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명성만 놓고 본다면 한국에 알려진 활동하는 외국 작가들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연 최고로 뽑힌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해변의 카프카> 이후 2년여 만에 장편소설 <어둠의 저편>으로 돌아온 것인데 특히 이번 작품은 저자의 데뷔 25주년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어둠의 저편>은 ‘마리’와 ‘에리’라는, 너무나 다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자정에서 오전 7시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중국 마피아, 창녀, 러브호텔의 직원들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도시의 삭막한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또한 <해변의 카프카>에서부터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관계’에 대한 것을 여전히 관찰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억’을 언급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두 주인공 마리와 에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자매다. 언니 에리는 ‘백설공주’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미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잡지 모델을 했을 정도다. 반면에 마리는 ‘숲 속의 대장장이’로 머리가 좋은 수재다. 또한 주위에 걱정도 끼치지 않는 믿음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알레르기 때문에 가족과 달리 혼자 밥을 먹어야 했던 에리에 비하면 마리는 그야말로 손이 가지 않는 자식이다.


형제나 혹은 자매가 이런 설정으로 등장한다면 보통 둘 중 하나로 내용을 예측할 수가 있다. ‘갈등’이나 ‘화해’하는 것이 그것일 텐데 <어둠의 저편>에서 이들의 관계는 그것을 크게 비껴나지 않는다. 마리와 에리는 한 집에서 살지만 한 집에 사는 것 같지 않은 관계다. 갈등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가족애라는 것이 없는 가족,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가족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테다.


<어둠의 저편>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줄거리는 마리와 에리의 ‘화해’다. 비록 눈에 띄는 갈등은 없었다 할지라도 이들은 화해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가슴 속은 더욱 황폐해질 테니 말이다. 마리와 에리가 화해하는 장면은 마리가 밤사이에 만난 에리의 친구 다카하시를 만나는 것에서 비롯된다. 또한 다카하시와의 관계 덕분에 알게 된 호텔 ‘알파빌’ 사람들도 마리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한몫한다.


다카하시와 사람들 덕분에 마리가 에리와 화해하게 되는데 얻는 용기는 ‘기억’이다. 아마도 저자가 <달의 저편>에서 던지려고 했던 희망적이 메시지도 이것일 텐데 보이지 않는 서로의 끈을 이어주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의 ‘연료’로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밤의 시간 동안 이 같은 메시지를 얻은 마리는 잠만 자는 에리에게 간다. 그리고 가슴에 기억을 앉은 채, 에리의 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자매는 서로의 품을 나누게 되고 그 동안의 갈등 없이 벌어졌던 틈새를 단단히 조이게 된다. 기억을 연료로 삼아 관계는 더욱 탄탄해지는 것이다.


<어둠의 저편>에서 ‘보이는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며 또한 새로움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 백설공주 언니와 수재 동생이라는 자매의 이야기라고 것도 이제껏 많이 봐왔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보이는 이야기’는 실망스러울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언제부터인가 저자는 ‘상징’적인 것들을 그림퍼즐 맞추듯 작품 곳곳에 배치하는데 노력하기 시작했고 <어둠의 저편>도 그렇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 동안의 어느 작품에 비해서 그런 면이 더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에리와 마리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인가 하는 것일 텐데 그것은 에리와 마리가 밤 시간 동안 무엇을 했었는가 하는 것에서 대략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잠만 잤고, 누군가에게 관찰 당했고, 텔레비전 속에서 비명을 질렀던 에리는 누군가의 ‘욕망’이다.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욕망 대상일 뿐이다. 물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런 류의 사람들은 쉽게 만족스러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반면에 마리는 어떠한가. ‘숲 속의 대장장이’는 스스로 만들고, 돌아다니기를 겁내지 않는다. 에리의 경우에 비하자면 마리는 욕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또한 타인의 욕망 대상이 되는 걸 거부할 줄 안다. 이런 류의 사람은 에리와 같은 사람들보다 행복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 있고 작품에서도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자매 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그들의 소유물 등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의미’들을 갖고 있다. ‘보이는 이야기’만 본 뒤에 <어둠의 저편>을 덮는다면 그건 작품의 반도 읽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은 세밀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데뷔한지 25주년. 그 동안 다양한 작품들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저자는 데뷔한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변화해 나가고 있다. <어둠의 저편>은 생생한 그 증거이다. 덕분에 ‘하루키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저자와 동시대를 살고 있어 ‘하루키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됐으니 <어둠의 저편>이 찾아온 것은 반갑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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