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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지는 새 - 서태지 컴퍼니 DVD BOOK
서태지 컴퍼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1990년대 대중음악계와 대중문화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사람이 있다.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렸던 서태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부터였다. 당시는 댄스가수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때였다. 그렇기에 ‘난 알아요’를 들고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낯선 이름의 그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춤을 추었고 빠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 서태지가 다시금 말을 걸어왔는데 그 방법이 노래가 아닌 글이다. 침묵하기로 유명한 그가 말을 걸어왔다는 건 의아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노래라면 모를까 글이라는 것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는 서태지컴퍼니의 <낙엽지는 새>를 통해 대중들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통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래로 못 다한 이야기들을 하려는 것일까?
새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새장 속에 있다. 그 중에는 ‘작은 새’도 있다. 작은 새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에 비하면 볼품없는 모양새다. 또한 나이 많은 새에 비하면 아는 것도 적다. 그래서 새장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팔려갈 가능성도 없다. 그런 작은 새의 예정된 운명이란 확고하다. 그저 하루하루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꾸벅꾸벅 졸며 늙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새는 운명을 거부한다. ‘숙명’을 만나려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숙명이란 당연하다. 날고 싶어 하는 것, 새장 밖으로 날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야생의 동물들이 초원 위를 달리고 싶어 하듯이, 인간이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듯이 새는 새장 밖 하늘로 훨훨 날고 싶어 한다.
운명은 가혹하다. 새장뿐만 아니라 주위 새들의 놀림과 만류, 그리고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감옥’들은 작은 새의 날개 짓을 무겁게 만든다. 작은 새는 날지 못한다.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 느껴야 하는 그 가혹감은 절망감 그 자체이다. 작은 새에게도 그 절망감이 찾아온다.
그러나 ‘열망’을 지닌 존재, 그리고 ‘자유의지’를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이들은 해내고야 만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알고 도전할 줄 안다. 작은 새도 그러하다. 그에게는 가능성이 있었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낼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온갖 장애물이 도처에 깔려있지만 기어코 작은 새는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하늘에 점점이 자신의 흔적들을 남기며 날개 짓을 시작한다.
물론 그 새는 더 큰 어려움을 봉착할 것이고 때로는 절망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장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총을 든 포수가 사방에서 노리고 있는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또한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새는 돌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안전’하다는 이유로 가능성을 저버리고 남들과 똑같아 지기 위해서, 실패할 경우 그 대가가 참혹하기에 삶에서 아예 가능성과 도전이라는 단어를 없애야만 하는 것일까? <낙엽지는 새>는 그것을 묻고 있다.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그 물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모해 보여도 적지만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면, 설사 가능성이 없더라도 도전해내고 기어코 성취해내려 했던 그의 삶은 기억하는 이라면 <낙엽지는 새>에서 서태지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를 추억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낙엽지는 새>가 서태지가 말을 건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리고 서태지의 행적이 보여준 것들을 떠올린다면 이 물음은 서태지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태지와 소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위 ‘서태지 정신’이라는 것을 이어받는 과정일 테다.
‘문화대통령’이라고 수식어보다 하나의 상징이자 도전, 그리고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서태지. 그가 말을 걸어왔다. 미운 오리새끼가 노력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백조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누구도 노력하지 않으면 가운데가 텅 빈 눈동자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있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낙엽지는 새가 될 것인가, 새장 속의 새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