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전', 홍상수가 던져 놓은 두가지 이야기
[조이뉴스24 2005-05-12 20:05]

<조이뉴스24>

진한 성장통을 겪었을 법한 키만 멀쑥하게 커다란 어린 청년이 얼굴만큼 앳된 목소리로 영화를 연다.

일자로 가지런히 잘려있는 앞머리와 힘없는 목소리가 이 친구의 앳됨을 더 확실하게 보여준다.

낙원동 악기 상가에서 나온 청년은 형이 쥐어준 수표 두장을 들고 종로 거리를 걷는다. "마음껏 돈을 써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거짓말처럼 아주 우연히 청년은 안경점 안의 여자를 발견하고 아는 체를 한다. 상점 문을 열고 나온 여자 역시 반갑게 아는 척을 하고 머쓱해하던 두 사람은 살짝 손을 건드리고 저녁 만남을 정하면서 아주 능숙한 사이로 금새 발전한다. 아마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같다.

홍상수 감독은 여섯번째 영화 '극장전'에서 이처럼 소소한 일상의 사건을 풀어 놓는다. "왜 저러는 거지"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엉뚱하고 돌발적인 주인공들이 익숙한 종로 거리를 헤매는 것을 보자니 이 '자연스러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지독한 '계산'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여자친구였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 연인이 되지 못한 남녀가 만나 함께 죽으려 약을 먹는 1부에는 이기우와 엄지원이 출연했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가는 앳된 남녀의 웃기고 황당한, 그리고 어딘가 서글픈 1부는 사실 영화였다는 사실이 2부에서 밝혀진다.

'영화감독 지망생 동수의 일일', 영화였던 1부를 극장에서 보고 나온 영화감독 지망생 동수가 다시 2부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김상경이 연기한 동수는 참으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순진한가 하면 처음 보는 여배우를 쫓아가 사랑한다며 매달리고, 친구의 아픈 아이에게 목도리를 둘러줄 정도로 친절한가 하면 아픈 아이와 함께 탄 차 속에서 굳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무신경하다.

동창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술주정도 심한 듯 한데, 술주정하는 모습은 보여지지 않는다. 참 알 수 없는 남자다.

'극장전'은 보는 내내 잔웃음을 짓게 한다. 예상을 뒤엎는 인물들의 돌출 행동과 그럼에도 속이 빤히 내비치는 속물같은 모습이 웃음의 원동력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후 얼마 동안'을 그린 '극장전'은 홍상수식 웃음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홍상수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중에서 가장 보기 편한 작품이자 웃긴 영화이기도 한 '극장전'에는 철저히 계산된 리얼리즘과 전대미문의 캐릭터가 펄펄 살아 숨쉰다.

두 남녀의 수작을 한 화면 안에 조용히 담아 낸 카메라는 느긋하지만 집요한 시선을 드러낸다.

살아가면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가같은 엄중한 의미를 홍상수식 화법으로 그린 '극장전'은 두가지 이야기를 '툭' 던지고선 모른 척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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