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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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독자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을 때 독자들은 책의 제목만큼이나 저자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독자들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거나 울게 만들 수 있는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저자만큼이나 힘겹게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책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 백 페이지의 처음이나 끝에 아주 작게 이름 한 줄 집어넣는 것에 만족하는 ‘편집자’들이 그들이다. 책이 세상에 나오는데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편집자들은 저자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고생해도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언제나 비껴있다. 저자가 빛이라면 편집자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할까?


정은숙의 <편집자분투기>는 그러한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여년의 시간 동안 실무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도 편집자이자 출판사의 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는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겪었던 경험을 통해 생생한 ‘편집자 인생’을 털어놓고 있다.


사회 각층의 여러 인물들은 소설에서 다양하게 부활하며 그들의 비애를 보여준다. 하지만 유독 ‘편집자’는 예외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본 마멜’ 정도가 편집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이나 에세이도 그랬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편집자분투기>를 통해서 책을 편집한다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가려져 있던 편집자들의 진짜 모습을 기대할 수가 있다. 특히 자신의 실패담까지 과감하게 털어놓을 정도니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좋다.


“편집자는 책을 만들면서 세상의 일부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 그런데 책의 의미를 일련의 정연한 사고체계 그 자체라고 확대해서 보면 인류가 가진 지혜가 다 이 가운데 내포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만든다는 것은 비단 책만이 아니라 세상을 편집하는 작업 한가운데 있다는 의미도 된다.” <편집자 분투기> 중에서


책을 편집한다는 것이 세상을 편집한다고 말하는 저자.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편집 실무에 뛰어들었다. 왜일까? 좋은 직업들도 많았을 텐데 충분히 박봉이 예상되는 편집자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책을 편집한다는 마술 같은 겉모습에 현혹된 것일까?


저자가 1985년 1년차 초보 편집자로 한 일은 교정 교열 맞춤법 익히기와 숱한 잡무들이었다. 기자가 되겠다는 꿈에 ‘홍성사’에 취직한 저자에게 초보 편집자의 일들은 그야말로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낡은 계단에 자장면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어젯밤에 편집부의 누군가가 야근을 했다는 증거였다. 밤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고도 늘 일정에 쫓기는 것이 편집자의 운명임을 그때 이미 나는 깨달았다. 또한 잡지 마감에 닥쳐서는 편집부 선배들이 모두 예민해져 있었기에 막내사원으로서 분위기를 파악하여 대처하기가 만만치 않았다.”<편집자 분투기> 중에서


어째서일까? 그럼에도 저자는 편집하는 일을 20년 이상 해내고 <편집자분투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일까? 아니다. 페이지 어느 곳에서도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발전을 위한 채찍질을 하는 것 같다. 저자는 한국의 편집자들과 편집자들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말을 거두지 않는데 그 모양새는 마치 자기 자신을 향한 일침을 놓는 것과 같다.


<편집자분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자를 위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어느 문학작품에 뒤지지 않는 진한 향기를 갖고 있다. 책 한 권을 언급해도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저자의 글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에 심취해 있는 편집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생생한 편집자들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독자들이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를 일깨워준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편집자들의 존재다. 더불어 편집자뿐만 아니라 독자가 조금이라도 책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애쓴 여러 실무 팀들의 존재도 알려준다.


책을 논하면 보통 저자를 떠올린다. 그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편집을 이야기할 때야 고작 책 표지를 논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편집자분투기>는 알려준다. 세상을 편집하는 심정으로 책을 편집하는 고단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독자가 웃고 울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음을 말이다.


편집자를 위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정은숙의 <편집자분투기>. 보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외면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으로, 책이라는 종합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술을 감상하기에 앞서 한 번쯤 마주쳐야 할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출판 기획편집자에게 줄 찬사는 책을 잘 만들었다는, 또는 편집이 잘 되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편집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다.”<편집자 분투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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