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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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박쥐를 드디어 읽게 됐다. 그동안 해리 홀레 시리즈를 워낙 재밌게 읽기도 했고 첫번째 작품이 웬만큼 성공하지 않고서야 시리즈가 장기간 길게 이어지기 힘든 만큼 해리 홀레 시리즈의 탄생작인 박쥐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해리 홀레 프리퀄은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고 어설프기도 했지만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는동안 느껴졌던 공백을 마침내 찾아 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럽기도 했다. 요 네스뵈는 박쥐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통제 불가능한 느낌이 좋아서 유일하게 반복해 읽는 작품이라고 언급하는데, 나는 번역본으로 접해서 그런지 몰라도 해리 홀레의 통제되지 않는 매력은 최근작들에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박쥐는 번역자가 기존 시리즈와 달라서인지 데뷔작 특유의 어설픔 때문인지 전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노말하고 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접하기에 딱 적당할 만큼.

 

해리 홀레 시리즈의 시작은 특이하게도 해리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노르웨이가 아니라 호주에서 시작한다. 책 속에선 호주를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표기해서 지명이 언급될때마다 오스트리아랑 계속 헷갈렸고 덕분에 책 속에 등장하는 호주사람들이 해리 홀레를 해리 홀리(Holly)라고 착각하는 것에 절로 공감됐다. 해리는 짜증내다가 체념해 버렸지만 나는 끝까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표현이 거슬리고 헷갈렸다. 어쨌거나 박쥐에 등장하는 해리는 호주사람들이 홀리라고 부르는게 납득이 갈 만큼 시리즈 전체를 통털어 가장 젊고, 밝고, 덜 머러저리스럽다. 아, 물론 술을 안 마셨을때에 한해서. 술이 들어가면 젊은 혈기만큼이나 시리즈 전체를 아울러 가장 머저리스러움을 보여준다.

 

길게 이어지는 시리즈들일수록 캐릭터의 성격이나 전체적인 완성도가 붕괴되는 경향이 있는데 해리 홀레 시리즈 역시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해리가 박쥐에서 자신이 과거를 털어놓으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면 최근 시리즈에선 아예 호주에서 사귄 여자친구에 대한 후회라던가, 박쥐에서 밝힌 본인으로 인해 사망한 동료에 대한 죄책감 등은 한번도 표출하지 않는다. 마치 모든게 삭제되고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 그래서 박쥐를 읽으며 해리에게 몹시 실망했다. 아마 이런 것이 시리즈를 역순으로 읽는 부작용 중 하나인것 같으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역주행 할수록 해리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가는게 사실이다. 물론 사람이 평생을 애도하며 죄책감만으로 점철된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모든 계기가 된 술을 끊을 수는 있는게 사람 아닌가. 해리는 맨날 알콜중독 유전자 탓만 하는데 프리퀄까지 읽은 이상 이제는 그냥 핑계로만 들릴 뿐이다. 노르웨이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리 홀레, 이쯤 되면 중2암 말기가 틀림없다.    

 

나는 해리 홀레 시리즈를 통털어 등장한 여성 캐릭터 중 이 책에 해리의 여자친구로 등장한 비르기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용감한 그녀가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도 계속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해리와 함께 점점 성장하며 해리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의 퇴장이 참 아쉬웠다. 파란 눈의 붉은 머리칼을 지닌 비르기타를 상상할 때면 디즈니의 인어공주 에리얼이 생각나 그녀가 더 마음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수족관으로 바다를 꿈꾸며 사랑하던 그녀가 자신의 사랑인 해리를 위해 다 내던진 것까지, 그녀는 인어공주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진짜 인어공주가 아니듯 해리도 그녀를 구해줄 수 있는 왕자님이 아니었기에 해피엔딩을 맞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덧없이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였으니 안타까웠다. 비르기타 외에도 박쥐에서 해리의 가장 큰 조력자였던 앤드류나 레비도 인상 깊었다. 그 둘의 모습에 북유럽의 시니컬함을 더하면 현재 해리의 모습이 될 것만 같아, 앤드류가 그렇게 가버리고 해리가 울어버리는 순간만큼은 해리가 짠했다. 

 

박쥐의 바로 다음 작품 레드브레스트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요 네스뵈는 역사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작품의 배경이 되는 호주와 노르웨이의 역사적 배경을 사건의 주요원인이자 갈등요인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레드브레스트 이후 요 네스뵈는 한참의 고민 끝에 본인이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는 하드보일드이자 스릴러 쪽이라는 것을 깨닫고 현재 시리즈의 모습으로 굳혔다고 하는데 만약 처음 요 네스뵈의 의도대로 시리즈가 쓰여졌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랬다면 현대판 인디아나 존스 같은 시리즈가 됐으려나. 요 네스뵈의 이야기꾼 기질이라면 잘 맞아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시리즈도 기대하며 해리 홀레가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오길 바래본다. 하지만 안 그럴거라는거 안다. 짱구아빠는 발꼬랑내가 나야 제맛이듯, 해리 홀레도 알콜 중독이여야 제맛일테니까. 이쯤되면 중독된게 해리인지 나인지 헷갈릴 정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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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다 이야기 - 요리 교실 사람들의 인생 일화
나카가와 히데코.선현경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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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인 주부가 요리 교실을 운영하며 맺은 인연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한국생활 20년에 요리교실까지 운영하고 있는 배테랑 주부다 보니, 맺은 인연들도 참 다양하다. 한국땅에 사는 타향살이의 애환을 공감하는 일본인 친구들 부터,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된 학부형들, 한국에 요리교실을 열면서 알게 된 인연, 혹은 요리교실에 필요한 식자재를 조달하다가 알게 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자의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존재인 가족들까지. 인연이 다양한 만큼 각자 품은 이야기도 저자가 만들어내는 요리만큼이나 다양하고 소담하다. 덕분에 블로그에 올라온 일상 포스팅을 읽듯이 가볍고 경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쓰여진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마음에 남은건 종종 언급되는 부모님과의 에피소드들이였다. 꼼꼼하고 성실한 주부인 어머니와 황혼의 나이에 은퇴전까지 정력적으로 일하셨던 프랑스 요리사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드문드문 튀어나올때마다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부모님도 저자의 부모님처럼 지금까지 열심히 자식들 보면서 살고 계시니까. 새삼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국경도 시대도 초월하는구나, 그리고 자식은 몇살을 먹던간에 부모님 앞에선 언제나 어린 아이에 불과한거구나, 싶었다. 부모님이 길가에서 자식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저자가 한국에 거주한지 20년이 되었으니 한국어와 한글에 능통할테고 당연히 이 책을 직접 집필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고 나니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대체 뭘까, 고민하며 몇장쯤 읽고났을 무렵, 내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나는 다른 일본 에세이 번역본 어투같은 느낌의 글이 나오리라 예상했던 것인데 그러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이다. 그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은 이런식으로 글을 쓰는구나라는 선입견이 나도 모르게 생겼었나 보다. 평소엔 번역투가 싫다고 투덜댔었것만. MSG에 길들여진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이미 MSG에 중독된 몸이지만.

 

고로 일본사람이 쓴 일본 원문 에세이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으로 간접체험 해볼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은 구리하라 하루미의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나나 키친"이란 책들도 원문은 이럴테지,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묘했다. 뭔가 한꺼풀 덧씌워져 있던 환상이 깨지면서 현실감이 들기도 하고. 우리나라 에세이가 번역된 느낌은 어떻게 원문이랑 다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동안 연희동 하면 막연히 연상되는게 두개 있었다. 머리가 반짝거리시는 29만원씨와 서태지. 둘로 인해서 그쪽 동네 치안이 좋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카가와 히데코씨의 요리교실과 그녀의 이야기들이 훨씬 더 선명한 기억으로 추가될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그녀의 요리교실에 슬쩍 가보고, 그녀의 집 근처에 있다는 장인정신 투철한 카페에도 들러보고 싶다. 책으로 하는 간접체험도 나쁘진 않지만 언젠가가 오늘이 되는 날이 오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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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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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씨의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된 건 늦은 밤 우연히 보게 된 TV를 통해서였다.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였는지는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책과 그림에 대해서 얘기하는 프로그램이였던 것과 그때 게스트가 손미나씨였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때 손미나씨는 몬드리안의 그림에 대해서 얘길 했는데, 몬드리안 그림에 얽힌 눈동자 이야기와 그녀의 말투, 태도, 분위기 모든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뚜렷한 주관을 갖고 깔끔하고 똑부러지게 말을 하는 사람의 책을 읽어보는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엔 손미나씨의 책들 중에서 끌리는 책이 없었다. 스페인 여행기는 이미 꽤 세월이 지난 뒤였고, 그녀의 소설책에는 끌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루고 미루다 만난 손미나씨의 책은 바로 이 책이 되어버렸다. 

 

손미나씨의 전작들을 읽지 않았으니 그녀의 여행책이 어떠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을 여행서로 분류한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여행보다는 프랑스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와 첫 싹을 띄운 소설가로써의 고뇌에 방점이 찍혀 있는 에세이니까. 사실 나는 이 책이 손미나씨의 파리 생활기 정도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집어 들었다. 아마도 전작들처럼 여행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에세이겠지, 라고 지레짐작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일부는 내 짐작이 맞았으나 상당부분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녀가 여행작가를 넘어서 소설가로써의 데뷔를 마친, 이제는 어엿한 작가라는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탓이다. 책의 제일 첫 페이지에 써 있는 편집자의 말처럼 그녀의 책은 이제는 어엿한 글쟁이로써의 무게감을 뽑내고 있었고 손미나씨 본인의 성숙한 자아까지 더해져 그냥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책이 되어 있었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중년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여성이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 담겨져 있었다고 하면 손미나씨에게 너무 실례되는 표현이려나.

 

한국인의 정신을 정이라고 한다면 프랑스의 정신은 똘레랑스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이 정신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성향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타인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미나씨를 비롯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프랑스 이주민들은 파리를 몰인정한 도시, 시도때도 없이 흐려졌다가 맑아졌다를 반복하는 날씨처럼 변덕스럽고 정이 안가는 도시라고 말한다. 하지만 똘레랑스의 또다른 정신들은 그들에게 파리가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다는 인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우리네 정이라는 개념도 그렇지 아니한가. 사람냄새가 풍기는 따스한 감동을 줄때도 있지만, 지나친 관심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똘레랑스 정신이 스며들어가 있는 파리 사람들은 비록 손미나씨의 글을 통해 간접체험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참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모두 멋지고 부러웠던 것은 아니다. 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고 또 마음껏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마음껏 사랑하고 본인의 열정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불태울 수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하지만 세계 제일의 화장품 문화와 패션계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본인들은 개성을 중시한다고 하호하는 그들의 모습은 불편했다. 가면 뒤에서 낄낄거리는 것 같은 위선이 느껴졌다. 그들이 진심으로 개성을 중시하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중시한다고 해도, 지금 세계의 단일화된 미적기준의 시발점 중에 한 곳이 파리라는걸 그들도 부정은 못할테니 말이다. 때문에 유일하게 이 책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용으로 화장품 회사 인터뷰 에피소드를 꼽아본다. 한 10년쯤 전에 한국의 획일화된 미의식에 대해 읽었다면 좀더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지만, 허구언날 해외에서 험담하듯 떠드는 내용을 다시 또 손미나씨의 책에서 읽게 된 것은 그저 지루한 뒷담화로 밖에 느껴지지 않아 유감스러웠다.

 

손미나씨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진정한 여행이란 변화를 가져오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문득 예전에 손미나씨가 어느 방송에 나와 스페인으로 떠나게 되면서 자기 인생이 바뀌게 됐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 책에서도 손미나씨는 프랑스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변화된 부분을 자주 언급한다. 내 경우에도 그런 여행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처음에는 그런 여행은 없었던 것만 같았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니 여행을 통해 넓어진 시야라던지, 싸구려 물건은 사지 않게 됐다던지 하는 아주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들이 마침내 나를 다시 여행으로 이끌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내 생각에 여행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바뀔 계기. 변화는 그 이전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새로운 장소를 만나 자신의 변화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책 한권을 통해서도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꽤 많은 영감과 동질감을 줬고, 나의 사소한 부분이나마 변화 시켰으니까.

 

이 책에 한가지(앞서 언급한 화장품 회사 인터뷰를 제외한다면) 아쉬운 점은 책의 후반부분에 교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손미나씨는 이 책에서 소설을 집필할때 뒷심이 부족했다는 것을 슬쩍 언급하는데, 아마 그 뒷심이 이번 책에서도 제대로 발휘가 안된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후반부가 급속히 마무리 된다는 느낌도 있고. 그렇지만 이런 아쉬운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매력적인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손미나씨의 책을 읽는 계기가 된 몬드리안의 이야기를 이 책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반가웠다. 앞으로도 손미나씨가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집필활동을 이어나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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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 ㅣ 라이프스타일 아이콘 Lifestyle Icon 1
구리하라 하루미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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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 정도면 뚝딱 읽어낼 만한 소소한 책에 바라는건 크지 않다. 머리와 마음을 적당히 식히고 주변을 환기하는 것 정도.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내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줬다. 평범한 일상 블로그들처럼 담백하고 소박한 글과 사진들도 그렇고, 책의 아기자기한 구성도 맘에 들었다. 이 책을 눈여겨 보게 된 건 책의 저자 구리하라 하루미가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라는 소개문구 때문이였다. 평소 스스로 살림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남의 살림 얘기를 읽는건 좋아하니까 읽어봐야지 싶었다.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라면 미국의 그녀처럼 곱게 나이를 먹고 있는 중년 여성이 이쁘고 아기자기하게 살림하는 사진과 이야기들이 실려 있겠지 지레짐작하며 책의 표지를 넘겼다. 그런데 이게 왠걸. 중년 여성이 아니라 60대의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를 지닌 여성이 튀어나왔다.

 

책 속의 사진과(얼굴은 거의 찍지 않고 효과적으로 이미지만 살린 사진이지만) 실린 이야기로는 아무리 많이 봐도 50대 중반정도의 여성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청바지에 간편한 줄무늬 티를 입고 짧게 친 커트머리로 이리저리 궁리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60살 넘은 할머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나보다 나이가 2배나 많음에도 나보다 훨씬 더 밝고 긍정적인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실제 나이를 느끼기란 불가능했다. 덕분에 나도 좋은 자극도 많이 받았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지금에도 현실에 완주하지 않고 좀더 맛있는 요리를 연구하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며 늦은 나이에 시작한 영어공부에도 열심히인 그녀의 모습은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완독 후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이란 책 제목을 매일매일 빛나는 일이 가득이란 제목으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구리하라 하루미가 너무나 빛나 보여서가 아닐까. 구리하라 하루미에 대해서 고작 책 한권으로 밖에 접하지 못한 나조차 이러니 오랜 세월동안 그녀를 봐온 일본 주부들이 그녀에게 열광하는것은 당연한 일 같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이효재씨 같은 느낌이려나. 다만 저자가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기성세대다 보니, 전통적인 가치관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점들이 약간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모습들이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키워낸 어머니의 모습이겠지. 나도 우리 엄마처럼 그리고 구리하라 하루미처럼 열심히 매일매일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정말 위대하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고 나도 구리하라 하루미처럼 긍정적으로 즐겁게 다리미질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웃으며 다림질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살림엔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버렸다는 비극적인 사실. 역시 살림도 재능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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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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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자, 우리나라에는 네번째로 출간된 해리홀레 작품이다. 본의 아니게 작품을 역순으로 읽고 있다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번 작품 역시 흥미진진했다. 레드브레스트에서 안타깝게 종결됐던 엘렌 살인사건이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지며 이야기 한축을 담당하는 것도 반가웠다. 비록 엘렌 사건의 해결은 여기저기 힌트들을 남긴 채 다음 작품으로 토스됐으나 오슬로 3부작이라고 일컫어지는 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스타의 큰 줄기가 더욱 탄탄해졌다는 점은 흡족스러웠다. 해리를 갈수록 음울해지게 하거나 사건의 스케일을 키우는 것보다 오슬로 3부작처럼 노르웨이만이 가질 수 있는 차갑고 축축한 분위기를 담은 작품들이 개인적으론 더 마음에 들기 때문에 네메시스도 아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네메시스에서 해리는 젊고 싱싱한 사람 몰골로 라켈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지만 라켈은 아들 올레그의 문제로 러시아로 떠나가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 우리의 해리 홀레씨, 집에서 잠을 자거나 혼자 엘렌 사건을 수사하면 될 것을 누가 남자 아니랄까봐 예전 여자친구를 만나고 다니다 사건에 휘말려 버린다. 그리곤 죄책감에 알콜을 다시 벌컥벌컥 마셔대고,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 찌질한 남자하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최근작에선 알콜중독도 모자라 마약에까지 손을 대며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대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충격이 컸겠거니, 앞선 시리즈들 속에 얽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생각다가 막상 앞선 시리즈의 해리 홀레씨가 최근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민폐쟁이였다는걸 목도하고 나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누가 그랬다. 니가 가는 곳이 늘 헬이면 니가 헬인거라고. 해리 홀레씨, 악당을 잡기 이전에 본인 이성부터 잡아야 하겠어요. 이 화상아.
 
결말부에 이르러 해리가 주인공이니만큼 해리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오슬로 3부작 시리즈의 최종범인을 잡기 위한 첫발을 내딛긴 한다. 물론 엄청 고생하긴 하지만. 아마 다음편에서도 해리가 모든걸 해결하고 엘렌의 복수를 시원하게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알콜쟁이 의지박약 아저씨가 영 못미덥다. 이미 산송장같은 중년을 맞이한 아저씨지만 전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까지 잃을뻔한 했음에도 이 모든 일들의 발단인 술을 아직도 못 끊어냈다는 것에 정말 화가 났다. 이러니 최근작에서 라켈이 떠났지. 작가는 이 모든 원인이 해리 몰래 먹인 마약성분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주지만 그 면죄부 이미 해리가 호로록 말아서 마약으로 피운지 오래 아니던가. 그렇지만 엘렌을 죽인 천하의 나쁜놈이 해리한테 깐죽거리는게 밉살스러운걸 보면 역시 난 해리 편이긴 한가보다.
 
요 네스뵈는 이번 작품에서도 본인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소설 속에 박아 넣으려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보통 추리물들이 여기저기 함정을 파놓긴 하지만 요 네스뵈는 함정이라는 장식을 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할애하는 느낌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는 매번 재밌게 읽고 있지만 다 읽고 나면 그렇게 세세히 설명하고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걸 길바닥에서 줄줄 읇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서 다니진 않으니까. 설마 노르웨이 사람들만 그렇게 사는건 걸까? 해리 홀레 시리즈의 책 두께가 줄어들 가능성은 시리즈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금으로썬 요원한 일이겠만 요 네스뵈가 점차 본인의 글에서 과도한 부분을 덜어내는 미덕을 갖추게 되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욱더 그가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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