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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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표지에 대한 별다른 인상은 없었다. 빨간 색상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짚이는 구석이 없는 무난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가름선을 이용해 읽은 부분을 표시하려는 순간, 이 책의 표지에 대한 인상이 바뀌게 되었다. 그제서야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가 이 책 그자체의 이미지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또하나의 책에 존재하는 파란 가름선이 이 책에 실제로 존재하는 파란 가름선과 서로 우연일리는 없었으니까. 나는 그제서야 둔하게도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이 책의 제2장을 읽던 중, 이 책의 표지를 우연히 불빛에 비춰보게 되면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 즉 저 파란 가름선 안의 책 이미지에 빛이 닿아야만 보이는 은빛으로 이 책에 대한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이 책의 주제를 이미지로 멋지게 표현한 셈이였다. 

내가 표지에 이렇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씩 그 숨겨진 의미를 깨달아갔기 때문이였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그 4장의 서술방식이 모두 한가지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1장은 1인칭, 2장은 2인칭, 3장은 3인칭, 4장은 여러시점들이 뒤섞인 형태로 서술된다. 그래서 처음에 제1장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의 표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가 내 흥미도 끌지 못했다. 제1장까지만 하더라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평범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제2장을 읽게 되면서부터 이 책의 표지는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미지로 남지 않았다. 제2장부터 이야기는 갑자기 급변하면서 제1장의 이야기는 주인공 워커의 자전적 소설이자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꼭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처럼 말이다. 

이 책은 이런 액자구성과 다양한 시점의 변화 이외에도 작가의 이런저런 실험정신이 묻어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그런 실험정신이 작가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아주 보편적인 방식으로 서술을 하되 거기에 약간의 독특함으로 포인트를 줬다랄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특히 제2장에서 애덤이 그의 어린시절과 그의 요절한 남동생 앤디를 추억하는 장면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정성스런 장치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필요없는 장식으로 보였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 부분들을 과감하게 정리했다면, 이 책에서 그의 간결한 문체가 더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호하다. 결말에서조차도 그것들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다만, 등장인물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진실과 거짓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결국 독자들의 판단에 진실을 유보하고 있는 셈이랄까. 이 책은 제1장에서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중심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제2장부터는 그 사건의 뒷 이야기와 사소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에 드러난 텍스트만으로 사실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제1장을 모두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더 쉬워진다. 하지만 그 텍스트 안에 스며있는 진실을 찾아 해석하는 것은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독자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도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작가인 폴 오스터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개개인이 경험과 받아들이는 입장 등에 따라 각자에게 느껴지는 진실은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란 이런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진실 말이다.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요근래 가장 인기있는 작가중 한명이기에, 그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그와 만날 기회는 자꾸만 미뤄져 버렸다. 그러나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그의 책과도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어째서 그가 이렇게 인기있는 작가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간결하지만, 풍부한 감성을 담은 문체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직 이 책 한권만으로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그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그의 책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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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
그레첸 루빈 지음, 윤동구 옮김 / 고즈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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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사주신 위인전집 덕분이였다. 삽화와 사진이 중간중간에 나오는 40권짜리 전집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칠편은 특히 삽화가 꽤 마음에 들어 종종 읽곤했다. 하지만 당시엔 군인을 거쳐 정치가가 된 사람이 왜 이렇게 위인전집에 나올만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고, 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처칠편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만 몇번씩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책의 뒷부분에 무슨 이야기가 써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처칠의 진면목은 그 정치계 입문 이후에 있었기에 어린날의 나는 알짜만 쏙 빼놓고 읽은 셈이였다. 그래도 그때 처칠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완성 되었으니 그다지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만일 그 어린날의 기억조차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테고, 그랬다면 내가 모르던 처칠에 대한 부분을 보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처칠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제법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처칠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과 부정적인 관점을 모두 게재하며 처칠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자 노력했다. 덕분에 처칠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을 동시에 이해하고 처칠에 대한 내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 갈 수 있었다. 물론 작가자신이 처칠광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객관성을 잃고 처칠의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할때도 있었지만, 그런부분들은 작가의 팬심으로 보고 넘어갔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사진자료들도 좋았고, 한 인물에 대한 전기가 어떤식으로 강조되고 왜곡되는지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이 책 덕분에 처칠을 위대한 위인이라는 존재에서 나와 같은 한 사람이라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알던 처칠은 어린시절의 철부지 처칠과, 나이가 들어 영국 수상자리에 올랐던 처칠 이 두가지의 모습뿐이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사이사이에 있는 처칠을 알게 되면서 꽤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읽었던 위인전기에서는 어느 부분에서도 처칠이 거만하고 독선적이며 명예욕과 야망에 가득차있었으며 인종차별주의자에 사치했던 사람이라고 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위인전기에서 어떤 바보같은 사람들이 그런 내용을 다루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그 간극이 너무 컸다. 내가 기억하는 처칠은 자신의 팔뚝살을 부하의 치료를 위해 떼어줄만큼 용감하고 착한 사람이었으니까.(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그 위인전기 작가의 창작같다.) 게다가 처칠이 그렇게 성격이 괴팍했다는 건 그의 어린시절에 한정된 것일 줄 알았는데! 새삼 세살버른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버릴데 하나 없는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단점은 소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에 최소한 "거만함"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 처칠이 정말 성격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마치 담임선생님들이 되도록 생활기록부에 긍정적인 말을 써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웬만하다면 그의 공을 부각시키고 과는 덮어주려는 것이 전기의 미덕일텐데 오죽하면 긍정적인 전기에서도 부정적인 전기에서도 그런 말들이 계속 따라 붙겠는가. 그런데 그런 거만함에서 나오는 독선과 괴팍함 덕분에 그 자신과 영국의 난국을 타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히틀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독선적이고 괴악한 성격의 사람이 딱 맞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를 통해 상대방의 수를 생각한다랄까? 이렇게 히틀러나 처칠이나 둘다 가까이 가고 싶은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볼 때 위인과 악인은 백지 한 장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인도사람들에게는 히틀러나 인도독립을 끝까지 반대한 처칠이나 똑같을테니,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 조차 안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평범한 한 사람으로써의 처칠은 내가 싫어하는 요소는 다 갖추고 있었지만, 정치인으로써 그는 유능했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이였다. 자신의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조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넢죽 엎드릴 릴 줄 알았고,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의지가 있었다. 그의 귀족 혈통에서부터 비롯된 자존심과 거만함을 생각해볼 때 이런 그의 태도는 꽤 대단하다고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나라의 현실을 봐도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힘있는 자에게는 엎드릴 정치인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안위를 내던질 정치인들은 많지 않지 않은가. 비록 야심에 가득차 있었고, 명예욕에 목말라 있던 처칠이지만 그런 것들을 이렇게 모두 자신의 조국을 위해 쓸 줄 알았던 모습은 그가 어째서 위인전에 오를만한 인물이였는지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처칠같은 존경받을만한 정치가가 한명 나타났으면 좋겠다. 처칠같이 성격이 괴팍하면 좀 곤란할 것 같지만. 

"가장 운 좋은 세대는 동질성을 갖는 세대로서, 한 시대라는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세대다. 반대로 불운한 세대는 두 시대에 걸쳐 있는 세대다" 리턴 스테리이치의 말이다. 이 문장 이상으로 처칠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영광과 그 추억에 대한 믿음을 원동력으로 힘을 얻었지만, 미래를 외면했기에 실각했던 처칠. 그가 한세대에만 머물렀다면 그는 전쟁영웅으로만 기억될수도 있었고, 혹은 실패한 정치가로만 머물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세대를 살았기에 그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를 잊는 시대의 상징이 된 느낌이다. 그래서 탐탁치 않게 느껴지는 그의 인간적인 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가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면 그 당시의 처칠이 처한 환경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처칠의 시니컬한 농담과 재치들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상으로 유쾌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던 그의 저서들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작가로써의 그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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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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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권이 쏟아지는 책들 사이에서 유독 이 책이 내 눈에 띈것은 표지 때문이였다. 딱 보기에도 익살맞아 보이는 타이포와 일러스트는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짐작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앞뒤 표지에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이 책에 대한 칭찬들 역시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쾌한지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었다. 때마침 이런저런 우울한 일들이 겹쳐져 유쾌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이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책을 흝어보던 중 이 책의 작가 존 케네디 툴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깜짝 놀라 버렸다. 자신이 열심히 집필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출판사들에 보내는 족족 퇴짜를 맞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의 지속적인 불화로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다 못해, 1969년 그는 32년의 생을 스스로 끊어 버렸던 것이다. 즉,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버린 셈이였다.  

이런 존 케네디 툴의 이야기에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그렇게 생을 마감한 그의 작품을 불화가 깊었던 그의 어머니에 손을 통해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존 케니디 툴의 사후, 무려 11년동안이나 그의 작품들을 거부했던 세상에 그의 작품을 인정받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펼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아들에 작품은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되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한다. 어쩌면 그의 작품은 그가 살던 시간보다 11년후의 세상에서 더 각광 받을 수 있는 작품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런 집념이 나를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이끌었다. 어떤면에선 이 책 자체의 유쾌한 이야기보다 더 그의 어머니에 아들에 대한 신념과 사랑이 더 마음에 끌리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책이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이 두가지 책의 장점과 단점은 거의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재밌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중점을 둔 유머라는 것, 바로 양키쎈스가 흠씬 배어나오는 유머라는 것이다. 이 특유의 유머가 잘 맞는 사람들에겐 정말 이 책의 소개문구대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이 책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다가오겠지만, 만약 맞지 않는다면 읽는게 정말 곤욕일 것이다. 내 경우엔 반반이였다. 어차피 이 책은 그들에게 제일 잘 통하는 유머와 말잔난을 추구하고 있으니, 그들의 언어인 영어로 읽어야 비로소 제대로 읽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런 내 마음이 썩 애매모호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무한도전을 보는 외국인들이 이런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선 정말 탑쇼프로지만, 외국인들이 보기엔 분명 잘 이해되지 않고, 이상하게 보일테니 말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사방팔방으로 퍼져있고, 서로 이런저런 인연으로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게다가 모두들 쉽게 표현하기 힘든 성격들을 지녔다.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사람은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인데, 그는 정말 비호감의 결정체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며 대체 이런 요상한 주인공을 비롯하여 그 주변 인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야 했다. 결국 나중에는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자고 마음먹어서야 보다 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자체가 너무나 미국적인 색체가 강하고, 내가 향유한 문화와 시대도 공간도 많이 동떨어져 있기에 쉽게 이해하기 힘든 벽을 마침내 인정하고 마음편히 웃어넘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나중에 이와 동시대를 공유한 책들로 보충하면 되리라. 그렇게 속편히 마음먹기로 했다. 

만약 이 책의 저자가 그렇게 급하게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책의 맨 끝부분에서 암시한 것처럼 이 책의 후속작이 세상에 탄생했을 것이고, 이 책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좀더 긍정적이였으리라는 미련이 남기 떄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시작을 맛깔나는 작가의 들어가는 말로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여러모로 존 케네디 툴의 죽음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또한 그의 죽음이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썩 가볍지 않았다. 만약 그가 생존한 작가였더라도 퓰리처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 덕분에 책의 제일 첫장에 있는 추천사를 즐겁고 훈훈한 마음으로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미처 이해하지 못한 미국식 유머의 즐거움 만큼을, 그의 작품을 발굴하고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한 어머니의 모정에서 느껴지는 감동으로 채우며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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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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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이라.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꼬르륵이였다. 배가 고파서 나는 소리가 꼬르륵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배고픔을 다룬 이야기이니, 분명 상큼발랄한 내용은 아닐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펴자마자 이 이야기는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가 대놓고 못을 박으며, 그 먹거리가 귀한시절 추억에 얽힌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지금으로치자면 일종의 불량식품들에 대한 추억들이였는데, 이 이야기들이 은근히 즐거웠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니,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스며나왔다. 지금처럼 모든게 풍요롭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정겨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없는 사람이 어디겠는가만은. 이런 작가와의 동질감들 덕분에 이윽고 나는 르 클레지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에텔이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20살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며,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삶이 모여, 다시 역사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반복되는 잘못된 역사속에서 자꾸만 망각하는 진정한 배고픔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한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만족은 에텔이 처한 궁핍함을 너무나 잘한다. 에텔이 겪은 처참한 식민지배 시대도 겪었고, 그녀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동족상잔의 뼈아픈 전쟁도 겪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야기 속의 그녀가 처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쉽게 공감이 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이야기의 배경인 프랑스처럼 괴로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여 과거로 보내지 못하고,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현실에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더 이 작품이 쉽게 이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들을 무서워한다. 그동안의 내 경험들로 미루어보건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록 내 짧고 비루한 경험들을 토대로 만든 이론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를 하는 것을 보면 꽤 일반화가 된 의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도 쉽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 책에 첫페이지를 넘길때까지 두려움에 휩싸여있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런 내 두려움은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물론 초반에는 주인공의 어린시절에 대한 낭만적이고 살짝은 몽환적이기도 한 묘사 때문에 조금 난해하기도 했지만, 곧 주인공의 사춘기시절이 도래하면서 문장들은 점점 현실적이고 간결하게 변해갔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쉬워지는 문장들 속에 존재하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간들은 뒤로 갈수록 늘어났지만,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이만큼 마음편하고 담백하게 읽을 수 있었기에 나는 몹시 만족했다. 게다가 광풍에 휩싸인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제척으로 무겁지 않고, 오히려 어떤부분에선 담백하기까지 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책의 역자 후기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2004년작 아프리카인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인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재구성한 소설로, 전반적인 주제는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과 거의 비스하다는 이야기에 그 책에 흥미가 동한다. 자고로 고스톱 패도 서로 짝을 이뤄야 점수가 크게 나는 법! 이 두개의 소설이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날지, 그리고 과연 르 클레지오는 같은 주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게다가 이 이야기 전에 집필했으니, 이 이야기에 대한 원형을 거기서 찾을 수 있지도 않을까? 벌써부터 그 미지의 작품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디 그 작품도 허기의 광시곡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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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19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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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만의 신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너무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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