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선인장 > 청춘, 마음껏 질주하라-영화 <식스티나인>

영화  <몽상가들>에 나왔던 스무 살보다, 이 영화 ,식스티나인>에 나왔던 고등학생들이 더 부러웠던 건, 유럽아이들의 자유로운 관념과 그보다 더 자유로워보이는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스무 살 청춘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질주하는 모습에 가슴이 떨렸으면서도, 사세보의 고등학생들이 미군부대를 기웃거리는 모습이 더 정겹게 느껴졌던 건, 나도 그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고 매스게임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 때의 나처럼 갑갑하고, 한편으로는 한 때의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질주를 해대던 켄의 무리를 보면서 나는 충분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속으로만 조용히 외친다. 더 달려라, 더 달려라, 조금 더 힘을 내어 달려라.

 

켄의 일당이 학교에 바리케이트를 쳤던 대형사고를 낸 이후로 20년이 흐르고, 한국의 청춘들은 다시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운이 나빴던 나는, 입학하는 학교마다 나로부터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데, 우리에게 내려진 단발령은 모범과 효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가진 이쁜 아이들이야 교복을 입혀놔도, 귀밑 2cm로 머리카락을 잘라놔도 상관 없었겠지만, 평범하고 못자란 나와 같은 아이들은 엉덩이가 뺀질빼진해질 교복이 수치스러웠고, 엉망으로 뻗치는 머리카락이 귀찮기만 했다.

그러나 귀찮아하고 부끄러워하기만 했을 뿐, 학교에 바리케이트를 칠 생각 같은 건 꿈에도 꾸지 못했다. 그저 교문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커다란 방울이 달린 머리끈으로 짧은 머리를 억지로 잡아맸고, 무릎 위로 교복치마가 올라오도록 허리단을 접고 또 접었을 뿐이다. 태극기와 함께 석굴암의 불상 사진과 반야심경이 나란히 교실 앞에 걸리던 불교학교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기독교 학생들의 모임만이 조직적인 반항의 창구였다. 켄이 조직한 '바사라단'보다 훨씬 얌전한 활동을 했음에도(모여서 성경을 읽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게 고작이었는 걸), 그 모임은 무슨 엄청난 파괴력을 갖춘 조직 대우를 받았다. 선생님들은 거기 속한 학생들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고, 우리는 무슨 비밀결사라도 되는 양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짓곤 했다.  


 
지겹도록 사랑만 하고, 연애는 한 번도 못 해본 나의 청춘시절. 아침 7시부터 밤 10까지 학교에 매어 있던 우리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미남 탤런트부터, 그저 총각이기만한 머리 큰 국어선생님이며, 분식집의 알바생, 얼굴도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동창생, 그리고 만화책에 나오던 길고 긴 이름의 이국인들까지 모두 다 사랑했다. 켄의 사랑은 너무나 뜨거워서 학교에 바리케이트를 쳤지만, 우리들의 사랑 역시 너무나 뜨거워서 연습장에는 똑같은 이름이 수천 번 적히곤 했다.
그저 고개를 쳐박고 시간을 떼워야 했던 우리에게 반항은 청춘의 상징이 아니어서, 우리의 박수를 받으며 정학을 받았던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의 정학 소식이 전해지면,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아이 몇 개월이래, 따위의 암울한 소문이 돌 뿐이었다.
 
그러니 그저 수업을 빼먹고, 조용하게 소설책 따위를 넘기는 것만으로 두근거렸던 내 청춘은 켄에 비해 너무나 볼품 없었다. 그저 같은 버스에 탄 첫사랑의 뒷모습만으로 며칠 동안 두근거렸던 내 사랑은 바다에 가자던 켄의 약속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마음껏 내달릴 공간조차 없었던 암울한 학창시절. 대학생들은 매일 카페에서 수다나 떨고, 매일 맥주만 마시는 줄 알었던 그 시절. 어깨에 매어진 가방이 너무 무거워, 몇 권의 책을 앞에 끼고,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걷는 대학생활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레었던 그 시절. 그 시절은 너무나 볼품 없고, 초라하기만 했던 것이다.

 

우리들의 청춘 시절이 비극적인 까닭은 지독한 입시지옥에 시달려서가 아니다. 돌이켜 생각할 때 가장 아쉬운 것은, 나와 내 친구의 꿈이 같았다는 것. 나와 친구가 아닌 이의 꿈도 같았다는 것. 청춘이 꾸는 꿈만으로 이 세상의 어느 한쪽에서는 바람이 불고 태풍이 일 수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갑갑한 세상을 향해 돌 한 번 던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는 빛나는 청춘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 너무 빨리 늙어버려서, 이제는 세상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이 빠져버렸다는 것.
 
너무 빨리 늙어버렸음에도,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우리들 세대는 그래서 켄의 질주가 사랑스럽기만 하다. 정치적인 구호 하나 몰라도, 상상력만이 권력임을 선언하는 그 아이들의 흉내내기가 어여쁘기만 하다. 청춘의 한 시절을 온전히 누리려 하는 그 아이들의 뜨거움이, 내게는 어떤 정치적 선언보다 더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따라 함께 뛸 수는 없어도, 그들의 질주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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