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친구에게 빌려서 읽고 또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 그 때의 나는 자신이 불우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런 내용이 좋았던 것일까. 동화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소공녀였다. 소공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고생한 부분은 건너뛴 채 이웃 아저씨의 도움을 받고 마침내 행복해지는 부분만 반복해서 읽고 또 읽던 내가, 책 한권이 송두리째 '그런 이야기'인 책을 만났으니, 그 흥분은 당연한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그런 감정의 이름이 '신데렐라 컴플렉스'인것을 알았다...쩝.그런데 이건 웬일일까. 다 컸는데도, 결혼도 하고 아이엄마가 됐는데도 아직도 이 책이재미있다. 학교 도서실에서 키다리아저씨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는데, 중간에 덮지 못하고 신나게 다 읽어치우고 말았다. 어린시절의 나도, 단순히 멋진 남자를 만나 부유한 생활을 하게되는 스토리만 보고 무턱대고 좋아한것은 아니었나보다. 편지(일기에 가깝지만)에서 느껴지는 주디의 발랄하고도 씩씩한 성격이 스토리보다도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아닐까. 게다가 주디의 심정이 그대로 엿보이는 특이한 삽화는 정말 압권이다. 볼거리에 걸린 주디라든가 키다리아저씨의 그림은 몇 년이 지나도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날만큼 소박한 매력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똑똑하고 예쁜 아이도 좋지만, 우리 아이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예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라면 이 책을 권해도 좋을 것 같군요. 똥이 거름이 되어 식물이 자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동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한국적'인 그림. 도대체 한국적인 것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면 딱히 댈 말은 없지만, 강아지 똥의 그림을 이국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예쁘고 현란한 그림들을 좋아하다보니 언제나 집어들게 되는 건 외국 그림책들. 세계화도 좋지만, 소박하고 정감있는 우리것에 대한 안목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필수 조건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강아지 똥은 만점입니다!
아직 신경숙이라는 이름이 식상해지기 전인, 95년 무렵에 읽었던 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제일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정말 잘 지은 제목이다...'하는 것이었다. 단순명료하고 평범하지만 더 이상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깊은 슬픔' 그 네 음절의 단어가 책 두 권을 모두 털어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슬픔에 동화되어 한동안 무기력해질 정도였다. 깊고, 무거움, 슬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무거운 돌을 매달고 한없이...한없이...가라앉는 듯한 고통이 정말 내가 겪은 양 생생히 다가왔다. 등을 돌린 세를 느끼면서 무기력하게 살이 쪄 가는 은서의 모습에서 섬뜩할만큼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기존의 슬픈 사랑에서 여주인공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말라갔다. 하지만 살이 쪄 가는 은서. 그것이 정말 슬픈 여자의 모습, 결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각 관계. 어긋나고 비켜가는 사랑의 화살들. 숱하게 겪은 이야기임에도 섬세하고 현실적인 내면의 심리 묘사로 이렇듯 뛰어난 수작을 만든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신경숙이라는 이름은 안전한, 보증 수표 정도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일정 선 이상의 질과 감동이 보장된 작품이지만, 더이상 새로운 흥분을 발견할 수가 없는 보증 수표.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고 기존의 소설과 비슷한 종류의 가슴 아픈 슬픔이 느껴졌지만, 색다를 것이 없는 감동이어서인가, 그 느낌은 며칠이 채 가기도 전에 엷게 흐려져버렸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녀가 '나는 쓸 수 있는 것, 쓰고 싶은 것만 쓴다' 그런 취지의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신경숙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들에 매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 틀을 넘어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작가가 틀을 넘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머무르고만 싶어한다면, 글쎄... 적어도 필요성 정도는 느끼고 조바심을 치는 것이 전반적인 작품 세계에도 생동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짧은 나의 소견이다. 신경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지만, 기존의 작품에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들이라면 굳이 시간을 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존 그리샴의 책 중 가장 재미있고도 뛰어난 책이라 단언할 수 있다. 게다가 책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고 영화화된 많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흑인과 백인이라는 미묘한 갈등 구도 안에 '유아 성폭행'이라는 폭발력 강한 화두를 던져 넣고도 짜임새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존 그리샴의 다른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타임 투 킬에서 딸아이의 복수를 하는 아버지는 독자에게 끈끈한 인간미를 풍기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변호사와의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믿고 따르는 종속적인 관계를 벗어난 대등한 우정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도 매우 흥미롭다.모두가 인정하겠지만, 이 책의 압권은 기막힌 심리적 반전을 유도하는 최종변론이다. 최종변론을 읽으면서 나는 배심원, 변호사, 피고인과 그의 어린 딸 모두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거나 실망하지 않으리라고 자신있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