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기다림으로 > (빨간머리 앤 1) - 예쁜, 그 이상의 사랑스러움

동화 속 주인공들 중에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는 3대 여자아이들을 뽑는다면.. '앨리스' '도로시' 그리고 '앤' 일게다.(라고 저명한 작가가 말했다한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정말 명언이다 싶을만큼 '앤'에 대해서 잘 써내려간 노래가사만큼, 미야자키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빨간머리 앤'은 만들어진지 20년이 넘은 지금봐도 조금도 촌스럽지 않을만큼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특유의 섬세한 색채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의 정경묘사를 먼저 살펴보자.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아름다운 곳곳의 풍경은, 그림엽서로 써도 놓을만큼의 풍부한 감성이 가득하다. 앤이 가지고 있는 감성과 (그의 인격적 부분이야 어찌됐든) 탁월한 원화 실력의 미야자키, 몽고메리 여사의 상상력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이랄까..


어느 하나도 버릴 곳이 없을만큼, 캡쳐를 하는데 어려움이 느껴질만큼,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자연이란 것은, 말없이 사람을 키워낸다. 계절을 따라 변하는 그네들의 모습속에서 겸허함과 놀라움과 생명력에 대해서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마법을 가진 것이다.


저 곳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닐거라고,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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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모니카 벨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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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lshoon > 지금 갖고 있는 만화책


작년 언젠가 고스트바둑왕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다 본 적이 있었다. 바둑에도 약간 관심이 있었고 간만에 본 애니라서 그런지 정말 푹 빠져서 봤다. 다 본 후에 뭔가 끝이 이상한 것 같아서 만화책을 알라딘에서 구매를 했다. 그런데 웬걸! 내용이 애니메이션과 거의 똑같았다.(아니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이 원작에 대단히 충실했다.) 만화책에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할 무렵에서 애니메이션이 끝나는데 만화책을 2부를 제대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 어정쩡하게 끝나버려서 얼마나 허무했는지 모른다. 히까루가 한국의 고영하한테 지는 걸로 끝나서 지금의 바둑 정세를 제대로 반영했느니 어쩌니보다도 2부가 얼마 가지도 않아서 끝나버렸다는데 더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완결편까지 갖고 있다는 안도감에 다행해야 할까?

고스트바둑왕을 방에 둘려니까 책장에 마땅히 빈 곳도 없고 아직 책장을 살 만한 여력도 안되서 책상아래에다가 쌓아뒀다. 옆에 조금 보이는 부분은 바로 앞에 올린 북새통이 쌓여있는 자리다. 보통 의자에 앉게되면 발을 북새통 위에다가 올려놓는다. 계속 쌓여가면 어쩔지는 그때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고스트바둑왕은 내가 대학들어와서 처음으로 산 만화책이다. 대학 들어왔다고 만화책을 기피한 것은 아니고 주로 만화방에서 보거나 책방에서 대여해서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소장해보고 싶은 욕심에 그랬다. 잠시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당시에도 만화를 좋아했지만 더욱 좋아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아이큐점프라는 주간 만화잡지에서 드래곤볼을 연재하면서 나는 일본만화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전에 단행본으로 봤던 만화들이 대부분 일본에 원작이 있는 걸 그대로 베낀 거라는 걸 일본만화를 보면서 깨닫게 되면서 붉은 매, 열혈강호 등 몇몇 만화를 제외하고는 일본만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만화책들을 용돈 아껴가며 직접 사서 모으는 재미에도 빠졌다. 그 첫 시작은 당연히 드래곤볼이었고, 나중에 북두신권과 시티헌터로 이어져갔다. 그런데...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국내에서는 포켓북 형태로 드래곤볼, 북두신권, 시티헌터 등이 시중에 나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드래곤볼 단행본을 아이큐점프에서 출간하는 것을 중단하는게 아닌가. 그 때 23권 쯤에서 끊겨 버렸을 때 느꼈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설마 여기서 중단할리가 없다면서 끝내 기다리던 어느날 나는 그동안 모아놨던 만화책을 박스에 담고 헌책방으로 갔다. 별다른 흥정없이 헌책방 주인이 건네준 금액은 채 만원도 안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포켓북이 사그러들기 시작하자 아이큐 점프에서는 드래곤볼 단행본을 다시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면서 다시는 만화책을 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게 벌써 십년이 넘었다. 아이큐점프는 몇년전 드래곤볼 오리지날 무삭제판을 다시 간행했다. 북두신권도 원래 제목인 북두의권으로 소장판으로 출간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고스트바둑왕을 보고 난 후 인터넷바둑을 열심히 뒀다. 엠게임, 한게임, 넷마블 세 곳에서 동시에 시작해서 엠게임에서는 18급에서 10급까지 올렸지만 지금은 바쁜(?) 관계로 바둑을 접은지 수개월이 지났다. 만화책을 본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지금도 가끔은 늦은 밤 귀가길에 집근처 책방에서 만화책을 대여해서 보곤 한다. 책도 나에게 많은 것을 줬지만 만화책도 나에게 짧은 순간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더불어 소장하고픈 만화책을 접한다면 더할나위가 없다. 누가 나에게 그런 만화책을 소개해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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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lshoon > 무협지에 빠져들다


무협의 고전중 고전이랄 수 있는 영웅문이다. 디씨인사이드 도서 갤러리에서도 무협지에 관한 문의들이 올라오면 대부분이 이 영웅문을 읽어볼 것을 권장하는 글을 많이 봤다. 나는 이 책을 군대가기 전에 사모으기 시작했다. 원래 제목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이다. 김용의 작품은 이것말고도 소오강호, 천룡팔부, 녹정기 등 유명한게 많지만 책으로 본것은 영웅문과 청향비 뿐이다. 청향비는 역시 고려원에서 나왔는데 원제목은 서검은구록으로 기억하고 있다. 영웅문을 다 보고 난 후에 청향비를 샀었는데 제대하고 보니까 이 책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영웅문의 주인공 곽정, 양과, 장무기는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데 곽정은 대의를 가장 숭상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원에 대항하는 송나라 사람의 절개가 지나친 한족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양과는 가장 반항적인 인물이지만 결국은 곽정을 쫓아가고 만다. 장무기는 뛰어난 무공과 명교의 지도자로 원에 대항하지만 뭔가 어리숙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구음진경, 암연소혼장, 구양진경, 악비의 병법서 등 관심을 끌만한 소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소설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이 소설은 읽는 동안 그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옆에 있는 것은 몇년전에 나왔던 와호장룡의 원작인 청강만리다. 이것도 원제는 철기은병으로 기억한다. 영화의 원작은 1부에 기초하고 있는데 나도 2부와 3부는 사보지 않았다. 당시에 읽었을 때는 영웅문에 비해서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였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최고의 비급도 별로 안보이는데다가 당치도 않게 옥교룡이 이무백과 나소호를 제치고 주인공 행세를 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마초적인 근성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열정과 냉정사이 블루와 로소다. 무협지보다 더 최근에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이름들이 안떠오르는 것을 보면 재미가 없어서일까 싶지만 대강의 줄거리가 기억나는 걸로 봐서 이름이 석자라서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영화도 한 번 봐야겠다.

왼쪽 위에 눕혀져 있는 것은 노무현 관련 책과 유시민의 책이다. 가능하면 장르별로 묶었는데 저 책들은 정당별로 묶인듯이 보이게 되었다.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아무 관련없이 남은 것들을 빈공간에 집어 넣은 것이다. 가운데 것은 캘리니코스가 쓴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인데 책을 못 구해서 제본한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트로츠키가 제대로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닥에 있는 것은 영어 성경인데 아마도 고등학교 때 구입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이 내가 읽은 최초의 영어 원서가 아닐까 싶은데 고어가 너무 많아서 지금은 도저히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저자를 지금 보니까 킹 제임스로 우리나라에서는 침례교 쪽에서 보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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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루살이 > <달콤한 인생>나르시시트 선우

나에게 있어 느와르는 주윤발과 유덕화로 통한다. 유럽의 정통 느와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우상으로 떠오른 이들 덕분에 느와르라고 하는 것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홍콩 느와르는 파란색의 조명과 어딘지 모를 우울함, 그리고 허무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이쑤시개를 입에 꼬나문 주윤발의 입가에 담긴 미소 속에 어딘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느와르는 나에게 있어 허무함이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도 느와르라는 장르를 표방한 영화다. 그리고 나의 이미지에 걸맞게 영화 속에서는 허무감이 잔뜩 배어져 있다. 영화 초반 선우(이병현)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선우의 쉐도우 복싱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초반부 독백은 불교의 선문답이다. 그것이 벽암록의 고승 이야기 였던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선문답은 마지막 부분의 고승의 달콤한 꿈이야기와 겹쳐지면서 허무감을 극도록 끌어낸다.

깔끔한 외모와 그 외모만큼 깔끔한 일처리를 자랑하는 김실장 선우는 강사장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젊은 애인이 혹시 남자가 있는지 감시하고, 만약 그렇다면 조용히 일처리를 해 줄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선우는 강사장의 젊은 애인을 보는 순간 마음의 작은 파장이 인다. 아주 조그만 파장.

스승님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제자야, 그것은 바로 네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의 흔들리는 마음은 결국 그녀와 애인 모두를 살려두게 되고, 이것을 강사장은 모욕감으로 받아들여 그를 죽이려 한다. 물론 죽이기 전 선우가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면 살려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선우는 자신의 그 작은 파장을 자신조차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장은 이내 커다란 파도로 밀어닥쳐와 끝내 강사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한밤중 제자가 잠에서 깨어나 흐느낀다. 이것을 괴이하게 여긴 스승이 왜 우느냐고 묻는다. 제자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는것이냐? 그 달콤한 꿈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할 달콤한 꿈. 그 꿈을 꾸는 동안의 달콤함은 잠시 일어난 마음의 파장과 같은 것. 버드나무도 아니요 바람도 아닌 너의 마음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을 끊는 방법은 바로 자기자신의 소멸을 통해서다. 불교의 수행은 바람과 버드나무와 나와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움직임의 소멸이 아니며, 움직임 그 자체의 소멸도 아니며, 바로 자기자신의 소멸을 통해서 모든 움직임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우에게 있어서는 그 자신의 소멸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는 물 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나르시스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르시스임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쉐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한지를 보여주며, 그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창 밖의 불야성 욕망의 도시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한 모습 그 자체를 통해 나르시시즘과 허무주의를 모두 표현해내고 있는듯 싶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지못하겠어요. 말해봐요.

아마 선우는 평생을 생각하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7년을 섬겨온 보스가 왜 자신을 내치는지 자신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선우는,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선우는 끝내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호수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 숨진 나르시스처럼 선우 또한 우상화된 자신의 모습에 빠져 끝내 끝을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허무주의로 향해 가는 그 길의 끝을 그는 결말을 알면서도 끝내 되돌아서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비로소 자신이, 자신이 생각하던 그 아름다운 선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테니까...

크리스터퍼 래시가 70년대 미국사회를 나르시시트의 사회라고 보았듯이 그 사회는 현재 우리 서울의 모습과 닮아있다. 스포츠에 열광하기도 하고, 스타에 광분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영혼을 뺏기는 모습속에서, 나도 우리도 모두 일정 부분 나르시스트임을 인정한다면 선우의 자기애와 그 끝없는 허무에의 질주를 이해할법도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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