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나를 부르는 책

내가 싫어하는 등산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부르는 숲은 나를 웃게 만들었다. 작가인 브라이슨과 그의 친구 카츠가 미국의 애팔레치아 트레킹을 걸으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이 책은 정말로 보기 드물게 재미있는 책이다.

전혀 공통점이라고는 없고 고교 동창일 뿐이었던 그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무사히 그 긴 애팔레치아 트레킹을 종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싹바가지 없는 애런인가 뭔가 하는 여자는 단연코 최고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매 끼니를 국수나 스니커즈로 떼워가면서 그들은 걷고 또 걷는다. 그러나 걸으면서 무슨 큰 각오나 목표 따위는 없다. 간혹 그들이 대체 왜 이렇게 힘든일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때면 인간적인 면마저 느껴진다. 내가 본 여행기들은 너무나 확신에 차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각오가 충만한 인간들이 쓴 것뿐이었으니까.

온통 나무와 산뿐인 트레킹을 걸으면서 간혹 마을에 닿을 때 마다 그들은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침대에 감사한다. 어떤 이들은 무슨 고행이라도 하듯 철저하게 캠프만 하고 배낭에 싸간 음식만으로 버티지만 이들은 마을이 나오면 미련 없이 내려가서 문명을 즐긴다. 특히 카츠는 날짜도 모르면서 X파일을 하는 날에는 귀신같이 알고 시청한다.

책의 처음에는 길을 떠나기 전에 곰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서술하고 있는데 가장 웃기는 부분이다. 그는 각종 곰에 대한 피해사례가 담긴 책들을 사 놓고서는 미리부터 벌벌 떤다. 그 긴 길을 종단하려고 각오했으니 ‘흠. 그까짓 곰쯤이야’ 하고 출발하는 것이 더 어울렸겠지만 그는 자신의 공포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설사 너무 많은 걱정으로 다소 쫌생이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남에게 보이는것에 신경을 쓰거나 아니면 스스로가 정한 목표, 테두리등등 으로 인해서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을 억지로 버티는 사람들을 여럿 봤었다. 과연 그들이 얼만큼의 성취감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뿐인 인생을 너무 참으며 고행하듯 사는 것은 좀 억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두 사람은 함께 애팔레치아 트레킹을 종주하지만 단 한번도 보조를 맞춰서 함께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적이 없다. 왜하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트레킹을 하려고 맘먹었을까 싶은 -그러나 이유 없는 사람치고는 꽤 잘 버텨내는- 카츠가 매번 허덕거리며 늦게 걷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빌 브라이슨은 우리가 상상하듯 친구와 정다운 장면을 연출하며 걸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게는 주인공이 한참을 걷다가 카츠를 기다리고, 한 30분 넘어 모습을 나타내는 카츠는 무거운 배낭속의 물건을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하나 둘씩 여기저기 버리고 와서 브라이슨을 난감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들은 어금니 콱 깨물고 파이팅 외치며 출발한 그 어떤 팀보다도 별 트러블 없이 종주를 마친다. 등산이라면 고개를 흔들던 나도 이쯤 되고 보니 트레킹을 종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단 카츠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착한 친구가 있다면 말이다.

나를 부르는 숲의 가장 큰 미덕은 읽는동안 어느덧 자연스럽게 자연은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책들처럼 자연과 정신이 어쩌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네 마네 하면서 다소 짜증나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인간들의 책을 읽다보면 나만 나쁜인간 같아서 왠지 기분나쁘다.) 끝으로 책이 좀 두터워서 좀처럼 할일이 없는 나 같은 인간도 읽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장담하건데 절대 도중에 그냥 덮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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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검객 2004-10-2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부르는 숲
 
 전출처 : 플라시보 > 하루 두시간의 지옥

아멜리 노통은 삶의 여러가지 지옥을 보여준다. 그 지옥들은 돈도 아니고 일의 힘겨움도 아니다. 아멜리 노통이 그리는 지옥은 대부분 타자에 의한 지옥이다.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지옥이 되는 타인들은 전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의 화장법>에서는 공항에서 마주친 사내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옴으로써 지옥을 만들고 <두려움과 떨림>에서는 직장 상사가 아무리 열심히 일 해도 결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지옥을 보여준다.

<오후 네 시> 역시 타인은 지옥이라는 것을 가장 확실하고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적의 화장법>의 경우 공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나타난 지옥이므로 공항을 벗어나거나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그만이고 <두려움과 떨림>에서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직장을 때려치움으로써 더 이상 그 직장상사가 선사하는 지옥에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오후 네 시>에 등장하는 타인은 집으로 찾아든다. 따라서 그 장소만 피하면, 혹은 일을 관두면 같은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 타인은 그다지 큰 지옥은 아니었다. 오후 네시부터 여섯시 까지만 찾아오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떠들거나 일을 꾸며서 괴롭히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알게된다. 상대방이 이유도 없이 규칙적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것이 얼마나 지옥인지를 말이다. 한동안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는 그를 비꼬기도 하고 골리기도 한면서 은근히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곧 하루 두시간 때문에 나머지 스물 두 시간이 지옥으로 변하는 끔찍함을 겪게 된다.

다른 작품에 비해 <오후 네 시>는 정말 조용하고도 느릿한 공포로 연속성에 의한 공포를 나타내고 있다. 큰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같은시간 찾아드는 미리 예고된 공포는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한방울씩 이마에 떨어지는 물이 한시간이 지나면 바윗덩어리처럼 느껴져서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얘기처럼 아무말 없이 방문하는 방문자는 비록 떨어지는 한방울처럼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바윗덩어리처럼 창대했던 것이다.

여타 작품들과 한가지 다른것이 있다면 공포를 함께하는 대상이 있다는것 (주인공과 그의 아내) 그래서 어떤 형태로건 의논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공포의 요지를 아예 원천봉쇠하는 다소 능동적인 방법을 취한다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고통받던 다른 책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하거나 본인 스스로 정해놓은 선까지 참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보다 강력한 방법을 동원한다.

아멜리 노통의 책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릴때부터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나라를 다녔기 때문에 그녀에게서는 딱히 어느나라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심지어 유럽과 아시아로도 나누기 힘든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써 낸다. 그 배경이 프랑스건 일본이건 말이다. 여태까지 여자 작가들은 사랑에 관한 얘기 빼고는 여행기를 쓰는것이 전부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면 아멜리 노통의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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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검객 2004-10-2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 네 시
 
 전출처 : 플라시보 > 일본 회사에서 외국인 여자 직원으로 살아남기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다. 벨기에인 여자가 일본 회사에 신입 여사원으로 들어가서 겪게 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그린 것으로 여자는 1년이 되는 날 퇴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단지 위에서 나열한 얘기들이 전부라면 나는 굳이 마이리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 대해 많은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일본에 대해 두 가지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한 세대. 또 한 세대는 일본의 문화 상품이 너무나 매혹적인 나머지 일본을 동경하는 세대. 그리고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나 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일본과 우리의 역사에 치를 떨기는 하지만 그걸 길게 생각지 않으며 일본의 문화상품이 아름다운것은 알지만 그것으로 인해 일본이라는 나라마저 좋게 생각되지는 않는. 그래서 오히려 더 기를 쓰고 일본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화와 칼이라는 책 이후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한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어느 여 기자가 쓴 일본 생활담까지 일본에 관해 참 많은 책을 읽었지만 정작 책을 덮고 나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동안은 '그래 일본이란 나란 이렇단 말이지' 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난 이후에는 뭐라 딱 꼬집어 말 할 수 없지만 그동안 일본에 관해 그렇게 떠들던 책들 보다 더 분명한 느낌을 주었다.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축소한 모형판처럼 흥미롭다.

거기에는 상사와 부하. 남자와 여자. 내국인과 외국인. 등 다양한 수직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언제나 가장 아래에 위치 해 있다. 일본인들은 외국인을 상당히 동경하여 국제결혼을 권장하던 때도 있었다고 알고 있지만 회사 안에서 외국인 특히 여자의 위치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 책을 보면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래 전 부터 회사생활을 하면서 들어왔던 말. '여자의 적은 여자다' 정말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문득 저 말이 떠 오를때가 많다. 남자 직원들과는 의견충돌과 트러블이 있기는 하지만 적은 아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서로가 적이 될 수 있다. 책에서 아멜리와 그녀의 상사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주인공인 아멜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소 히스테릭한 내용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 짜증을 독자에게 전이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 하겠지만 왠지 나는 이 소설이 100% 허구라고 믿기는 힘들다. 물론 아멜리 노통이 그걸 노리고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소설속 여 주인공으로 써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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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검객 2004-10-2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려움과 떨림
 
 전출처 : 플라시보 > 타자는 지옥이다.

적의 화장법.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말 그대로라면 화장이란 흔히 여자들이 얼굴에 칠하는 그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적이 그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취하는 방법이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적은 낯모르는 타인이다. 생각해 보면 타인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다. 이쪽에서 그를 알 가능성은 제로인 반면 그쪽에서 나를 훤히 알 가능성은 충분하게 있다. 어디선가 숨어서 나를 훔쳐봤을 수도 있고 내가 버린 메모를 주워서 나의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을 수도 있다. 거기에다 내가 한 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것으로 인해 나에 대한 증오를 키워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에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들 다닥다닥 붙어살았기 때문에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똥개가 새끼를 몇 마리를 낳았는지 까지 내 집처럼 훤하게 꿰고 있겠지만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다. 아파트에 살다보면 아랫집 윗집은 고사하고라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다만 늦은 밤에 못을 친다거나 쿵쾅거리며 뛴다거나 혹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에만 그들은 서로를 인식 할 뿐이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은 밤에 못을 밖고 쿵쾅대고 악쓰며 싸운다는 이유로 몰상식한 타인이 된다.

또 현대인들은 활동 영역이 넓혀졌다. 인터넷이 구석구석 깔리고 부터는 사이버상에서 모르는 타인들과 대화도 하고 가끔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일가지고 싸우기도 한다. 예전보다 많은 인간들과 관계를 맺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것에서부터 두려움은 출발한다. 전날 사이버상에서 활발하게 토론을 하다 의견 충돌로 싸운 누군가가 알고 보니 컴퓨터 도사에다 성격도 이상해서 나의 정보를 다 빼낸 다음 나를 곤란에 빠트린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이 책에 보면 타인은 지옥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그렇게 되면 정말 타인은 지옥이 된다. 그것도 죽고난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지옥처럼 추상적인 지옥이 아닌 바로 살아있는 동안의 지옥이 되는 것이다. 책에는 한 남자와 또 한 남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화자이고 한 사람은 그 화자가 알지 못하는 타인이다. 그 둘은 우연히 공항 대기실에서 만나게 되고 단지 귀찮게 굴던 타인은 어느새 지옥으로 변한다. 아밀리에 노통의 적의 화장법은 신선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소설이다. 마치 내가 당하는 것처럼 끔찍함에 그대로 전해진다. 마지막에 대단한 반전까지 준비 해 두었으므로 무료한 여름 장마철에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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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검객 2004-10-2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의 화장법
 
 전출처 : 플라시보 > 몽환적이고도 암울한 듀나의 SF단편집

듀나의 소설은 [면세구역]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개인적으로는 면세구역 보다는 태평양 횡단특급에 별 한개 정도 더 주고 싶다.

한때 듀나는 한 사람이다. 혹은 여러사람이 모인 집단이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성별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듀나는 이영수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내기 시작했고 의견은 좁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이영수 조차도 필명 일지...

면세구역을 읽어보면 그다지 여러 사람이 썼다는 생각이 들지않아서 나는 듀나를 한 사람이며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평양 횡단특급을 읽으면서 또 다시 헤깔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듀나라는 이름아래 활동을 하고 그 중에는 여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SF장르라고는 했지만 앞의 3가지 단편들('태평양 횡단특급''히즈 올댓''대리 살인자')는 SF라기 보다는 그냥 재기발랄한 단편 정도이다. 그리고 '첼로'부터 나머지 까지의 단편들은 앞의 소설 [면세구역]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장르와 문체를 택하고 있다.

내가 듀나를 여자일지도 혹은 여러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리살인자'와 '첼로' 때문이다. 두 단편은 다른 듀나의 글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것은 역시 '대리살인자'와 '첼로'인데 대리살인자의 경우 누구나 한번쯤은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으며 잡혀서 죄값을 치뤄야 할 일이 절대로 없다면 누군가를 죽일텐데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더구나 내 손에 피를 바르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죽여주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얼씨구나 하면서 여러사람의 이름을 말 할 것이다. 특히 이 단편에 정이갔던 이유는 주인공들이 선생을 많이 지목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라는 곳을 다닌 사람들은 안다. 선생들 중에서 얼마나 죽이고 싶은 인간들이 많은지를...

다음으로 첼로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것인데, 뭐 그리 로멘틱하지는 않지만 충분하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특히 주인공의 이모가 로봇을 그리워하며 내뱉는 말들은 가히 압권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이 그리운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감이 그리운 것이다. 첼로는 그 부분을 아주 잘 표현 해 낸 수작이다.

자. 나머지 단편들은 거의가 SF이다.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도 있고 괜찮은 작품들도 있다. 반나절 정도면 뒹굴거리며 충분히 읽을 만 하고, 읽고나서 그다지 머리에 콱 와서 박히는것은 없지만 재미는 보장 할 만하다. 적어도 듀나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선뜻 장바구니에 넣을 정도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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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검객 2004-10-26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평양 횡단특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