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optrash > 연애의 목적

"혹시 마약 하셨어요?"
다분히 '도발적'임을 일러주기 위한(긴장 빠짝하라는) 영화의 오프닝.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보다는(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잘나가는 '청춘남녀'를 등장시켜 거리낌없이 시시덕거리게 하는 대화를 본 기억은 적어도 한국 영화에서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오버여서 별로), 그 벤치와 단풍 노랗게 든 배경, 그리고 약간은 바랜듯한 화면의 때깔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운동장, 그 운동장을 가르며 우르르 뛰어나오는 여고생들, 그리고 바람. 올라가는 타이틀 '연애의 목적'. 물론 영화가 끝날 때 까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맥거핀. 맥거핀을 쫓는 히치콕의 영화 처럼, 결국 그것은 연애를 끌고 나가게 하는(혹은 단순히 이 영화를 끌고 나가게 하는) 동력일 뿐.
'양아치' 유림으로 분한 박해일은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웠고(캐릭터와 분리해놓고 보자면 귀여웠고), 새침한 교생 최홍 역의 강혜정은 착실히 자신의 영역을 늘려가는 듯 보였지만, 솔직히 영화는 거북하다. 영화의 '도발'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 재미없고 멋대가리없는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씁쓸한 뒷맛은 바로 그 '도발'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올바름이란 사회적인 옳고/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리얼리티'의 문제다.
이유림이란 캐릭터가 불러일으키는 불편한(필요이상의) 도발은 분명 새로울지 모른다. <극장전>의 김상경과 비슷한 류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훗날 '한국 영화의 새로운 남성상'의 분기를 찾을 때 극장전과 함께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는 된다. 문제는 그가 입은 옷, 다시 말해 그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며, 영화이다. 영화는 그런 도발을 간판으로 내건채, 착실하고 안정된 공식을 향해 간다. 결국 유림의 도발적인 캐릭터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셈이 되고, 그것은 꼭 그만큼 거북하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문제는, 영화는 그걸 당연하듯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림의 도발적인 캐릭터를 그 캐릭터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이해하도록 강요한다. 멜로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 그는 여자를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때론 이해하지 못하는(물론 결국엔 이해받는) 행동까지 한다. 왜? 사랑하니까. 나는 당신을 이만큼 사랑하니까. 하지만 이 유림이라는 남자는 그렇게 해석해서 될 인물이 아니다. 그가 표방하는 태도는 그것이 아니므로. 하지만 영화는 그 공식을 억지로(아니, 오히려 교묘히) 끼워 맞춘다. 유림은 싫다는 홍을 강제적으로 추행하고, 스토킹하고, 집적대고, 급기야는 형법, 성문법상의 강간까지 행하지만, 그게 다 사랑해서 하는 일이다, 라고. 그리고 결국, 홍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니 아무 문제 없지. 이건 그냥 새로운 연애의 한 모습일 뿐이다, 라고.
이것은 새로운 남성성의 도그마다. 마초적이고, 권위적이고 멋진 남성들은 이제 스크린위에서는 구식이 되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남자들은 질질 짜고, 추근덕 대며, 욕망을 위해서라면 치졸한 짓도 서슴치 않는다. 이를테면 한결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남성중심주의의 해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의 주도는 남성이며, 단지 기존의 남성이 '강요' 했다면 지금의 남성은 '구걸'할 뿐이다. 그리고 그는 원하는 것을 얻는다. 변주. 단순히 방법이 달라졌을 뿐, 결국 그들이 얻는 것은 동일하다. 이를테면 '남성'이 활동하고 인정받는 스펙트럼의 확장일 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것을 적당히 미화하고, 정당화 하는 것에(원하든 하지 않든) 일조한다. 결국 영화속 세상은 유림을 중심으로 돌고(조금 고초를 겪긴 하지만), 강혜정은 <올드보이>에서 그랬듯 다시 한번 남성의 포르노그라피적 환상에 봉사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약간은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지만(특히 맨 마지막 줄). 분명 나름대로 낄낄대면서 본 영화지만 어쩐지 껄끄러운 것은 감출 수가 없다. 그런데 박해일은 정말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