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가사의 울림이 없는 노래는 노래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 역시 중증 문자중독증 증세겠지.샘이 많은 나는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동경한다.상상력이 부족해서 소설 읽기 싫어하는 내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밉도록 부럽다.사람들이 '달팽이' 노래에 갸우뚱할 때 나는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가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대체 이런 가사를 가요에 버젓이 쓰는 이적이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그런데 이제 그가 날 제대로 뒤집어 놓기로 작정한 모양이다.소설이라니. 내가 절대로 넘보지 못할 글쓰기의 영역. 이제 그가 그 곳에 손을 뻗는다.손때 묻은 듯한 초록색 표지를 넘기자 '활자를 먹는 그림책'이라는 짧은 글이 나를 반긴다. 진짜 '나쁜' 책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사람 기를 죽이다니.용서할 수 없지만, 일단 잡았으니 오기로라도 끝까지 읽어봐야지. 기억하라. '동성애자'가 동성연애자가 아니듯이 그들은 '음혈인간'이지 흡혈귀가 아니다.세상에 대고 '난 피를 마신다'라고 당당히 외칠 그 날을 기다리는 음혈인간일 뿐이다.이 글에서 음혈인간을 동성애자로 치환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 단순한 착각일까.외계령,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지 뭐.제불찰씨의 불행은 정말 제 불찰이었을까?제불찰씨가 청소해 준 귀로 제불찰 씨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이적씨,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요? 톰과 제리의 비밀을 읽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휴우.. 다행이다.뜨끔했다. 가끔 그렇게 잔인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누군가 정말 그래주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책을 읽다 내 우산에게 물어봤다. 너 정말 거기 가고 싶니? 지금이라도 보내줄까?그러다 그를 만난다. 내 지문마저 기억마저 가져가버릴 그를.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구나, 이 사람.당신 때문에 뒤를 돌아볼 수가 없잖아. 내 뒤에 검은 갑옷을 입은 그가 있을 것 같아서.그를 만나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듯 해서.친절하기도 하지. 기나긴 이야기에 지쳐있을 독자를 생각하다니. 짧은 이야기들로 다시 숨을 고른다. 똑똑똑.어? 여기까지구나. 지금까지와 다른 검푸른 책장이 나타난다.이전에 유명인들이 추천하는 책 목록을 본 적이 있다.그 때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적씨의 추천 도서는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이었다.그 때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가 이런 '대형사고'를 치게되리란 걸.피리부는 사나이 적, 무서운 사람이군요.그를 바짝 따라가지 마세요. 그가 내는 피리소리 따라 떠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