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대단한 책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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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흔히 영화나 책등의 주요 내용등을 노출하므로써 재미를 반감시키는 행위인 스포일러는 가장 유명하게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개봉했을때 이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서 있던 관객에게 이미 관람한 사람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고 외쳤다는, 진실의 여부는 알수 없으나 스포일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결정적 계기가 아닌가 싶다. 그 외에 식스센스등의 결정적인 반전이 들어가 있는 영화들은 스포일러를 막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으며. 현재는 몇몇 양심있는 기자들은 영화나 책에 대해 기사를 쓰기 전에 '스포일러 다소 있음' 등의 경고문을 미리 붙여놓는다.

그런데 진짜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내 경우에는 영화에 대해 이미 모든걸 다 알고 보는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는 반드시 본 사람들에게 설명을 다 듣고 나름대로 기사들도 뒤져서 자료를 찾아볼 만큼 찾아보고 나서야 본다. 남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스포일러. 하지만 나에게 있어 스포일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용을 다 알고 나면 더더욱 기대가 되며, 내용을 가지고 혼자 공상속에서 영화를 한편 만든다음 실제 영화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겨서 풀어내는지 비교를 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허나 나는 이 책 '살인자들의 추억'을 읽고 나서는 스포일러를 왜 하면 안되는 것인지, 심정적으로 완전하게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사기전에 여기서 읽었던 대부분의 리뷰가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음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지금부터 나는 책의 내용을 아주 약간만 소개를 할까 한다. (내 생각에는 이정도는 책소개 글에 적힌 정도라고 보지만 또 알 수 없으므로 조금도 사전 정보를 얻고싶지 않으면 여기서 읽기를 멈추길 권하는 바이다.) 아내가 불에 타죽는 아픔을 겪은 보안관 테디. 그는 어느날 살인자들 중에서도 정신병력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는 섬으로 조사를 떠난다. 그 섬에서 한 여자 환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인 처크와 함께 매우 불길하고 수상쩍은 기운이 감도는 섬에 수사를 하기 위해 떠나는데... 여기까지. 여기까지가 내가 말 할 수 있는 이 책의 최대한의 내용이다. (내 생각에는 이정도를 알아가지고는 아무것도 달라질게 없다 싶어서 적었다.)

하지만 이 책은 위에서 내가 언급한 내용으로는 전혀 추론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비밀이 존재한다. 오죽 그 비밀이 흥미진진했으면 나는 어제밤 이 책을 잡자 마자 오늘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날밤을 꼬박 새워서 책을 읽어치웠다. 처음에는 다소 뜬금없이 진행된다 싶어서 한 30 페이지까지는 약간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정말이지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울 정도였다. 내가 읽어본 범죄스릴러 소설중에 감히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유주얼서스펙트나 식스센스는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만큼 이 책에는 아주 큰 비밀이 있으며 막판에 가서 비밀이 밝혀질때쯤에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가 없다. (진부한 표현이나 이 이상의 표현이 없다 싶다.)

데니스 루헤인은 예전에 미스틱 리버라는 책을 발표했을때 부터 매우 기대가 되는 작가였는데 솔직히 말해 미스틱 리버때만 해도 나는 이 작가가 이리도 대단한 책을 쓰리라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인 작가라는 이름을 달기에 한톨의 부끄러움도 없을 만큼 이 책은 실로 놀라운 상상력을 담고 있다. 그건 해리포터 같은 류의 허무맹랑하면서도 거대한 상상도 아니고 다빈치코드류의 유치하면서도 다소 뻐기는듯한 상상력도 아니다. 정말이지 간만에 만난 아주 제대로 된 상상력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아니 그 이전에 마지막 결말 부분에 다다라서 나는 약간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사람의 내면을 이렇게나 무섭게 들여다본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늘 이런책을 읽으면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과연 정상일까? 혹은 내가 진실이라고 믿으며 보고 듣는것들이 정말로 사실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끝으로 한가지 충고를 하자면. 절대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 책을 잡지 말것을 권한다. 왜냐면 아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일단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떤 이유에서건 도저히 멈출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특히나 진부한 표현을 많이 썼는데 더이상의 표현을 찾지 못하는 내 언어감각의 한계가 통탄스러운 한편. 그런 진부하고 고전적인 찬사라 할지라도 이 책 앞에 바치기에는 더없이 초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추리소설의 마니아던 마니아가 아니던간에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정말로 후회없이 권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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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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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아마 나는 이 책에 아무리 많은 찬사가 쏟아졌어도 결코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식이라는 말을 들어도 수학과는 거리가 몇억광년이나 떨어진 내가 헉겁하기에 충분한데 거기다 그 수식은 일반인도 아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다. 초등학교때 엄마에게 등짝이 시뻘개지도록 맞아가면서 배웠어도 겨우 80점을 받았던,(당시 그 산수 시험은 백점짜리가 수두룩하게 나온, 비교적 쉬운 챕터였다.) 더구나 그게 내 생에 있어 최고의 산수 혹은 수학 성적이었던 나. 산수도 하기 싫은 마당에 중학교 올라가서 배우는 수학은 더더군다나 왜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막말로 천원내고 200원짜리 껌하나 사고 아줌마가 날 바보로 보고 거스름돈 700원을 줄때 '100원 더 주세요' 라고 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고 여동생과 8각짜리 피자 한판을 먹을때 각자 몇 조각을 먹을 수 있는지만 계산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뭣하러 저렇게 어려운걸 배우나 싶었다. 내게 있어 수학은 그렇게 하등 필요도 없는 주제에 어이없이 어렵기만 한 학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이 아무리 재밌다고 소문이 난들 읽고 싶었겠는가. 사실 선물을 받고도 은근히 걱정했었다. 내가 모르는 온갖 수학이 난무해서 결국은 중간에 포기를 하게 되는건 아닐까? 혹은 책의 절반도 이해를 못하면 어쩌지? 하고 말이다. 허나 결론부터 말 하자면 그건 기우였다. 물론 내가 이 책에 있는 수학 공식들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학교 다닐때 수학책을 보는 것 처럼 아무 느낌이 없진 않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풀 수는 없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 혹은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다는 정도였다.



교통사고로 기억이 멈춘 노 수학자. 그는 형수와 함께 살고 있으나 형수는 안채에 그는 안채에서 조금 떨어진 집에서 산다. 형수는 노 수학자를 위해 가정부를 부른다. 이 책은 그집에 10번째로 가게 된 파출부 나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다. 주인공인 나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이전의 기억만 살아있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은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인 노 수학자의 집에 가서 일을 하게 된다. 그녀는 나 만큼이나 수학을 애진작에 팽겨친 타입인데 자기도 모르게 점점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박사가 생각을 하고 세상과 소통을 하는 방식인 수식에 대해 그저 어렵고 딱딱하기만 한 학문이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거기다 주인공의 아들인 루트 (박사가 지어준 별명) 까지 합세해서 이 책은 세 사람의 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무리없이 이끌어내고 있다.



좀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나는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어울리지도 않게 라디오 코너 작가를 하면서 따뜻해서 다 죽어봐라 류의 글을 1년간 정말 죽어라 써댄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월간 좋은생각에 나올듯한 얘기들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인간의 심성이란 비슷비슷한지 읽기 전에는 약간 거부감을 느끼지만 막상 또 읽게 되면 남들과 똑같이 감동을 받고 때로는 질질 짜기까지 한다. 그런 글들을 써대느라 내 머리로는 질렸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도 삭막한 세상을 살다 보니 가슴으로까지 질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가끔 힘들었던 예전 기억들이 떠올라서 싫을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내 기억이 일정 부분은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은 싹 접어 버렸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는것. (요즘 영화에서고 어디에서고 너무 흔하게 써먹어서 좀 진부해진 맛은 있지만) 그건 내가 나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나 일수 있는 것은 어쩌면 육신이 아닌 기억의 힘 때문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80분의 녹화시간을 가지고 있는 테잎처럼 박사의 기억은 늘 80분을 넘지 못한다. 80분 전에 아무리 감동적인 일이 있어도 80분이 지나버리면 박사의 머릿속에는 아예 일어나지 조차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박사는 80분마다 가정부와 루트를 새롭게 사귀고 새롭게 느낀다. 기억의 힘 없이도 그들 사이가 점점 더 돈독해지는 것은 순전히 주인공 가정부와 그의 아들 루트의 결코 오바스럽지 않은 사랑과 보살핌 덕분이다.



끝으로 이 책에 나오는 수식은 내 수준에서는 한없이 어려웠지만 남들은 별 무리가 없었으리라 본다. 나로 말하자면 중1때 수학을 탁 하고 놓아버린 보기 드문 인간이니까 내 수학 실력은 국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내가 읽어도 대충 감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있었고 스토리를 넘기는데 있어 전혀 무리가 없었으니 수학의 '수'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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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20분만에 읽은 곰아줌마가 20년 넘게 산 나를 웃기네
곰 아줌마 이야기 - 김형태의 圖詩樂 제1집
김형태 지음 / 새만화책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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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었다. 그냥 곰 아줌마 이야기라는 책이름만 알 뿐. 이 책을 쓴 사람이 무얼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냥 책쓰는 사람이겠지 했다.)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냥 제목을 보고 장바구니에 스윽 집어 넣었으며 배달이 되어 포장지를 뜯고나서 알았다. 이게 글자 위주의 책이 아니라 그림 위주의 책이란 것을 말이다. 책장을 대강 넘겨 보다가 마지막 장에 미니 CD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컴퓨터에 집어넣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로 실행 시키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악은 총 20분 정도인데 그 안에 나는 곰 아줌마 이야기를 다 읽었다. 아니 봤다.

이 책을 지은 김형태라는 사람은 홍대 회화과를 졸업했고 개인전도 여러번 열었다. 그렇다면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왜냐면 황신혜 밴드라는 당시 내가 이름을 듣고 언니네 이발관, 어어부 밴드와 함께 골때리는 이름을 가진 밴드를 결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음악을 하는 사람이냐 하면 그게 전부는 또 아니다. 보니까 영화음악 감독도 했고 연극을 해서 상도 받았다. 이 책은 어딘가에 연재가 된 것이었고 한국인 최초로 독일에서 황금펜 어쩌고 하는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 아주 다방면에 걸쳐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낮설었다. 대체 뭐하자는 플레이지?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곰 아줌마가 등장하고 그 아줌마는 심심해하다가 정체를 살짝 알려주다가 고생도 하고 새를 키우기도 하고 어느날 문득 사라진다. 그러다가 피카소, 마티스, 고호의 화풍을 빌려 그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겨울잠을 자다가 투명해져버린다. 여기까지는 김형태가 그린 곰 아줌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설가 박민규(저 유명한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쓴)가 삼육구 곰 아줌마라는 아주 요상하고도 괴이한 단편 하나를 덤으로 써 놨다.

아까 위에서 말한 미니CD의 러닝 타임이 20분이었고 나는 이 책을 그 음악이 플레이 되는 동안 다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읽는데 20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한글로 된 문장들 아래에는 하늘색으로 영어로 씌여 있고 그것까지 읽는다면 20일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20분이 나를 무지하게 웃겼다. TV에 나오는 코메디언들이 웃겼을때 웃는 웃음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웃음인데 설명을 하려니 잘 못하겠다.

혹시 우울하다면. 뭔가 수상쩍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하지만 바른생활을 하는 바른 인간이라면 안보는게 낫다. 그는 우선 책이 20분만에 읽혀짐을. CD에 든 음악이 억 소리날만큼 근사한 음악이 아님을. 소설가 박민규가 대략 괴상한 단편을 썼다는 사실을 용서치 못할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재밌었다. 다른때에 말하던 재미와는 약간 틀리긴 하지만 요즘 일에 쩔어사는 나에게 아침부터 신선한 공기를 뭉게 뭉게 불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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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인간이라는 종에 관한 성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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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제목만 보고는 아주 감각적인 단편 모음집인줄 알았다. 이를테면 아멜리 노통의 부류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첫 단편을 읽고 나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그냥 단순하게 시간을 때워줄 가볍고 재밌는 단편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열번째 단편을 읽다가 나는 저자 로맹가리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다. 그는 이미 1980년도에 사망한 사람이었다. 내가 놀란것은 그에 관한 소개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글이 요즘에 쓰였을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글은 20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글이었다. 아마 내가 지금부터 한 20년 후에 읽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글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보니 내가 예전에 읽었던 [밑줄긋는 남자]라는 책에서 여 주인공이 언급한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속의 주인공은 로맹가리가 죽었기 때문에 그가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으므로 그의 글을 아껴서 본다고 했었다. 그때 책을 읽으면서 아마 나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것 같은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나는 그녀가 이 작가의 작품을 아껴서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로맹 가리는 인간에 대해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작가였다.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에서 다각도로 인간에 관한 관찰서를 읽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로맹 가리는 관찰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말이지' 같은 시선이 아니었다.

이 책은 총 16개의 단편으로 되어있다. 책이 별로 두껍지 않기 때문에 단편들은 상당히 짧다. 하지만 읽으면서는 짧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읽으면서는 별로 무겁다고 생각이 되질 않는데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는 그순간 무언가 묵직한게 뒷통수를 치는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어떤 휴머니스트, 가짜, 벽,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읽고 난 다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상당히 흥미롭다. 나도 인간이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 내면을 다 알고 있는 나는 내 스스로도 구역질을 느낄때가 있다. 어쩌면 누구나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인 자기 자신에 대해 깊숙하게 내려가본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인간을 고매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현명하게 그려놓아도 인간은 완전하지가 않다. 더구나 인간은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것도 모자라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거짓말을 들여다보기가 무섭다면 이 책은 보지 않는것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구역질나는 진실이라도 진실을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용기를 내어서 보길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렇게 가볍지 못했다. 꼭 물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에서 읽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기만 한 책일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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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가난'이 제일 무서웠어요.
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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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코메디언 중 박수홍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3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다른건 기억이 나질 않고 그 중 하나가 '가난' 이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나는 연예인 중에서 누구도 그 처럼 그렇게 가난이라는 것을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하지만 그 무게만큼은 충분하게 인정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연예인의 가난이란 것은 최진실양의 김치 수재비 처럼 조금은 신파적인 분위기를 내기 마련인데 박수홍이란 사람은 잘은 몰라도 충분할 정도로 가난 해 보았으며 적어도 앞으로는 가난하지 않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어제밤 빗소리에 잠이 깨서 케이블 체널을 돌리다가 노숙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타리를 봤다. 0.7평의. 흔히 쪽방이라고 불리우는 공간에서 가족까지 이루며 사는 사람들 (한 부부는 간난쟁이가 있는것도 부족해서 둘째를 임신 한 상황이었다.) 을 보았다. 사실 나는 가난이 죄는 아니라던가. 가난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는 말에 동조하지 못하겠다. 내가 본 가난은 모두 죄였으며 분명 부끄러웠다. 뭐 찢어지게 가난하면서 가족을 이루고 거기다 아이까지 낳는 사람들을 나는 돌을 맞을 망정 혐오한다. 생명이란 다 소중한거고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른다고? 출발선상부터 0.7평 쪽방에서 시작한 아기가 얼마나 잘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이 한 20년 전이기만 해도 가능하다. 그때는 정말 가난해도 죽으라고 들고 파고 노력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들 학원다니고 과외다니는걸 자기 노력만으로 따라 잡는건 내 생각에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게 태어나면 신께서 불쌍히 여겨 천재로 태어나게 해 주시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혼자 가난한것도 모자라서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을 하고. 자기 몸 만큼, 아니 어쩌면 자기 몸보다 더 귀할 그 자식을 출발선상부터 남들보다 10km는 족히 뒤에서 출발시키는 것. 나는 그게 사랑인지 뭔지 정말로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가난에 대해 주절주절 길게 얘기한 이유는.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쪽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 가난하고 남루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 시장통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 난 사실 그런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오로지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저마다의 가난이었다. 사람들에게 쥐어터지고 밤에 잠도 못자며 일을 부려먹어도 다 떨어진 운동화 한켤레 사 신을 돈이 없는 인도 노동자 '깜댕이'.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다방 레지를 하는. 그러면서도 탈출을 꿈꾸기에 2만원 3만원에 몸을 파는 중국 여자 '머저리'. 온 몸이 굳어가는 병을 앓으면서도 TV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협동합시다 아저씨에게 몸을 내어주되 그것마저 임의롭지 못해 입으로 정액을 받아야 하는 '춘미 언니' 거기다가 무당인 엄마에 이어 신이 내릴뻔 한 것을 피해. 아버지의 말처럼 '영원히 멀리 도망' 간 곳이 하필이면 시장통이며, 협동합시다 아저씨의 배려로 밤에는 인도 노동자 '깜댕이'와 함께 냉동창고가 있는 지하실에서 자고 낮이면 과일상회에서 과일을 팔고 하루 3천원을 받는 주인공 '영원' 이들의 공통점은 가난하지만 선량한 도 아니고 가난하지만 꿈이있는 도 아니며 그저 가난한. 그것도 정말 최하위 5% 안에 들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작가 이명랑은 자신이 자란곳이 시장이었고 (전작 삼오식당이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듯) 그 시장통의 온갖 인간군상들을 다뤄보고 싶은 원대한 꿈 내지는 목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비춰진 것이라고는 그들의 너무도 확실한 가난 그것 뿐이었다. 전작 삼오식당에서는 그래도 가난이라는 것 만으로는 다 묶여지지 않은 (즉 그렇게 까지 가난하지는 않은) 인간 군상들이 존재했었는데 이 작품은 뭐라 더 입도 떼기 힘든 가난과 남루 거기다 비참의 비빔쑈가 펼쳐진다. 읽는 내내 인간이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도 살아야 하는가. 속된 말로 혀라도 확 깨물거나 접싯물에 코라도 박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더 떨어질곳 없는 곳 까지 떨어지면서도 살아서 숨쉬고 먹고 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고 동물은 짐승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생각하고 표현할 줄 알며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우는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존엄성 같은건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흙뭍은 구두를 혀로 핥았다 따위의 스토리는 내게 전혀 감동이 아니다. 거기서 나는 인간의 질긴 생명력을 느낀다기 보다. 인간의 비루함과 비겁함을 느낀다. 죽음이 아니라면. 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취나고 모멸스런 짓 마저도 끝끝내 다 해치울 수 있으며. 그게 당연하다는 식의 얘기들을 접할때 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밀려든다.

이 책에서 중국인 '머저리'는 주민등록증을 따기 위해. 자신을 다방 레지로 부려먹고 또 날마다 두들겨 패며 인간취급을 해 주지 않는 한국인 남자를 견딘다. 거기다 잔인하게도 그녀는 희망 씩이나 품는다. 시장통의 사내들에게 2만원 3만원에 몸을 내어주면서 그 돈을 챙긴다. 남편에게 들켜서 흠씬 두들겨 맞고서도 만원만 가지고 어떻게 해 보려던 남자를 찾아가서 남편에게 이른다고 말해 기여이 만원을 더 받아온다. 비록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설정을 해 두었지만 나는 그녀가 나오는 대목을 '그냥 소설이며 더구나 한국 사람도 아니래잖아' 하며 넘길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도 같은 여자이고. 동조하지는 못할 망정 여자의 마지막 수단은 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몸을 자기 맘대로 할 권리. 그리고 지킬 권리도 가난하지 않을때의 얘기인 것이다. 그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권리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가난' 이라는걸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가난에 너무 물려버려서 다른건 생각도 안난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여자아이의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며 그녀의 과거 또한 급히 끼워맞춘. 마치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온 촌색시의 장농안에 든 색동이불처럼 들떴다는 것도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이들이 정말 미치도록 가난했고 그들의 삶이 시장통이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더더욱 시장에 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 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가난'의 아우라는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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