 이 책을 꾸욱참고 끝까지 읽은 보람을 맛볼 수 있었다.

 

역자후기를 읽다보니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가 아쉬워할점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을 멋지게 번역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후기를 읽고노라니 이 책의 답답한 문체가 역자의 탓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던게 머쓱해졌다. 그렇지만 이 책이 간직하고 있는 시절에 대한 기억들은 마음에 들었고 그 시절의 정취를 조금이나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가브리엘 루아가 내 생애 아이들의 저자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뜻밖의 수확이였다. 내 생애 아이들을 읽을때까지 가브리엘 루아에 대한 평가는 미뤄놓으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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