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gzem > 이 영화엔 '왜'가 없다
몬스터 볼 - [할인행사]
마크 포스터 감독, 빌리 밥 손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주로 줄거리를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나에게 이 영화는 대단한 황당함이었다. 시종일관 낮게 깔리는 배경 음악과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시선 때문에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살얼음같은 긴장감이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몬스터 볼'이란 영국 교도소에서 형수가 죽기 전에 열어주는 일종의 파티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 아메리카에서는 행사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헌데 그림을 꽤나 잘 그리는 한 사형수가 죽기 전에는 아주 특이한 '몬스터 볼'이 치뤄진다. 교도관인 주인공의 아들 - 그 역시 교도관이다 - 이 사형장으로 가는 중에 구토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 작은 '행사'는 이후 그들의 삶을 온통 뒤섞어 버린다.

이 영화에서 한가지 눈 여겨 봐야할 것은 이 영화는 지나치리만큼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왜' 라는 것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관객의 몫으로 넘겨진다.

왜 주인공이 아내를 닮은 아들을 죽도록 미워하는지,
왜 주인공의 아버지는 교도관만이 진정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지,
왜 그들은 '검둥이'라면 치를 떠는지,
왜 그녀의 남편은 사형을 당하는지,
왜 그녀의 아들은 차에 치여 죽는지,
왜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지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단지 그것들은 기정 사실로 제시될 뿐이고 관객을 그것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는다.

또 한가지 이 영화에서는 모든 사건이 진행방향을 따라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이다. 그 흐름 속에서 주인공들은 역방향을 택하기 보다는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받긴다. 대단한 사건들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대립도 없고 격렬한 감정도 없다. 오늘 아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어제 살아왔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살아갈' 뿐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여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퍼부었을 때 관객은 은근히 대단한 말싸움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조용히 보호시설에 '내다'버린다. 자신을 돌봐주겠다고 말하는 남자가 사실은 자기 남편을 사형시킨 교도관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음에도 여자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다만 손에 쥔 종이만을 조용히 구길 뿐이다.

두시간 여 동안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장면에서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다른 장면이겠지, 며칠이 지났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너무나 황당하게도 아무런 시공의 변화가 없을 때 -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루하다는 생각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게 깔리는 음악만큼이나 나를 긴장시키는 무엇이 이 영화에는 깔려있는 모양이다.

유쾌하진 않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뭐, 대단한 섹스신이 나올 것 같이 굴던 광고는 역시 폭죽에 불과했다. 육체적인 엉킴보다는 정신적인 면에서의 엉킴이, 인생의 엉킴이 파격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