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asw > 쥐
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 쥐는 인간이 뭔지를 답해주는 좋은 만화이다. 어른들은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예로 들어 무조건 만화는 나쁜 것이다, 시간날때에나 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쥐는 나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먼저 첫번째로 우리가 쉽게 다가올수 없던 유럽의 만화이다. 우리는 일본만화의 물결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유럽인들이 그려낸 만화는 쉽게 볼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만화를 보게된 나로서는 충격이오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또 두번째로 이제까지 볼수없던 유럽식의 스타일을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 일본만화가 주는 네칸의 구성이 아닌 수십칸의 두성이며, 일본만화에서의 가벼운 펜선이 아닌 굵고 약간 지저분한 느낌을 주면서도 약간의 거부감까지 느껴지는 그런 만화였다.

쥐는 유대인을 소재로 한 만화이다. 얼마전에 비디오로 본 로만 폴린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이런 영화들고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다. 바로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만 특이한 점은 그 주체가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유대인들을 쥐로, 독일인들을 고양이로 묘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약하고 힘없이 잡혀 죽여가는 동물인 쥐를 힘없이 가스실에서 죽어나간 유대인으로, 힘없는 사람을 밟아죽이는 독일인을 힘도 제대로 못쓰고 잡혀 죽어가는 쥐를 잡는 고양이로 묘사한 것일까. 이런 의미를 쉽게 내재되어 있다. 이것이 쥐만이 표현해낸 사실이다. 두 원수사이의 동물간을 통해서도 충분히 나약한 존재와 잡아죽이는 존재를 표현한점이 인상적이었다.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와 쥐를 보아가면서 독일군의 잔악함에는 치를 떨수밖에 없었다. 심심하면 유대인을 더러운 인종이라며 총으로 쏴죽여대고 가스실로 보내어 돼지잡듯, 쥐 잡듯 죽이는 장면으로 도저히 인간이 할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으며 또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할 정도이다.

정말 그들은 인간일까. 아니면 그냥 더럽게 살아가는 동물일까. 쥐를 읽으면서 나는 부르르 떨어야 했다. 정말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죽일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욕하며 비하할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져야 했다. 피아니스트 같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유대인은 불쌍하다. 독일군들은 나쁘다. 이런 두 가지 점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사실은 한가지였다. 그들도 사람이다. 불쌍한 존재이기는 하나 그들은 사람이다. 하나의 인간들이며 살고싶은 사람들뿐이다. 쥐는 정말 생생한 작품이다. 어떤 자서전을 읽는 맛이나 똑같다.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만화를 보아라 이런 말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나 한국만화에서 넘쳐나는 학원폭력물을 보라니 차라리 이런 훌륭한 만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그림으로 보면 정말 실망한 작품이 아닐수 없다. 한페이지마다 칸이 빼곡하며 톤은 없고 온통 흑백으로만 가득하니. 만약에 산다면 정말로 실망할수도 있겠으나 읽어본다면 과연 그런 말이 나올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쥐를 차라리 영화로 보면 어떨까. 아니면 예술. 만화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쥐는 만화의 일반적인 오락물로 이해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길이길이 간직할 정도의 보물급이었다. 오히려 읽을수록 선이 굵은게 맘에 들었다. 인간은 과연 가장 훌륭한 동물일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