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코코죠 > 인생 뭐 있나, 그냥 노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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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례 1- 우리 회사 사장님이 전에 있던 직원 흉을 보며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월급이라도 꼬박꼬박 받지, 나는 아무 것도 못 받는데...
사례 2- 170만원 받는 나의 직장상사가 100만원 받는 나를 붙들고 사장이 월급 안 올려준다고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면서 왜 자기 월급을 안 올려주는지 분석해 보라고 시켰다.
사례 3-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 하나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남자 둘이 자기를 사이에 놓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며 탄식하길 "그래, 너는 모르겠지만 인물이 반반하면 이렇게 인생이 고달파"
살다보면, 그런 인간들이 있다. 절대로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상종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든 마주 앉아 있어야 하는 고통을. 살다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종종 있다. 여기서 욕 한마디 하고, 니미럴...
<인 더 풀>은 '공중그네'의 속편으로, 역시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연작 단편이 이어지는 소설집이다. 공중그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이 반가울 것이다. 나는 속편이 나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가 한번 놀랐고, 너무나 유치한 책표지에 두번 놀랐고, 더욱더 과장되게 액션을 취하는 이라부의 모습에 세번 놀랐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건 소설이란 왜 그토록 진지하고 묵직해야 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래, 난 모르겠다. 나는 대중의 한 사람이고, 소설가들이 대중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상징성도 의미도 주제도 그 어려운 것들을 하나도 빼트리지 않으면서 가벼울 수는 없을까. 왜 소설은 그토록 우울하고 서글플까. 즐거우면, 안 되나. 왜, 희극은 코미디에 불과할까.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이런 게 아닐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림없는 만화책, 술술 읽히고 낄낄거릴 수 있는 유쾌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내가 저 위에 열거한 저런 어이없는 사태들에 대한 해답을 이라부는 경쾌하게 내려준다. 성격은 기득권이며, 한 일년 그렇게 밀고나가면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든다고 말이다.
부모에게 병원을 물려받게 되어 돈 걱정 할 일 없는 이라부이기에 가능한 처방, 정신과 의사인 그는 언제나 직접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다. 공중그네가 무서워진 서커스 단원의 카운슬링 처방은 공중그네를 직접 타보는 것, 늘 실수를 하는 야구선수에게는 그와 함께 야구를 하는 것. 그게 뭐 딱히 환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재밌으니까 한다.
릴렉스.
인생은 풀어놓으면 쉽다. 인생, 뭐 있나. 노는 거지. 놀다, 가는 거지.
공중그네 한 권은 가볍고 즐겁고, 인더풀 두권 읽으면 만화책 다섯 권 읽은 뿌듯함이 있다. 공중그네와 다를 바 없고 조금 더 이라부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알게 된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 여전하다. 작가의 입담도, 그 거침없는 필체도,. 너무나 너무나 일본 만화 스러운 그 설정도(간호사의 가슴 계곡 말이다, 정말 니뽄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에피소드들이 더 과격해지고, 어쩐지 더 과장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나쁘진 않다.
이런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요즘 소설에 입맛을 영 잃은 사람. 책 읽기가 지겨운 사람. 책장이 마법처럼 술술 넘어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누구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그런 외로운 사람.
사실 우리에겐 누구나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 아니다 이 말엔 어폐가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사장도, 내 상사도, 그 잘난 친구도, 내가 자기의 입장이 되어주기를 원했던 것일까. 미안해, 나는 이라부가 아니잖아.
사례 4- 어느 날 이 책을 들고 버스를 탔는데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울고 있었다. 왜 울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냥 서럽게 울고 있어서 그 앞에 서서 가려 주었다. 우울해서 미칠 것 같다고 정신과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 이 책을 건네주었다. 적어도 한 번은 웃었겠지, 그 사람.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책 뒷표지, 정말 유치하다. 그리고 이라부의 엽기 처방 운운 이모티콘 쓰고 통신어체로 카피 뽑은 것은 정말 실수한 거다. 뒷표지의 카피들은 책을 선전하기는 커녕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묘한 매력마저 상실케 했다. 그렇게 가끔 좋은 작품들은 싸구려가 된다. 그래서, 별 하나는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