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 이야기 - 요리 교실 사람들의 인생 일화
나카가와 히데코.선현경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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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인 주부가 요리 교실을 운영하며 맺은 인연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한국생활 20년에 요리교실까지 운영하고 있는 배테랑 주부다 보니, 맺은 인연들도 참 다양하다. 한국땅에 사는 타향살이의 애환을 공감하는 일본인 친구들 부터,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된 학부형들, 한국에 요리교실을 열면서 알게 된 인연, 혹은 요리교실에 필요한 식자재를 조달하다가 알게 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자의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존재인 가족들까지. 인연이 다양한 만큼 각자 품은 이야기도 저자가 만들어내는 요리만큼이나 다양하고 소담하다. 덕분에 블로그에 올라온 일상 포스팅을 읽듯이 가볍고 경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쓰여진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마음에 남은건 종종 언급되는 부모님과의 에피소드들이였다. 꼼꼼하고 성실한 주부인 어머니와 황혼의 나이에 은퇴전까지 정력적으로 일하셨던 프랑스 요리사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드문드문 튀어나올때마다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부모님도 저자의 부모님처럼 지금까지 열심히 자식들 보면서 살고 계시니까. 새삼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국경도 시대도 초월하는구나, 그리고 자식은 몇살을 먹던간에 부모님 앞에선 언제나 어린 아이에 불과한거구나, 싶었다. 부모님이 길가에서 자식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저자가 한국에 거주한지 20년이 되었으니 한국어와 한글에 능통할테고 당연히 이 책을 직접 집필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고 나니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대체 뭘까, 고민하며 몇장쯤 읽고났을 무렵, 내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나는 다른 일본 에세이 번역본 어투같은 느낌의 글이 나오리라 예상했던 것인데 그러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이다. 그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은 이런식으로 글을 쓰는구나라는 선입견이 나도 모르게 생겼었나 보다. 평소엔 번역투가 싫다고 투덜댔었것만. MSG에 길들여진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이미 MSG에 중독된 몸이지만.

 

고로 일본사람이 쓴 일본 원문 에세이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으로 간접체험 해볼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은 구리하라 하루미의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나나 키친"이란 책들도 원문은 이럴테지,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묘했다. 뭔가 한꺼풀 덧씌워져 있던 환상이 깨지면서 현실감이 들기도 하고. 우리나라 에세이가 번역된 느낌은 어떻게 원문이랑 다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동안 연희동 하면 막연히 연상되는게 두개 있었다. 머리가 반짝거리시는 29만원씨와 서태지. 둘로 인해서 그쪽 동네 치안이 좋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카가와 히데코씨의 요리교실과 그녀의 이야기들이 훨씬 더 선명한 기억으로 추가될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그녀의 요리교실에 슬쩍 가보고, 그녀의 집 근처에 있다는 장인정신 투철한 카페에도 들러보고 싶다. 책으로 하는 간접체험도 나쁘진 않지만 언젠가가 오늘이 되는 날이 오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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