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세상에 찌든 때를 벗고. 쿨하게.
쿨보이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2
사소 요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생각과느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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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초등학교 때 딱 2군데의 학원을 다녔었다. 하나는 피아노 학원, 나머지 하나는 컴퓨터 학원. 그리고는 주로 어린이 도서관에 쳐박혀서 책을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 수업과 관련된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심한 정도로 다니지는 않았더랬다. 요새 아이들은 마치 공부를 위해 태어난 아이, 혹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아이, 뭐든지 잘해야만 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며 일찍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갓 벗어난 내 조카 녀석은 무려 학원을 4군데(피아노, 검도, 웅변, 영어)나 다닌다기에 깜짝 놀랬지만 그보다 날 더 놀래켰던 건 "하나 더 보내야할까봐..."라는 부모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요새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시험을 쳐서 진학을 하는 곳이 많이 없어져서인지 그에 대한 부담은 없어진 듯 하지만 혹여나 내 자식이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경쟁적으로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는 아니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호시노 유도 내가 말한 아이들과 같다. 이제 중학교 2학년생인 호시노 유. 그의 희망은 엘리트 코스로 바로 돌진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험 준비반부터 중, 고교 일관된 교육을 거쳐 일류 명문대학에 진학해 상장기업에 취직한다. 바로 이것이 그의 계획이고 희망이다. 그런 그에게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리니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가 살기로 했다는 것. 생전 처음 겪는 전학이라는 생활의 변화, 그리고 번화한 도시에 살다가 한적한(아니 횡한) 시골이라는 환경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체제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심리적 부담감때문에 그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전학간 학교는 학생수가 적은 분교였고, 게다가 같은 학년 학생은 호시노 유까지 모두 4명. 한 명은 여장 남자이고, 또 한 명은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하지 않으며, 마지막 한 명은 뭔가 나사가 하나 빠져버린 바보같은 녀석이다.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호시노 유. 과연 그는 변화한 생활에 적응해갈 수 있을까? 

  호시노 유는 세상에 찌는 소년이다. 그는 사회가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도 알고 있으며, 그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어른인 척 냉소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고, 진정한 우정을 찾기보다는 되려 계산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런 그에게 시골이란 환경은 너무도 낯선 곳이고, 마치 낙원과 같은 곳이다. 현실에 있을법하지 않은 곳이기때문에 그는 그 생활에 부적응해서 마치 물 위에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쿨하게 사는 것은 부와 명예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호시노 유는 점점 정말 쿨한 소년이 되어간다. 책의 중반까지는 그저 한 소년의 성장담으로 생각됐던 책이 중후반에 등장하는 반전때문에 긴장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긴장감이 후반부까지 잘 이어져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욕심으로, 혹은 부모의 지나친 배려로 여기저기 학원을 배회하는 아이들. 그들이 도시에 살던 호시노 유처럼 너무 삭막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아이답게 살 수 있는 아이들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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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도련님
도련님 베스트셀러 미니북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한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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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스메 소세키의 초기작품인 이 책은 내가 지난번에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재미있긴 하지만 굉장히 풍자적인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굉장히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예를 들어 2층에서 떨어져서 발을 삐어 아버님께 혼이나자 다음에는 삐지않고 제대로 떨어져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의 그런 성격을 하녀인 기요만 올곧은 성격이라고 추켜세워준다. 그런 그가 한 학교에 선생님으로 부임해가서 생기는 일을 그린 것이 바로 이 책인데, 그 안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빨간 셔츠라는 교감은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사람을 나타내고 있고, 알랑쇠는 그런 빨간셔츠에게 알랑거리면서 항시 붙어다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중에서 거센바람이라는 수학선생은 매우 정의로운 사람인데, 이 책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인물은 거센바람뿐인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도 빨간셔츠나 알랑쇠같은 사람은 많이 볼 수 있다. 특히나 빨간셔츠처럼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사람.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빨래줄에 널린 빨래들처럼 널리고 널렸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나스메 소세끼의 글솜씨는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더불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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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진실과 허구 사이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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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얼핏 봐서는 하루키의 책이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이 책의 제목은 독특했다. 처음에 이 제목을 봤을 때 난 <망량의 상자>나 <우부메의 여름>을 지은 쿄고쿠 나츠히코를 떠올렸었다. 적어도 기담은 왠지 하루키와는 멀어보였고, 책의 표지도 기묘한 느낌이 감돌았다랄까. 이 뿐 아니라 책장을 처음 폈을 때 만나는 첫문장인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대강 3인칭으로 진행되지만, 화자가 이야기의 첫머리에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이게 단편소설집이 맞나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게끔 했다. 어쨌거나 다소 하루키스럽지 않다고 생각한 요소들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겨갔다.

  책은 총 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 이 다섯편의 이야기는 제목에 걸맞는 이야기들이다. 즉, 뭔가 좀 기이한 이야기들이라 현실감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또 한 켠으로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날 법한 이야기기도 한 그런 이야기들.

  첫 이야기인 우연한 여행자에서는 하루키 자신이 경험한 사소한 우연을 이야기(한 공연에서 자신이 연주해줬으면 하는 두 곡을 연주자가 잇달아 연주한 일)하고 뒤이어 그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꺼낸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점 카페에서 디킨스의 책을 읽고 있었던 한 피아노 조율사가 마침 옆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은 여자와 알게되고, 그녀와 만나면서 자신의 누나와 같은 자리에 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녀는 유방암 검진을 받는다는 말을 그에게 하고, 그는 뭔가에 끌려 오랜동안 연락을 끊어왔던 누나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녀 또한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소 극적이긴 하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은 아닌 이야기랄까.

  두번째 이야기인 하나레이만에서는 서핑을 하러 하나레이 만에 갔던 아들을 상어의 습격에 의해 잃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자는 이 후 1년에 한 번씩 아들을 떠올리며 그 곳을 방문하고 어느 날 그 곳에서 우연히 일본인 히치하이커를 태우면서 그들의 입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잠시 두 층 아래에 사는 시어머니를 보러 간 남자가 지금 올라가니 팬케이크를 구워달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버린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내의 의뢰를 받고 남편의 자취를 찾으려하는 한 남자. 내가 종종 보던 드라마인 Without a trace(미 FBI 실종자 전담반의 이야기)가 왠지 생각나는 그런 이야기. 의뢰를 받은 남자는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남편이 사라진 계단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네번째 이야기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단 세 명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에 최면에 걸린 것 처럼 빠진 남자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를 기다리던 중 한 여자를 만나고 그녀를 통해 신장처럼 생긴 돌이 이동하는 다소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마지막 이야기인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종종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는 데 별 지장은 없지만 나름 불편을 느꼈던 그녀는 우연히 구청에서 하는 상담소를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이름을 되찾게 된다.

  이렇듯 다섯개의 이야기는 소설의 허구성과 현실의 진실성을 넘나드며 아찔한 곡예를 한다. "에이 그런 일이 어디있어!"라고 치부하기엔 진실성이 있어보이고, 정말 있었던 일이라고 단정해버리기엔 허무맹랑한 이야기. 마치 예전에 즐겨 보던 토요 미스터리가 생각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도쿄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배경은 그리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 정도로 이 곳이 도시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랄까. 하루키의 다른 이야기들처럼 존재나 사유에 대한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하루키의 이야기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흡입력이나 허구와 진실을 오가는 점들은 변하지 않은 듯 싶다. 그리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이기때문에 하루키에 거리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작지만 기묘한 우연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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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만약 그들이 변화했었더라면?
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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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더풀>과 <공중그네>로 내게 즐거움을 한껏 선사해줬던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라라피포>. 갓 나왔을 때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신착도서 서가에 꽂힌 것을 발견하고 냅다 집어든 책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전작에서 보여준 유머와 엽기적 사고방식은 이 책에서도 유효하다. 그렇지만 이 전에 그의 작품에서 만나본 사람들은 마음의 고민을 가지고 그것을 풀지 못해 끙끙거리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형적인 모습부터 시원찮다.

  명문대 출신이지만 대인공포증때문에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남자, 그는 한동안 윗층 남자가 내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와 여자가 내는 신음소리때문에 갑자기 잊고 지낸 섹스를 떠올리고 자위를 했고, 심지어 윗층의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듣고자 빡빡한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도청기까지 사는 모습을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뚱뚱해서 여성적인 매력은 전혀 없어보이는 여자는 알고보니 남자를 끌어들여 음란 DVD를 촬영하고 있고, 머리가 반쯤 벗겨져서 한 풀꺾인 모습인 관능소설 작가는 취재를 한답시고 여고생을 탐닉한다. 소심해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남자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심지어 남의 부탁으로 방화까지 저지른다. 게다가 하루하루 누워서 빈둥대며 무료한 생활을 보내던 한 40대 주부는 길에서 우연히 에로물 배우로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그들은 누가봐도 뭔가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전작 <공중그네>에서 만나본 주인공들은 자신의 그런 삶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시도(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이라부에게 찾아가는 것)를 하고 있다면, 이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그저 열심히 되는대로 타인의 육체를 탐닉하고, 쾌락에 빠져만 있을 뿐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지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설사 조짐이 보였다고 해도 금새 꺼져버리는 불꽃같은 조짐이었을 뿐.  

  솔직히 말하면 <공중그네>에서 유쾌한 웃음을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아마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책도 이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만.) 둘의 구성(여러명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라라피포>속에는 이라부같이 문제점을 해결하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변화하고 싶어도 그들에겐 변화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진다. 이라부의 도움으로 사회와 다시 어울려서 살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이 책 속에 사람들은 사회 밖에서 떠도는 사람들이다. 물과 기름처럼.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 사회라는 굴레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또 몇이나 될까. 결국 그들은 사회 밖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을까. 명문대를 나와 여기저기 원서는 찔러넣지만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 권태로운 일상에 마냥 따분해 하는 사람, 성생활에 대한 불만으로 삶 자체가 불만인 사람, 만사를 삐딱하게만 보려는 사람 등등. 이 사회 안에는 <라라피포> 속에 등장한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허리케인을 불러올 가능성이 생기는 것처럼 이 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포자기하고 변화를 어려워한다면 우리도 결국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모습을 한심해하면서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작은 변화가 몇 년 뒤의 모습을 확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 <라라피포> 속의 주인공들이 <공중그네>의 주인공들처럼 '변화'했다면 그들에겐 어떤 미래가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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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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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글로 사로잡았다. 장편 소설인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이어지는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에세이인 <자전거 여행>을 통해 이어지는 그의 삶의 이야기는 그 대상이나 시대때문에 다른 느낌이 있긴 했지만 군더더기없는 그의 문장은 그의 어느 글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문체는 소설을 꽤 빨리 읽어가는 내 습관을 무색하게 만들며 느릿느릿 한 걸음씩 문장과 문장을 읽어가게끔 했기에 왠지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나 개학을 앞두고 마지못해 해치워야하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김훈의 소설집인 <강산무진>이 출간되었을 때 나의 고민은 이 숙제를 빨리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되도록 미뤄둘 것인가하는 것이었다.(물론, 이 책 속에 실린 작품 가운데 '화장'이나 '언니의 폐경'은 문학상을 수상했기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나볼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문학상 수상작품집보다는 작가의 소설집을 좋아하는 관계로 미뤄두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매도 먼저 맞자는 생각으로 그의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처음 이야기인 '배웅'을 읽으면서 난 장편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접한 것보다는 좀 더 속도감있는 문장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훈의 다른 글을 읽을 때보다는 빠르게 읽어갔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빨랐을지라도 그 여운이나 슬픔은 되려 오래도록 남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배웅'에서 만난 택시기사, 아내의 죽음도 그저 일상처럼 지나가는 '화장'에 등장하는 남자, '향로표지'에서 만난 등대장, '뼈'에 등장하는 교수, '고향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형사, '언니의 폐경'에 등장하는 슬픔을 가진 자매, '머나먼 속세'에 등장하는 챔피언에 도전하는 권투선수, '강산무진'에 등장하는 암에 걸린 회사원. 그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 각각의 삶의 슬픔이나 고통, 그것과 대면하는 모습도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책을 읽는 독자의 모습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두가지의 아픔을 가지고 있기마련이고,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삶과 타협(혹은 순응)하지 않았더라면 아내의 죽음을 겪으며 화장품 광고에 대한 시안을 결정하는 일은 미뤄버렸을 것이고(화장), 그렇게 큰 의미도 없는 여자의 엉덩이 뼈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일을 막았을 것이며(뼈), 담담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듯 이혼하자고 하는 남편의 말에 동의하지도 않았을 것이리라(언니의 폐경). 그들은 그저 그렇게 자신의 앞에 닥친 현실에 순응하며 그저 그렇게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부는 것같은 일반적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슬픔은 분출되지 않고 가만히 가슴 한 켠에 놓여져있기에 독자가 보기엔 되려 더 슬프고, 애처롭기만 하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슬픔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은 김훈의 문체일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그의 문체는 군더더기가 없고 담담하다. 원래의 기사를 쓰던 그이기때문인지, 아니면 독자들이 그런 점을 떠올려주기를 바랬던 것인지 간혹 읽다보면 기사를 읽는 느낌을 받을 때도 더러 있었다. 등장인물에게 어떤 특정한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저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문장은 되려 독자에게 등장인물에게 감정이 이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셈. 뭔가 기사같은 냄새가 풍기는데라고 생각한 데는 등장인물들의 직업이 전문성을 띈다는 면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짧은 단편 속에 그 직업의 특성을 녹여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직업적인 말이나 행동은 전문적 기사에서 만날 수 있는 용어처럼 느껴졌지만, 되려 그런 면들이 그들의 삶과 결합하여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듯 하다.

  전반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마음은 '고독'과 '슬픔'으로 이루어져있다. 위태위태하게만 느껴지는 그들의 감정. 하지만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들의 '일상'자체이다. 그들의 삶은 그런 감정에도 불구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내가 그렇듯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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