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나의 아름다운 관
아름다운 지옥 1
권지예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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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는다. 책을 사 주겠다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새의 선물이랑 비슷해? 새의 선물은 은희경이 쓴 소설이다. 나는 그 소설을 읽고난 다음 늘 주인공인. 징글맞게도 어른같던 꼬마 여자아이가 자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곤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의 선물과는 약간 다르다. 새의 선물의 여주인공은 어리지만 조숙했었고 (그렇다고 해서 순풍산부인과의 발랑까진 미달이와는 좀 다르다.) 그 아이의 삶 자체보다는 주변인들의 삶을 그리는데 더욱 치중했었으며 조금 더 드라마틱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지옥은 주인공의삶에 더 밀착되어 있고 새의 선물 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한 여자아이가 있다.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잘생긴 얼굴과 바람끼에다 허풍까지 함께 갖춘 인물로 집안 식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속으로 모든걸 삭이고 돈을 끔찍하게 아끼지만 정작 나서서 돈을 벌거나 돈을 불리는 것에는 담을 쌓고 산다. 그리고 여동생이 둘. 남동생이 하나이다. 그녀의 집이 서울에 정착해서 처음으로 장만한 내집에서 살다가 결국은 돈 때문에 집을 팔고 이사를 가기까지의 얘기가 나와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동안 재밌기는 했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작가가 소소한 일상을 쏟아놓았을 뿐. 그 속에는 아무런 메세지가 없다. 어떤 글이건 반드시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긴 소설을 쓰면서 아무런 하고싶은 말이 없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당히 이상한 일이다.

마치 배설물 처럼 작가는 자전적 소설을 길게 길게 풀어놓았다. 작가는 그래서 시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컷 읽고 나면 남의 삶을 들여다본것 같은 느낌만 남을뿐.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은 지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은 일 외에는 단 한줄도 상상을 하거나 발품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라도 한 것 처럼 이 소설은 참으로 일기장스럽다. 그런데도 단 이틀만에 두권을 다 읽어치운걸 보면 재밌기는 재밌다. 그게 단지 남의 인생을 엿보는, 아무런 메세지를 전달받지 못해도 단지 훔쳐보는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재밌다는 부분에 대해서 이견을 달지는 못하겠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주인공의 방문과 방 사이의 작은 공간에 누워서 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게 뚜껑이 있는 관이 아니라 뚜껑이 열려있는 나의 아름다운 관이라고 부른다. 문득 과거 지나간 내 사춘기에도 존재했던, 관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집안에서 혼자 찾던 좁은 장소 하나가 생각났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난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주인공의 엄마가 원낙 돈돈 하기 때문에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주인공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가난 부분만은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만약 정말로 가난했었다면 가난의 모습은 그렇게나 새새하게 그리면서 막상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그렇게 가볍게 스치듯이 볼 수는 없었을꺼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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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약자를 위하여.
모내기 블루스
김종광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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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속으로 그랬다. '겁나게 웃긴 소설일꺼야'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결과적으로는 겁나게 웃기지도 않았고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 소설들이었다. 분명하게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었건만 왜 저렇게 멋대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소설은 웃기지 않으며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집이다.

모내기 블루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농촌 얘기가 등장한다. 굳이 나누자면 초반부에는 농촌의 약자들을 그리고 후반부에는 도시의 약자들을 다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약자들이 청승스럽게 등장을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꿋꿋하며 성실하고 가끔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약자를 다루되 그게 먼 얘기가 아닌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처럼 와 닿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내가 제일 재밌었던 단편은 '서점 네시'와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열쇠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배신' 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던 모내기 블루스를 비롯한 일련의 농촌 얘기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줄곳 자란 나는 쌀나무는 어딨어요?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어떤 식으로 벼가 출하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니까 말이다. 서점 네시의 경우에는 상당히 놀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폭력성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지 또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난 폭력에 대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해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꼭 그렇게 징글징글하도록 바닥의 끝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으므로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은 백수의 얘기를 다룬건데 그것 역시 백수의 처절한 삶을 박박 긁어 보여주지 않았다.

열쇠가 없는 사람들은 한심한 회사에 몸을 담고 몇달째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는 회사 사람들의 얘기였다. 나 역시 겪어본 적이 있었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도 몇몇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암담한 앞날과 갑갑한 현실이 너무 와 닿아서 내가 허파가 다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이 책의 백미를 보여주는 '배신' 은 재미 면에서나 계몽 면에서나 뭔가 확실하게 하나 보여주는 단편이었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횡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그게 살아남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인것 같아서 참으로 씁쓸했다. 여자 주인공은 나름대로 그 사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계혁을 해 보고자 했지만 그냥 주저앉게 된다. 사용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또 움직일 수 없는 노동자들 때문에 그녀는 증거들을 자신의 손으로 찢어 버리는 것이다.

배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타고난 지도자와 타고난 투쟁가는 없는 것이다. 다만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갈 뿐이다. 경리였던 여 주인공은 그냥 널널한 업무를 하면서 제 앞가림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사장의 지나친 횡포가 그녀를 투쟁가로 그리고 사장의 입장에서는 배신을 때리는 나쁜 년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녀처럼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목숨줄이 달려 있는 문제라면 아무도 앞장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비록 호기롭게 갈아 엎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시도에 있어서 만큼은 나 같은 소시민은 진심으로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대부분 도토리 키재기식의 단편들이 난무한 가운데 간만에 만난 개성 뚜렷하고도 실한 단편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상하게도 다른 단편들은 읽을때는 참 재밌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뭐가 뭐였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반면 이 책은 읽는동안 아주 약간의 지겨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단편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고만 고만한 단편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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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그가 클로이에게서 레이첼로 건너가기 까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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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여름. 나는 알라딘에서 경제쪽의 리뷰를 많이 쓰시는 어떤 분으로 부터 내가 분명히 재밌어할 책이라며 이 책을 추천받았었다. 나는 책을 8월 중순에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고 다 읽은 날짜는 어제. 즉 2004년 5월 9일이었다. 이 책을 다 읽는데 거의 10개월이 걸린 것이다. 내가 이 책에 별 다섯을 주지 않는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 책을 다 읽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로인한 약간의 스트레스 때문에 별 한개를 빼 버린 것이지 절대 책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책은 아주 훌륭하고도 재밌다. 더구나 나처럼 철학은 어려워 라는 생각으로 프로이드건 비트겐슈타인이건 그 밖의 누구건간에 손을 들어버린 인간에게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책을 다 읽는데 10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렸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오래 읽었으며 보통 이정도로 속도가 나가지 않으면 포기해 버리는데 또 어째서 그 긴 시간이 걸림에도 끝까지 읽어치웠는지도 알 수 없다.

제목에서 나타나 있듯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해 보면 단순히 사랑해가 아니라 왜라는 물음에서 약간의 고민을 엿볼수도 있다. 그냥 너무 사랑해라던가 정말 사랑하는구나가 아닌 왜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의문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문제에 관한 생각. 즉 철학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한 남자이다. 미혼이며 직장이 있고 혼자 살고 있는 꽤 평범한 남자이다. 그는 어느날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러다 그녀와 만남을 가지게 되고 당연하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에 빠진 다음 단계가 계속해서 빠지는 것이면 좋겠지만 실제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 바로 원하던 것을 얻게된 자의 오만. 즉 상대의맘에 안드는 구석이나 단점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 단점들은 어느순간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저 단점들을 내가 다 알았더라도 나는 사랑을 시작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만큼.

그리고 그 다음 단계. 그런 단점들로 인해 사랑이 끝장 나 버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어느새 정이라는게 생기고 익숙함이 생기며 함께지낸 시간들이 쌓여서 남들은 모르는 둘만의 암호같은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사랑은 더더욱 영글어가는 듯 보인다. 이제 남자는 클로이라는 여자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있으며, 어쩌면 클로이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 혹은 클로이와 자신이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 익숙함 만으로 지속되게 가만있지 않는다. 광고에도 나왔다시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움직이므로.

어느날 그는 클로이가 자신의 친구와 외도를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하지만 인정하지는 않는다. 의심은 들지만 의식적으로 그 의심을 누른다. 하지만 자신을 속일수는 있어도 변한 상대방의 행동은 속일수가 없다. 클로이는 점점 변해간다. 시큰둥해지고 무덤덤해지고 짜증과 싸움이 늘어간다. 그러다가 만난지 1주년이 되는 날. 역시 둘이 처음 만났던 장소인 비행기 안에서 클로이는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는 받아들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면 남은 사람이 할 일은 딱 한가지이다. 슬퍼하기. 혹은 괴로워하기. 뭐라 불러도 상관없을 마음의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했던 일들을 하나 하나 떠 올리고 사람은 가고 없지만 함께 했던 모든 사소한 일들을 부여잡고 그 기억들과 함께 산다. 그러다 마침내 남자는 클로이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 시도는 시도로 끝나고 그때를 기점으로 그는 클로이를 미워한다.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자기가 버림받을 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것과 달리 이제는 자기를 버린 클로이라는 여자에게 모든 원망과 미움을 다 보낸다. 그리고 다음 단계. 서서히 잊어간다. 억지로 떠 올려야 생각이 날 만큼. 그리고 가끔은 그렇게 잊었다는 것에 스스로 감상적인 슬픔에 젖을 만큼 말이다.

남자는 클로이를 잊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여자 레이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어렴풋이 자기가 클로이를 만났을때와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려 하고 있음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다짐이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 자. 또 다시 빌어먹을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심리상태에 의존하여 전개 해 나간다. 다행스럽게도 남자의 심리상태는 시간 순서에 따라 흐르므로 따라잡기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큰 사건 없이 한 남자의 내면. 그것도 오직 사랑이라는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은 마치 조그만 구멍이 하나밖에 나 있지 않은 상자에 갖혀 있는 것 처럼 답답증을 느끼게 한다.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야 책에서 흔한 일이겠지만 그들은 인생의 전체랄지, 아니 한 토막이라 하더라도 갖가지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오직 사랑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것도 여러가지 사랑이 아닌 클로이라는 여자를 향한 단 하나의 사랑만을 집요하게 이야기 한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는데 내가 난독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긴 세월이 걸렸던 것은 답답함에 숨구멍을 터주기 위해서 읽는 중간중간 쉬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페이지를 읽고 하루를 쉬었고 때로는 한줄을 읽고 한달을 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내 기억력 나쁜 머리에서 일어난 일 치고는 가히 기적적으로 한달전에 읽은 책의 앞장과 현재 읽고 있는 뒷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혹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을 만나고 사귀기로 하고 남들에게도 애인이라고 소개를 하면서도 나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해 마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게 사랑이 아닐까? 뭐 맞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단순했다면. 나의 학습 능력 만큼이나 내가 사랑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생략했더라면 나는 사랑을 조금 더 쉽게 해 볼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 주인공에게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사랑을 하면서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다. 허나 따지고 보면 누구나 사랑을 하면서 그 정도의 생각은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머리속으로 해서 그 분량을 알 수 없을 뿐. 그 모든 과정을 글로 옮겨놓는다면 알랭 드 보통 보다 한 수 더 뜰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는 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글귀가 인용되어 있다. 하지만 별로 어렵지 않은 정도의 인용이라 괜찮다. 가끔은 단순한 선으로 이뤄진 그림이나 도표등이 등장하긴 하나 역시 어렵지 않다.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한 남자의 내면을 오래도록 질기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사람들에게 권할 생각이다. 나처럼 그 압박감에 못이겨 읽는데 10개월이 걸리건 1년이 걸리건 꼭 한번은 읽어 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지 재밌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생에 한번 이상은 꼭 하게 되는 사랑이라는 행위 혹은 마음에 대해 한번쯤은 이렇게 착잡할정도로 차곡차곡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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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어딘가 2% 부족한 고백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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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도착한것은 공교롭게도 일년에 서너번 정도 병원에 갈까 말까한 내가 입원을 하게 되었던 시기였다. 환자복과 불편한 침대. 맛없는 식사. 그리고 미심쩍은 주사와 투약이 계속되는 가운데 마침 이 책은 내 손에 쥐여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책에 대해 기대가 남달랐다. '그래 이 의사가 고백하는 현대의학은 뭔가 대단한 헛점과 결함과 치명적인 실수를 숨기고 있을 것이야' 하며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심정으로 책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아주 일반적인 부분만을 건드리고 있다. 그 정도의 내용이라면 의사를 주변에 둔 사람쯤은 충분하게 주워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즉 의사도 실수를 하고 현대의학이 완전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의사들은 날마다 최선을 다 하고 있고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정도이다.

물론 실수로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한두번씩 등장을 하긴 하지만 스리슬쩍 넘어가는 분위기였으며 반면 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마침내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낸 대목에 있어서는 몇 페이지고 할애를 했다. 그도 의사였던 것이다. 모든 팔은 안으로 굽고 그의 팔 역시 의사와 외과쪽으로 굽어 있었다.

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환자들이 처한 고통을 이해하려고 또 그가 행하는 의료행위가 완전하지 않다는것 또 현대의학이 아직도 많은 부분에 있어서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너무 판도라의 상자를 기대했기 때문이었고 또 병원에 입원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멀쩡한 상황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읽었으면 나는 이 책에다 별 3개라는 짠 점수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책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리고 중간중간 흥미있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역시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입으로 말 하거나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는 꾀나 괜찮은 의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는 갈증을 느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프면 속수무책이다. 대체 왜 열이 나는지, 왜 붓는지, 왜 쿡쿡 찌르듯 혹은 쑤시듯 그도저도 아니면 묵직하게 아픈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 간다. 어디가 어떻게 되었기에 이렇게 열이나고 아픈것인지를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얼마나 친절한 설명을 들었는가! 대부분의 의사들은 내게 투여하는 약의 종류와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또 내게 놓는 주사제가 어떤건지 (간호사는 오직 주사에 대해 한마디만 한다. '조금 아프거든요. 많이 문지르세요' 하지만 그 주사가 어떤 주사라 왜 아픈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치료과정을 거칠것인지에 대해 얼렁뚱땅 넘어 가 버린다.

나만 하더라도 입원을 하고 수도없이 맞은 주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으며 (그중 항생제 주사가 있어서 토하고 나서야 비로서 나는 그 주사가 항생제였음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치료과정을 거치고 또 현재 상태가 얼마나 호전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초음파로 뱃속을 본 것은 의사일 뿐. 나는 내 뱃속한번 보지 못했으나 내 뱃속에 대한 치료를 받았고 또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 책에 등장하는 가완디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은 조금더 형편이 나은 모양인지 의사가 환자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에게 질문을 할 뿐. 환자에게 현재 겪고있는 고통에 관한 충분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그들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역시 우리가 어떻게 왜 아프며 앞으로 진행방향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냥 가서 치료를 받는것이 아니라 분명 그 댓가를 의사에게 지불하며 진료와 치료를 받는다. 의사와 환자가 조금만 더 대화를 하고 의사소통을 하려는 시도를 하려고 든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안되었다는 동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아프다는 사람들을 봐야하며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긴 근무시간과 강도높은 노동. 항상 의사들은 피곤한 모습이고 어딘가 모르게 지쳐보인다. 그런 과중한 업무와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에 따라오는 긴장감을 가지고도 활기차고 쾌활하게 일하기를 기대한다면 너무 큰 바램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음이 보인다. 의사들 역시 환자를 고치고 싶어 하고 환자 역시 낫고 싶어 하니 적어도 의사와 환자가 한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분명한 합의점에 도달한 것이다. 책을 읽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간 의료사고에 관한 나의 편협한 생각이 조금 넓어졌다는 것이다. 즉 의사가 고의로 혹은 무신경해서 저지르는 의료 사고뿐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이유로 또 때로는 필요악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다. 그리고 직업이 의사가 아닌한 모두 환자의 입장들일테니 의사가 본 의료계와 그 현실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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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그녀의 과거를 질투하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
줄리언 반즈 지음, 권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늘 질투를 하면서 산다. 그렇지만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질투는 대게 유치하고도 적날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잘생겨서, 나보다 좋은 직장에 다녀서, 나보다 인기가 많아서, 나보다 돈이 많아서 등등 그 이유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인간의 치부와 유치함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저런 나열 속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허접한 질투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 많은 질투들 중에서 사랑이라는 문제가 개입이 되면 질투는 한층 더 원색적으로 변한다. 몇초정도 더 처다본 여배우 때문에 자기보다 저 여배우가 좋으냐고 묻는 여자. 지나가는 젊은 남자에게 눈길을 주는 여자 앞에서 은근히 주눅이 드는 남자. 그러나 이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질투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과거를 질투하면서 부터 시작이 된다. 정신과 의사인 그레이엄은 아내 바바라를 두고 전직 여배우인 앤과 바람을 피운다. 그레이엄은 바바라와 이혼하고 다시 앤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주 행복하다. 적어도 그레이엄이 앤의 과거에 대해 질투를 하지 않을때 까지는 말이다.

그레이엄은 분명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질투하는 것은 답이 없다. 처음에는 그 과거를 단지 알고 싶어 한다. 앤이 누구와 잠자리를 했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또 어디에 갔었는지. 하지만 단지 사실을 알아내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미 과거로 지나가 버렸고 자신을 알기도 전의 순간이지만 질투는 사라지질 않는다. 과거를 질투해서 어쩌겠냐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집착을 하게 된다. 혹시나 빠트렸을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러다가 점점 그의 질투는 과거에서 현재로 내려오게 된다. 계속해서 이미 지나간 과거만 질투 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의 증거물들을 찾게 된다. 그레이엄은 마침내 자신의 친구 잭과 앤이 부정한 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에 관한 질투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그 속에 어떤 결정적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믿는다. 그레이엄이 친구 잭과 앤이 부정한 사이라고 믿는 단 한가지 물증은 잭이 쓴 책이다.(잭은 소설가이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사장면은 다 잭과 앤의 정사장면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봤을때는 비약이 심하다 못해 정신상태마저 의심스럽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과거를 질투해버리기 시작했으면 현재도 가만둘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와 그레이엄이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상대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한다. 그건 처음에는 일종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새 상대방의 과거에 대해 알고싶어 하는 정도가 전부는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혹시나 상대가 과거의 사람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거나 혹은 그리워 하거나 최악의 경우 나를 대체품으로 만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게 이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실증이 나서 관두지만 심각할때는 마지막 단계까지 갔었고 결국은 내가 괴로워서 관계를 그만 둔 적이 있다.

다른 기쁨이 없고 오직 옆에 사랑하는 사람만 눈에 보이고 그를 향한 사랑이 너무 클 경우 과거를 질투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 그가 처다보는 여배우를 질투하는 것 보다는 훨씬 복잡한 일이다. 이 모든건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다.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을 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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