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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부 - 2004 제11회 실천문학 신인상 장편 수상작
한성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두 평반쯤 되는 비좁은 공간에 열두 명이 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변 문제를 처리해야 하며 나아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 이곳은 어디인가? 부랑인수용소다. 이곳은 ‘선진적인 거리질서 정화’를 위해 정부가 만든 합법적인 공간으로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술 취해 잠들어 있으면 마치 ‘삼천교육대’에 데려가듯 마구잡이로 잡아오는 곳이다.
두 평반쯤 되는 공간에서 열두 명이 생활한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늘 피곤한 인간들’이다. 더군다나 희극적이게도 이곳에서 ‘권력’이라는 게 있어 군대의 계급처럼 절대적인 서열이 있다. ‘대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피곤할 수 밖에 없다.
부랑인수용소에서 ‘대빵’은 무엇을 하는가. 권력을 음미한다. 그가 지닌 권력의 상징은 ‘전화번호부’다.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난 전화번호부를 갖고 독서를 하는 것이다. 휴지 대신 사용하라고 준 전화번호부를 들고 독서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아니, 전화번호부를 보며 ‘독서’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대빵은 독서를 한다. 전화번호부에 담긴 여자이름을 보는 것이 그의 독서다. 그러면서 그는 사색이다. 여자 이름이 이른바 ‘필에 꽂히면’ 과대망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여자가 대학교수니 재벌 집 2세니 하며 자신을 기다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위 ‘지랄을 떠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다들 대빵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대빵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대빵은 전화번호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빵은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11회 실천문학 신인상 장편 부문 수상작이기도 한 한성탁의 <전화번호부>는 ‘부랑인수용소’를 통해 부조리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변을 처리하기 위한 전화번호부가 권력의 상징으로 통한다는 점이나 군대에서 타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이가 이곳에서 자유를 억압당한다고 설정한 것들은 신인이라고 보기에 놀랍다. 더군다나 부랑인수용소의 작은 공간을 통해 권력에 안달하는 이들의 행태와 초라한 권력의 이면을 보여주는 솜씨 또한 수준급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부랑인수용소를 무대로 선택했을까?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한 불합리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합법’이라는 단어 아래 맞고, 죽고, 신음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시대가 변했어도 그랬다. 법의 틈새 사이로 혹은 법이 외면하는 사이에 살기 좋은 시대에도 ‘지옥’은 만들어진다.
서열 2위 중국 돼지의 표현에 따르면 부랑인수용소의 이들은 ‘살아 있는 시체’다. 서열 3위 개백정의 표현에 따르면 ‘사육되고 있는 개새끼’들이다. 이들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저자가 그려낸 부랑인수용소의 삶은 참으로 처참하다. 교도소의 죄인들보다 더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과장은 아닐 테다.
그나마 교도소의 죄인들은 죄 값을 치른다고 명목으로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부랑인수용소의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인가. 죄진 것 없이 단지 행색이 초라하고 돈이 없으며 권력이 없고, 갈 곳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길 거리에서 잠자다가 인간 버러지가 되고 인간 기생충이 됐다.
대빵, 중국 돼지, 개백정, 아프리카 메기, 로마의 쥐새끼 등 이곳에 온 누구의 사연을 들어봐도 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단지 ‘가진 것이 없어서’ 들어왔다. 그래서 이들은 자유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이들은 개돼지 같은 취급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은 살아있는 시체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탈출’을 꿈꾼다. 그것은 본능적인 욕구다. 자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를 소유하고 싶은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이들은 탈출하기로 한다. ‘자유 만세’를 불러보려 한다. 그러나 쉬울 리가 없다. 오히려 맞아죽어도 할 말 없는 명목을 제공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이들의 처지는 안쓰럽기만 하다.
합법적인 공간이자 지옥 같은 곳, 부랑인수용소. 그리고 권력과 동일시되면서도 뒷일 처리하는데 쓰이기도 하는 전화번호부. 저자는 이 두 가지를 갖고 인간의 밑바닥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비겁하고, 비굴하며, 처참하고 무능력하면서 나약한 인간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또한 그곳으로 세상을 비꼬며 풍자적인 언어들을 쏟아내는데도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이 신인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이 반갑다. 또 한 명의 기대주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