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겨울 > 무간도

나는 스스로를 평가할 때 느리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그것은 비디오를 선택하여 보는 것에도 잘 드러난다. 남들은 다 보고 잊혀질만하면 그때서야 비로서 느긋하게 빌려다가 보고 뒷북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열심히 주변 사람들을 향해 정말 근사한 영화라고 열을 내어 말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미 흥이란 흥은 다 깨진 마당에 무슨 소리냐고 너무 오래전에 보아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눈을 흘기는 그들에게 정말 할말이 없지만 멋진 영화를 보았다고 자축하면서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행복에 겨워 사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 영화 '무간도'도 그런 영화다. 푸른 듯 초록빛이 나는 영상 속에 두 남자가 있고 그들의 삶이 어찌나 무거운지 내내 가슴이 저렸다. 국가를 위해 혹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죽어라 일을 하지만 사는 일은 언제나 외롭고 위험천만이며 음지에서 벗어날 방법은 멀기만하다. 경찰의 신분으로 삼합회 조직원 생활을 하는 스파이를 연기한 양조위가 누구보다 빛났다.

사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만큼 극적인 것은 없는데 이 영화 속에서 양조위가 죽은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죽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생각만큼 충격을 받지않고 당연한 수순인듯 받아들여졌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가 보여준 연기는 파멸을 향해 가는 불나방과 비슷해서라는 결론이 났다. 살아서도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 같으므로 차라리 죽는 게 나으니까.

양조위의 매력은 교묘하게 경계에 서있다는 데 있다.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에 몸을 숨기고 어느쪽도 확실하게 배반하지 못하며, 너무나 인간다워서 미워지지않는 선한 눈매의 스파이. 그래서 죽음에 직면한 순간 그토록 담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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