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amuryum > 영화로 만났던 그녀, 다시 책에서 만나다

다섯 달쯤 되었나, 그녀를 처음 영화로 만난 지가.

그녀의 첫인상은 뭔가 좀 특이하면서도 매우 낯이 익은, 그런 느낌이었다.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조금은 지루하기도 한 가운데, 때때로 흥미로운 면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는 가엾고 안쓰러웠으며, 헤어지고 돌아설 때는,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싶었다. 어깨를 토닥이며 칭찬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가늘고 연약한 그녀의 어디에서 그토록 강한 힘이 나오는지, 굳센 의지가 나오는지.

가냘프나 굳세고 단단했던 그녀. 그런 정혜에 대한 인상이 차츰 희미해져갈 즈음, 다시, 정혜를 만났다. 이번엔 영화관이 아닌, 서점에서.

책을 통한 만남 역시도 그 전과 엇비슷했다. 다만 좀 더 편안하게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만남이라서만은 아닌 것 같다. 집요하게 그녀의 얼굴 바로 1미터 앞까지 쫓아다니던 카메라보다는 조심조심 그녀의 마음속까지도 세심하게 보여줄 수 있는 활자가 그녀와 더 잘 어울렸다. 물론 화면으로 본 그녀의 표정과 행동들 하나하나가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보단 그녀의 내면ㅡ그녀의 마음 속,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갔다 나온 것이 그녀, 정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의 바탕이 된 것 같다.

이렇듯 정혜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고 나자, 새삼 김지수가 정말 연기를 잘 했구나 싶다. 꽤 예쁘고 화사하게 생긴 그녀는 평소 이미지도 밝고 적극적이어서, 자칫 신경질적이고 지루해 보이는 정혜의 우울함과는(소설은 정혜가 그다지 예쁜 편은 아니며 꽤 나이가 들어보인다고도 했다) 안 어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본 그녀는 완벽한 정혜였다. 소설을 읽으며 그려지는 정혜의 모습이 바로 그녀의 모습이고, 영화 속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가 고스란히 책 속의 정혜 것이 된다. 표정 없이 멍한ㅡ우울해 보이긴 하나 절대 울상을 짓고 있는 것도 아닌ㅡ얼굴의 그녀는 그동안 티비에서 쉽게 봐왔던 그녀와는 전혀 딴 사람이었다. 정혜(=김지수)가 소설 속의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2년씩이나 정혜라는 캐릭터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는 이윤기 감독의 노력 덕택이기도 하다.

전에도(클릭) 몇 번 말했듯이 감독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여자'의 모습을 매우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혼자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르면 매우 긴장하며 조심하는 모습, 샤워를 하면서 그날 신었던 스타킹을 바로 빨아서 널어놓은 욕실 풍경(혼자 쓰는 공간이므로 다른 사람 생각 않고 편한대로 할 수 있으니까. 어쩌다가는 속옷도 같이 널어둔다), 컵라면과 김밥을 사와서 한 끼를 때운다든가 시장에서 맛있다는 나물을 사와 팔던 사람이 가르쳐준 대로 요리 해먹기(그게 또 대부분 생각만큼 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까지), 직접 담아먹기 힘든 김치를 홈쇼핑에서 주문해 오자마자 한 입 먹어보기(소설에서 정혜는 홈쇼핑을 매우 자주 이용하는 걸로 나오는데 그 점을 '김치'와 연결지은 센스에 뒤늦게 감탄), 티비를 보며 혼자 밤을 새고 아침이 되면 매우 귀찮아하며(최소한의 여유 시간이 남았다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머리감고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들에서 여자 감독인가보다 생각했을 정도다.

그렇게 '혼자 사는 여자'의 삶에다, 정혜만의 고유한 색을 잘 입혔다. 그녀가 동료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 멍하니 혼자 앉은 모습이나 치킨집에서 여럿이 맥주를 마시면서도 살짝 무리에서 비켜나있는 모습 등은 소설에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소설 어느 한 곳에다 집어넣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원작과 만들어낸 에피소들이 잘 어우러진다. 그밖에도 소설에는 없는 몇몇 요소들ㅡ소설에선 원래부터 정혜의 집에 와있었던 고양이를 다시 처음 데려오는 장면부터 보여준 것과 '슬픈 남자'를 개입시켜 정혜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감싸안도록 만든 것의 시도도 좋았다(다만 '슬픈 남자'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칭찬해줄만한 것은 원작 소설 <정혜> 본래의 느낌을 그대로 잘 가져다 놓았다는 것.

그러나 이런 칭찬이ㅡ원작의 느낌과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캐릭터를 꼼꼼하게 잘 살린 점에 대한ㅡ 영화 자체의 완성도까지 감싸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영화'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과 '정혜라는 한 여자'를 답답해하는 것은ㅡ감독은 "일부러 관객을 답답하게 만들고 싶었다. 정혜를 더 잘 알 수 있도록."이라 말한 바 있다ㅡ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반부터는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받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특히 '슬픈 남자'의 눈물 속에 정혜의 상처가 드러날 때(클릭). 나는 왜 정혜가 그 남자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떠올렸는지 잘 모르겠다. 단지 '울고 있어서'라는 설명을 들으면 할 말 없겠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새로운 인물을 만들지 말고 우체국에 찾아오는 '작가 지망생'에게 그 역할을 맡겨보았으면 어떨까, 하고(이렇게 되면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마지막 장면이 사라지려나). 소설 속에서 정혜가 상상하던 대로 집에서 같이 밥도 먹고, 고양이도 보여주고, '정신과 의사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자기 상처를 보여주면서ㅡ그녀는 그가 오지 않자 그러고 싶었노라고 속마음을 내비춘다ㅡ말이다. 글을 쓴다는 그 청년에겐 충분히 그럴 자격을 주어도 된다. 영화에선 그의 역할이 별로 커 보이지 않았지만 소설에서 다시 만난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니, 영화에서도 그랬는데, 소설에서 그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자기한테 다가오는 여자를 바라보지만 않고, 자기도 한 발짝 다가선다. 그런 그 덕분에 소설 속에서 정혜는 혼자 화장실에서 서글피 울지 않아도 된다(왜 그런지는 서점에 가서ㅡ여러 단편들 중 정혜가 가장 맨 앞에 있으니 뒤적일 필요도 없다ㅡ마지막 페이지만 읽어보면 된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영화만큼 보다 마음에 드는 엔딩 장면이었다). 아마도 소설에서 2005년이 되어 그가 영화를 본다면, 좀 억울하지 않을까ㅡ신춘문예 당선된 것도 빼버리고 역할마저 줄어버린 데 대해.

그럼에도 나는 영화 <여자, 정혜>가 참 좋다. 나에게 <정혜>를 만날 기회를 주었고 우애령 작가를 만날 기회를 줬으니까(아직 한 편 본 게 다지만 곧 책을 구입할 예정). 무엇보다ㅡ아까 카메라보단 글로써 정혜를 만나는 것이 좀 더 편하다고는 했지만ㅡ소설은 영화에서 채울 수 없는 점을, 영화는 소설에서 채울 수 없는 점을 서로가 적절히 채워주면서 정혜, 그녀를 닫힌 공간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 지금쯤이면, 내가 소설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어딘가에서 미소 짓고 있을 것만 같다.

by 시진이

+) 소설에 등장하는 그 '친척 아저씨'란 놈(!)은 생각보다 훠어어~~얼씬 나쁜 놈이었다!!

 

* 원문 : http://www.fivesisun.egloos.com/1136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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