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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소녀 백서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인터넷을 통해 각종 백서가 나돌고 있다. 폐인들의 백서, 커피중독자들의 백서 등 이제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백서들이 등장하는 지금은 그야말로 백서가 난무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또 하나의 백서, <불량소녀 백서>가 등장했다. 난무하는 시대에 또 하나의 백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장난기의 발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김현진의 <불량소녀 백서>는 품격이 다르다. 울림이 있다고 해야 할까? 서경식이 <소년의 눈물>을 통해 고독한 경계인이 느껴야만 했던 재일동포의 울림을 들려줬다면 <불량소녀 백서>는 기존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소녀의 투철함이 자리잡고 있다.
고등학교를 석 달만에 때려 친 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 <네 멋대로 해라>를 세상에 내놓기도 했던 저자의 <불량소녀 백서>는 심심풀이로 만든 백서는 아니다. 또한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선도자의 언어도 아니다. 장난스러운 포장, 눈길 끄는 언어로 가득하지만 투철함이 담겨져 있다.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총대를 멨다’고 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녀가 인정하듯이 세상에서 정해놓은 ‘여성의 길’을 걷지 않는 존재다. 이제껏 세상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운명을 자처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생각하든 저자는 그것을 만족스러워한다. 왜냐고 물으면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아가기”때문이다.
저자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도대체 왜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도 세상이 정해놓은 길로 걸어가려고 하는지를 안쓰럽게도 보고 답답하게도 본다. 그래서 <불량소녀 백서>를 내놓은 것이다. 총대를 메고 나선 저자가 쏟아지는 욕을 온몸으로 감수할 테니 뒤이어 오는 ‘불량소녀’들은 좀 더 자신감 있게 세상을 살아보라고 격려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이 시도를 장난스럽게 볼 수 있을까?
‘불량소녀’라는 말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단어 그대로 불량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저자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는 나’를 추구하는 여성들을 뜻하는 동의어이기도 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모습의 여자는 크게 둘이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부터 누누이 강조되는 ‘현모양처’형이고 두 번째는 요즘 크게 부각되는 ‘팜므 파탈’형이다.
‘현모양처’는 전부터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됐던 모습인지라 불만을 토로하는 저자의 말이 낯설지는 않다. 그런데 ‘팜므 파탈’은 어째서일까? 요즘 ‘팜므 파탈’은 ‘남자를 거세시키는 형상’이라며 남성들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두려움이라고 일컫는데 저자는 왜 불량소녀들의 길은 그것과도 확연히 다르다고 하는 것일까?
팜므 파탈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남자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모양처도 그렇고 팜므 파탈도 그렇다. 여성의 사고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저자는 ‘현모양처’도 아니고 ‘팜므 파탈’의 길도 가기 싫은 여성들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세상에는 두 가지 길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두 가지의 길 모두 여성이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묻는 질문이다.
그럼 저자가 제안하는 ‘불량소녀’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불량소녀는 ‘매대에 놓인 상품’처럼 자신들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아니다. 상품들은 선택받기 위해 자신들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지금의 여성들은 상품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타고 났다. 비극적인 운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극의 첫 번째 이유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틀’이 확립되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남성의 세상에 익숙해져버린 여성들의 심리도 있다.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여성들은 ‘누구보다 예뻐야 하고 누구보다 뚱뚱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를 갖고 주위의 여성들은 경계한다. 자아 찾기보다 주위 여성들과의 경쟁에 삶을 할애하는 시간이 많을 때도 있다.
올바른 경쟁이라면 좋다. 그러나 남성을 위해 여성끼리 경쟁해야 하는 판은 저자가 보기에 문제 중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저자의 백서는 일종의 각성제와도 같다. 깨어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상품처럼 인정하는 잘못된 경쟁의식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의식에서, 좋을 것을 나눌 때는 남자를 찾다가 울 일이 있을 때만 여자친구를 찾는 ‘나쁜 년’같은 의식에서 깨어나라고 저자는 따발총을 쏘아대듯 펜으로 백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량소녀 백서>는 남성 보다는 여성들이 먼저 섭취해야 할 영양제와도 같다. 특히 정점을 이루는 곳은 ‘불량소녀’와 ‘나쁜 년’의 차이점을 언급하는 대목인데 남자들은 웃으면서 지나칠 수 있겠지만 여성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멈출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여성들을 욕먹게 하는, 여성들의 자매애를 손상시키는 ‘절대악’적인 존재를 ‘나쁜 년’이라고 명한다. 불량소녀가 ‘군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나쁜 년은 ‘남들 다 가는 군대 가지고 별스럽게 군다’고 말한다. 불량소녀가 성공한 후 다른 여자후배들을 도울 때, 나쁜 년은 여자후배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남몰래 짓밟는다.
저자가 보기에 ‘나쁜 년’은 ‘여자는 여자의 적이다’라는 사회의 오해를 공고히 만드는 존재로 불량소녀들이 절대 따라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억지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어필함이 느껴진다. 어느 것보다 저자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불량소녀 백서>는 백서답게 여유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재치 있는 언어들이 그 여유를 더욱 여유롭게 한다. 그러나 본질까지 여유롭게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얼굴은 웃지만 가슴은 울고 있는 심정과도 같다. 그렇기에 <불량소녀 백서>는 다른 백서와 달리 필요할 때만 찾는 백서로 남지 않는다.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하는 백서라고 해야 할까? <불량소녀 백서>는 너무나 당당하고 신명나게, 제멋대로지만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여성의 길을 말하고 있다. 이 땅의 소년들에게 ‘불량소년 백서’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여겨질 정도로 따르고 싶은 내용들이 많다.
<불량소녀 백서>는 남성들에게도 권할 수 있는 책이지만 역시 여성들의 품에 안겼을 때 그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 효력은 자유의 문을 열기 위한 열쇠와도 같다. 요즘 불티나게 팔린다는 ‘다이어트 비디오’에는 없다. 하지만 <불량소녀 백서>에는 있다. 여성들에게 자유의 문을 여는 방법이 <불량소녀 백서>에는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