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제목 때문에 읽을까 말까 망설였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는 추천사에 혹해 리처드 매드슨의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읽었다가 잔뜩 골탕 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소설은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그 부분에 대해선 담백했다. 책 제목은 19세기에 나온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서 따왔지만. 역자의 말에 의하면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눈치챘을 법한 재치였을 거라고 하는데, 이런 에피소드를 주워들을 때마다 해당 문화권에 대한 배경지식의 부족이 아쉽다. 우리나라 책을 읽는 외국인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할까.

 

소설은 영국 최남단에 사는 해럴드가 20여 년 전 친구였던 퀴니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영국 최북단까지 1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해럴드가 걷는 이유는 암 말기인 퀴니에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지만, 걷기는 점점 퀴니 뿐만 아니라 해럴드 자신을 위한 믿음이자 구원이 되어간다. 소설은 해럴드와 해럴드의 아내 모린의 챕터가 번갈아 나오며 진행된다. 해럴드의 자아성찰이 씨줄이라면 해럴드와 모린의 화해와 사랑에 대한 재확인은 날줄을 이룬다. 어떤 이야기든 둘의 시선이 합쳐져야 온전한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장을 빨리 넘겨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읽어내느라 가끔은 애가 타기도 했다.    

 

해럴드가 꾸준히 걷는 만큼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계속 바뀌고 스쳐 지나가는 등장인물과 그들이 품은 사연들 또한 다양하다. 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마르티나와 은발의 노신사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임을 알기에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는 관계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낭만이 있는 해럴드와 그들의 인연이 아련하게 가슴에 남았다.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은 사람은 단연코 리치였다. 현실에서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마치 자기가 차린 밥상인 양 너스레를 떠는 사람. 그가 해럴드 대신 모든 일을 해낸 것처럼 거들먹거릴 때는 나도 모린만큼이나 분노했다. 윌프는 하는 짓이 밉상이긴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 리치만큼 싫지는 않았다. 해럴드가 윌프를 끝까지 토닥인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갔고. 사실 내가 가장 속상하고 허무함을 느낀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해럴드의 걷기가 그의 인생에 축약본이었다면 그가 과거에 닿지 못한 개와의 인연을 이제라도 이어가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했고, 인생이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자칫 복잡할 수도 있는 이 모든 요소들은 결국 해럴드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는 상당히 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읽는 속도가 더뎠으나 한번 속도가 붙고 나자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울 정도로 푹 빠져 읽게 됐다. 특히 해럴드 내면과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소설의 탄탄한 구성에 깊이감을 더하고 읽는 재미를 훨씬 배가 시켰다. 영국 문학 특유의 목가적인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오랜만에 밀도 있는 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는 만족감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여운만큼이나 진하게 느껴져 뿌듯했다. 앞으로 작가 레이철 조이스의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문득 배우 윤여정 씨가 TV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60세가 되도 인생은 모른다.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살은 처음이다.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다.
그냥 사는 것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

 

윤여정 씨와 해럴드처럼 60여 즈음에 이르게 되면, 나도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좋은 책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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