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달콤한 인생 - 어디 한 번 쪼잔해져볼까?

intro.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펼쳐지는데 한 몫 한 건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감독들이 '브랜드 일관성'있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온 데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강제규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공식에 따른 물량공세, 강우석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감각, 홍상수의 냉소, 이창동의 문학적 완벽주의(도대체 지문으로 '까만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리는 표정으로 서 있다'를 쓰는 사람이 이창동 말고 또 있을까), 류승완의 쌈마이 정신, 장진의 유쾌한 가증스러움 같은 거 말이다.

김지운도 이 대열에 낄 수 있을게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 그리고 '장화 홍련'까지, 그냥저냥한 영화를 양산하는 감독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김지운의 스타일을 정확히 뭐라고 정의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 아마도 어처구니없는 상황, 일상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인간들 굴러가는 모습의 형상화 정도로 매너는 생각한다 - 어쨌든 저 세 편의 영화는 각각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런 감독의 네 번째 영화라. 세 편 연속으로 꽤 괜찮은 평가를 이끌어낸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면 이제 정립된 자기 스타일을 보여주리라 기대할만한 시점 아닐까.

 

 

이 영화에 대한 평은 대체로 두 가지다. "사소한 감정의 순간적인 흔들림으로 인한 삶의 파국을 그린 의미있는 역작" 혹은 "스타일의 과잉으로 겉멋만 잔뜩 든 주제 상실" 대개 전자는 오버그라운드 영화 관련 기사의 평이 주류를 이루고 후자는 눈 좀 트인 매너 지인들의 평가다. 매너는 어느 쪽에 기울어져있을까. 이 대답을 찾기 전에 딴 길로 좀 새 보자. 매너가 이 영화를 어이 봤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영화 보는 눈이 꽤나 매서운 지인과 함께 찾아간 극장을 찾은 매너는 초반 십여 분 간 이병헌과 김영철 아저씨의 조명빨(다시 언급하겠지만 등장인물의 얼굴에 진 굴곡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조명빨은 훌륭하다)과 가오를 즐기며 매너 집구석 소파에 삐딱히 기대앉아 드라마 보는 마음으로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갔다. 그저 즐기던 매너의 관람 자세가 바뀐 건 화면 왼쪽 구석에서 신민아가 하이힐을 또각대며 나오는 장면부터였다. 그 순간부터 신민아의 얼굴이 처음 보이는 그 일 분 사이에, 매너의 관람 태도는 180도 돌변한다. 그때부터 스토리 라인은 개무시하고 눈에 불을 켜고 화면 구석구석에 비추이는 디테일을 찾고 머릿속으로 그 의미를 찾았다. 조각난 500피스 퍼즐을 흐뜨러뜨려놓고 원래 그림이 무엇이었나를 찾는 것처럼, 숨은그림찾기에서 국자나 바늘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 덕에, 영화의 나머지 두 시간은 만만찮게 피곤했으며 또 그 피로감만큼 즐거웠다. 영화를 보고 나와 '김지운이 이제 쉽게쉽게 가죠?'라는 물음에 '진짜 스타일리스트 하나 나오는건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애둘러 운을 떼고, 매너가 읽을 자잘한 장면 하나하나를 그와 곱씹어보는 것도 즐거웠다. 자, 그럼 한 번 쫌 쪼잔해져 볼까?



 

 

 

 

 

 

1. 선우는 희수의 무엇에 휘둘렸나?

한마디로 잘라 말해서 '섹스 코드'다. 때묻지 않은 희수의 순수함이랄지, 진심으로 사랑해서랄지, 이런 건 희수의 등장과 이후 파국 전 까지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리 맞는 설명이 아닌 듯 하다.

희수의 첫 등장 장면을 보자. 강사장의 선물을 들고 소파에 어색한 듯 앉아있는 선우를 카메라는 멀리 비추고, 그런 와중에 스크린 왼쪽 모서리에서 무릎 위 20cm는 넘어 보이는 아슬아슬 할랑대는 원피스 자락을 입은 희수의 발이 잡힌다. 그녀는 부담스러운 정도의 하이힐을 신고 있다. 선우의 시선이 멀리 잡히고 그 시선을 받으며 희수는 하이힐을 갈아신는다. 그것 역시 하이힐. 끈으로 마무리를 해 발 뒤꿈치까지 훤히 드러나는 스타일의 하이힐이다. 늘씬한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원피스에 하이힐. 매너는 하이힐이 여성들의 성기 근육 발달을 자극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더 굽이 높고 노출이 심한 하이힐로 갈아신은 희수는 선우에게 걸어가며 잠시 발을 삐끗. 한다. 하이힐을 신고 걷는 걸로 이 여자, 만만찮게 섹시한 여자란 걸 암시하지만 발 삐끗하는 걸로 보아 몸은 다 자랐을지 몰라도 아직은 덜 성숙한 소녀라는 걸 알린다. 아직까지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희수의 뒷모습뿐이다.

그 다음 장면. 희수가 강사장의 선물을 푼다. 이제 카메라는 희수를 비추지만 아직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얼굴이 드러나는 부위는 다름아닌 귀. 머리를 쓸어올리며 희수의 귀가 윤기 흐르는 생머리 사이로 드러난다. 이 곳 역시 매우 자극적인 여성의 성감대다. 아직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얼굴'이 나오기 전 카메라는 이렇게 여성의 매력적인 성을 암시하는부분을 비춘다. 이 때 부터였다. 매너가 본격적으로 쪼잔해져야겠다고 생각한 게.

거기에 희수가 연주하는 악기는 첼로다. 사람 목소리에 가장 근접한 악기라는 첼로에서 희수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낼 수도 있었겠으나 희수의 첼로 연주씬은 지나치게 굳어있다. 과연 그렇게 현을 긁어서 소리가 나올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기서 여성 첼리스트들에 대한 이상한 오해가 스치고 지나간다. 사람의 몸과 형태와 크기가 비슷한 첼로라는 악기는 '두 다리 사이에'끼어서 연주한다. 이를 지적하고 여성 첼리스트들의 연주장면을 보며 키득대는 인간을 매너는 주저없이 '뵨퉤'라 부를 것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앞 장면과의 일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선우라고 가만 있을쏘냐. 이제 선우가 보여줄 차례다. 그 다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선우를 주목했다. 이에 화답하는 선우는 두 번째로 희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확실히 변한다.

저 넥타이 맨 것 좀 보라. 빈틈없고 깔끔하다. 거기에 투 버튼 정장이라! 투 버튼이 그렇게 와일드한 옷인지 매너는 몰랐었다. 저 옷빨에 초반, 매너는 좀 헉겁했다. 영화 초반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흐트러진 옷매무세를 보여주지 않던 선우, 두 번째로 희수를 만나러 갔을 때 부터, 넥타이를 풀어버린다. 그리고 와이셔츠의 두 번째 단추까지 풀어헤친 채로.



넥타이 인생. 쳇바퀴 돌듯 변화없는 회사원들의 생할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 넥타이를 풀어해친다는 건 그 일상적 삶에서 일탈한다는 말일게다.

정리하자. 선우는 희수에게, 혹은 희수로 인한 성적 판타지에 '홀려' 일처리에서 손을 떼고 만다. 이 서사 구조를 영상적 표현과 일치시키는 재주는 정말 훌륭하다. 이 영화가 영화비 아깝지 않은 이유는 이야기의 와꾸야 어찌되었든간에 흘러가는 스토리와 화면의 구성을 일치시키는 데 있다. 성공하고도 이게 어긋장 나는 영화들이 상당한 걸 생각해보면 이거 하난 평가해 줄 만 하다(일례로 미술관 옆 동물원. 을 잠시 떠올려본다. 그리 망가져봤자 심은하는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고 예뻤다. 안그랬으면 그만큼 히트치지도 못했겠지만).

여기서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왜 하필이면 희수 역에 신민아인가? 어중간해서. 가 아닐까. 조매실의 뮤직비디오 '아시나요'에서 베트남 소녀로 유명세를 탄 이래 두어 편의 영화에 등장했지만 아직 '성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 그리고 간간히 비치는 성적 매력은 무시 못할 정도다. 여기서 매너는 몸은 물이 롤랐지만 아직은 덜 자란 '롤리타'의 모습을 읽는다. 그렇다면 왜 하이힐을 갈아신고 한 번 쩔뚝대었는지도 설명이 된다. '몸은 성숙하지만 아직은'을 그렇게 애둘러 말하는 거 아닐까. 마스크나 몸 매무세에서는 신민아처럼 저 과도기의 여성을 나타낼 만한 배우를 찾기 힘들다. 아쉬운 건 그걸 나타내기에 신민아의 연기가 좀 얼어있었다는거. 하기야. 그런 연기력이 신민아에게 있었더라면 그녀가 등장할 영화는 '달콤한 인생'의 조연이 아니라 '청연'같이 여성 주인공에게 모든 걸 거는 영화였겠지.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거다.

2. 빛과 어둠의 위화감 - 조명.

'서사 구조와 화면 구성의 일치'말고 이 영화에 매너가 점수를 줄 수 있는 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조명과 화면 효과다. 일단 아까도 지적했던 얼굴에 패인 기복에 따라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얼굴에 집중된 조명은 등장 인물의 마음의 동요를 목소리의 떨림보다, 행동보다 훨씬 더 잘 나타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처단 직전 선우의 전화를 차안에서 받는 강사장. 어두운 차 안에 조명은 핸드폰을 든 손에 집중되고 그 뒤의 어둠 속에 강사장의 윤곽만 비친다. 전화기 너머로 던져질 말 한마디에 따라 선우의 인생을 좌우할 사람의 존재감과 가오를 별다른 과장 없이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이 장면에서, 매너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 하나만이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경찰서 취조실을 떠올렸다. 그렇게 전등을 켜놓는 이유는 매너가 알기에 이렇다: 그 전등의 불빛 너머로, 용의자가 보는 것은 빛 너머의 어둠이다. 마찬가지로, 매너가 이 장면에서 읽는 것은 조명이 비추이는 강사장의 손목이 아니라, 그 뒤 윤곽으로 짐작되는 강사장의 무게감이다.

선우가 동남아 3인조에게 습격당하기 전 등불 스위치를 켜고 끄면서 마음의 동요와 불안감을 나타내는 장면은 희수와 강사장이 재회하는 장면(헷갈린다... 희수 혼자 있었나? 본 지 며칠 되 놔 보니-_-)에서 스탠드를 껐다 켰다 하는 장면과도 대비된다.

3. 자기 스타일 지키기.

'조용한 가족'의 송강호의 '나 학생 아닌데요.', '반칙왕'의 마스크 쓰고 동네 깡패 잡아패기 혹은 송강호의 데뷔전. 황당한 고백 장면. 한마디로 '황당한 순간을 마주한 인간들의 황당한 장면'이다. 이걸 절대 우습게 처리하지 않아서 더 웃긴. 마찬가지다. 전화기로 머리가 깨져라 부하를 내리치는 황정민의 살벌한 짓거리가 그렇고 살벌한 무기밀매상은 사투리와 러시아어로 지껄이며 싸우다 교통사고내고, 총 맞아 머리 깨진 걸 보고 무표정하게 뚱- 하니 킬러라는 동생놈은 지켜보다 복수하러 떠나고... 스타일의 과잉 속에서 '난 김지운이야!'소리 높여 외치는 장면들은 여전하다. 일관성? 거기에 대해선 한 발자욱 물러나야 하겠지만.

 

outro.

정리하자.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장면장면 이야기 풀어나가는 대로 화면이 구성되었다는 거다. 아쉬운 건 그게 영화 전체의 스토리라인이 꽉 맞아 들어가는 것과 별개로, 5분 -10분 정도의 한 쇼트에 머무른다는 거. 중반 이후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스토리 핵심이 흐뜨러지는 걸 자신의 개성으로 눈속임하려는 잔재주가 보인다는거. 그래도 화면빨과 조명 효과만은 역사에 남을 정도다.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장면 하나하나에 넘어갈 정도로.

돌아오는 길에 '원더풀 데이즈'를 비롯한 한국 에니메이션을 떠올렸다. 기술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스토리라인, 콘티가 뒤죽박죽 개판이라 항상 말아먹는. 이제 김지운은 화면 구성하는 테크닉에서는 더 이상 진보할 게 없는 단계에 올라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거다. 이 기술로 이제 어떤 메세지를 다음 몇 개의 작품에서 던지느냐에 따라 그저 '테크니션'으로 기억되느냐, '거장'으로 기억되느냐가 갈릴 듯 하다. 잔기술로는 한계가 있단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김지운의 분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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