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클리오 > 내친 김에, 또 술... ^^

요즘 연일 술 이야기여서 혹여라도 읽으시는 분들, 지겨우실 듯 하네요.. ^^;;

내가 처음 소주를 마신 것은 대학교 1,2학년 대면식 때... 선배들은 맥주잔 가득 소주를 따라주었고 나는 그 때 맥주 500을 딱 한번 마셔본 경험 밖에는 없는 진짜 신기한 새내기... 소주를 처음 마실 때의 느낌은, 의무적으로 마셔야 되는거니까 쓰다는 느낌보다는 그 심한 병원 알콜 냄새가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소주가 알코올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으며, 많이 마시려면 코를 쥐어싸야 했다. 그 다음부터 선배들이 술사준다고 하면 무조건 막걸리..(맥주는 비싸서 안사주니까..) 소주의 참 맛을 알기엔 아직 먹었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소주의 참 맛을 알 수 있다'고. 대학 4학년까지 나는 소주를 먹어야 되는 술자리를 슬슬 피해다녔는데.. 하필이면 소주의 쓴 맛까지 내 인생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쓰디쓴 사랑이 찾아와버렸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었던 내 사랑을 바라보며 나는 할 일 없이 소주나 들이킬 수 밖에.. 그래서 그 시절엔 우리 동기들 모두 시험의 압박도 있고 해서, 돈이 생기면 달랑 새우깡 하나에 소주 서너 병을 사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소주에 맛을 들인 것은 직장생활 무렵.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내 고향의 25도짜리 오리지널 관광소주 '보해 골드'에 맛을 들인 것은 필연이었다. 지금은 소주 맛이 모두 어느 정도 평준화되었지만, 그 시절 보해골드를 먹다가 진로 클래식을 먹으면 너무 달아서 술 먹기가 싫을 정도였다. 그 시절의 일화가 몇 개 있는데. 어느날 술에 취해 한잔 더하자고 술 사러 슈퍼에 들어가서는 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그당시 남친 왈.) 아저씨, 소주는 보해골드가 최고인데 왜 보해 골드가 없는거예요? 그 전라도 슈퍼 아저씨 얼마나 황당했을까. 가끔은 보해골드가 먹고 싶다. 지금은 전라도에 가도 팔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일화. 무슨 일이었던지 근무하면서 남자애랑 정면충돌했다. (지금이라면 비겁해서 그런 일이 없는데...) 쓰린 속을 새벽 네 시까지 술로 풀었는데, 그 다음날 초췌한 몰골로 출근하니 애들 사이에 벌써 작은 읍내의 소문이 자자했다. 쌤~ 어제 새벽 네 시까지, 웬 남자랑 술을 먹고... (흑흑.. 네 시까지 잠을 안잔 그 넘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대답했다. '어머, 너희들은 내가 새벽에 술을 먹을 사람으로 보이니??' (가증가증...)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소주를 맛있게 먹었던 사람은 2003년에 만났던 82학번 모 남자 대학원생. 비가 추적추적 오면 반드시 소집해서 술을 먹었고, 그가 너무 맛있게 술을 먹어서 그와 술을 마시면 취하질 않았다. 그 해 따라 왜 그리 비가 자주 왔을까.. 그해에 소집된 우주회 이후로 나의 전성기는 끝이 났다... 이제는 주위에 소주를 맛있게 먹는 남자도,  내가 좋아하던 긴 얼굴, 긴머리의 미모의 여후배도 대학원에 없다. 아파트 앞에 바로 길다란 천(川)이 하나 흐른다. 말 그대로 콘도형 아파트라 할 수 있는데... 비가 오거나 새벽이면 이 물 위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게 아주 그만이다. 그 풍경을 본다면 도저히 공부하러 갈 수가 없다. 반드시, 조신하게는 커피 한잔, 좀 오바스럽게는 맥주라도 한캔 따야지 예의를 다할 수 있다. 내가,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 술을 너무 멀리 했던 것일까... 다음 주에는 긴 머리 여후배라도 만나러 대구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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