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태풍태양' - 훔치고 싶은 젊음



위대한 야구만화 'H2'에는 빛나는 14살의 우정이 나온다. 히데오팀의 감독은 "나에게도 14살이 있었다"며 부러워하기를 거부한다.

내게도 그 시절이 있었다. 눈부신 청춘. 하지만 덜 여문 어른이 되버린걸까. 나는 다시 그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이 내게 던지는 이미지는 너무 강렬하다.

일주일도 못채우고, 몇 안되는 개봉관에서 거의 막을 내렸다. 정재은감독의 전작 '고양이를 부탁해'와 비슷한 운명인갑다. 스타를 안 쓴게 죄인가. 마케팅 역량 부족인가.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지를 못한걸까. 이 청춘영화는, 반짝 눈부시게 빛나다가 금방 쓰러지는게 또 청춘을 닮은 모양이다.

어제 퇴근 직전, 부랴부랴 극장에 달려갔다. 예고편에 홀딱 빠진 경우다. 영화담당 Y선배가 '고양이를 부탁해'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거라고 했다만...뭐, 어차피 상관없다. 나는 그 젊음을 훔쳐보고 싶었을 뿐이다. 난생처음, '나홀로 관객'의 묘미까지 맛봤다.

주인공 소요(천정명). 수줍은 소년이 어그레시브 인라인 고수들을 만나 '루키'로 자라는게 큰 골격. 즐기기 위해 타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갈등은 중간 줄기. 소요가 반한 그녀 한주(조이진), 최고의 고수인 모기(김강우)와의 어설픈 3각 관계는 양념이다. '오빤 딴거할 자신이 그렇게 없어? 성공하지도 못할 거 계속하는 건, 집착이야", "미운 놈은 먼 짓을 해도 밉잖아. 나도 사랑받고 싶어."...아이들의 대사는 때로 가슴에 와닿고, 때로 생뚱맞다.

영화에 빠져드는데 최대 걸림돌은 겉도는 연기다. 김강우가 그래서 더 빛나기도 하지만. 이 청년들의 연기는 덜익었다. 청춘의 고민들도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설정도 문제다. 사업을 부도낸 소요의 부모가 소요만 남기고 해외로 도피한다는 것도 좀 거시기하고, 대체 이 녀석들은 집도절도 없고, 하는 일도 없이 소요네 집에 눌러붙는 것도 뭣 하다.





그러나, 예술은 늘 수용자의 태도가 중요한 법. 곳곳에 드러나는 설익음이 청춘의 일부로 보이기 시작한다. 미숙함조차 끌어안고 싶어진다. 더구나 시대적 코드일까?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영화의 이미지는 너무나 강렬하다. 어그레시브 인라인은 커녕, 인라인도 못타는 신세가 부끄럽고, 짜증이 난다. 젊은 것들이 잘난척 뽐내면서 에너지를 뿜어대는데, 부러움을 제어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짜식들, 꽤나 연습했다는데...정말 근사하다. 일산 호수공원 등에서 보여주는 역동성도 근사하지만, 도시의 밤, 빌딩숲을 가로지른 장면은 예술이다. 마치 무협영화의 고수처럼, 김강우는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는' 묘기를 선보인다. 마음을 비워가며, 잠수교 난간을 내려와...고수부지를 누비며 쭉쭉 내뻗는 팔과 다리가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아름답다. (나중에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서...얘네들 연습과정에서 계속 쿠당탕 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 찡하고 징하다)

아, 김강우. '실미도'의 막내였던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지. 세상의 고민을 거부하고 지멋대로 사는 이 녀석이 '너, 나 멋있어서 좋아하잖아'라고 뻐기는데...것참....귀엽다. 쿨한척, 잘난척 혼자 다하는데, 것참...괜찮다. 역시 몸이 중요한 걸까. 잘빠진 젊은 몸뚱아리가 뿜어내는 기세가 아우라를 만든다.

조이진. 이 친구, 참 독특하게 매력적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와는 거꾸로, 사내녀석들의 땀냄새에 천착한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뭉개버렸다. 잘난 스케이터들 가운데 여자는 단 한명도 없다. 나중에 세계대회 장면에는 여성 스케이터도 나오더만....스토리 내내 한주라는 여자아이는 캠코더만 들고 다닌다. 물론, 나름의 꿈을 가진, 역동적인 어그레시브 인라인 장면을 가장 잘 찍는 사람이 되겠다 하더라두....아쉽다. 그런데....이 친구, 조이진. 그냥 밋밋하게 웃기만 해두 이쁘다. 따스한 매력이 숨겨지질 않는다. 여배우 코가 하늘로 치솟지 않는 경우도 오랜만에 본다.



천정명. 내겐 이름도 낯선 이 친구..맥아리가 없더니, 나중엔 좀 나아진다...벗은 몸매에 요즘 잘나가는 몸짱들처럼 근육이 달라붙지 않아, 오히려 괜찮았다...적어도 영화에서 그는 소년 아닌가...대장 갑바로 등장한 이천희도 나름 괜찮은 재목 같다. 지켜볼 일.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클릭비의 김상혁은 나중에 재기해서 연기를 하려해도, 갈 길 멀다 싶다.

김강우가 뭐랬더라.....생각이 많아졌다나...생각을 하게 된다나....그러면서 "나 늙었나봐"라고 덧붙인다. 생각없는 척 하는게 젊음의 특권일수도 있겠지.... 이 영화,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젊음만 깊게 들이쉬라고, 그렇게 꼬집는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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