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다이도 다마키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책이나 TV, 영화 등 요즘 ‘가공’된 로맨스의 키워드는 ‘럭셔리’다. 오래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른바 ‘신데렐라공식’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여자와 재벌가의 아들이 펼치는 사랑이야기는 이제 당연하게 들릴 정도다. 한동안 천년을 넘나드는 ‘영원’의 로맨스가 주류를 이루더니 이제는 분명한 '럭셔리 로맨스'가 주류로 떠올랐다.

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것이 참 묘하다. 주류를 즐기면서도 비주류의 탄생을 꿈꾸는 게 그것.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럭셔리한 시대에 쩨쩨한 녀석이 등장했다. 다이다 다마키의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가 그것으로 한국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 했지만 최소한 총알받이 역할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는 한국에 소개될 당시만 해도 화려한 조명을 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2000년 <불량소녀>로 아쿠다가와 상 후보에 올랐던 저자가 마침내 이 작품으로 작년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했으니 저자나 작품 모두 관심 대상이 될 자격 요건을 갖췄다.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는 제목과 내용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결된 작품이다. 정말 쩨쩨한 로맨스가 등장한다. '삐까뻔쩍한' 승용차를 몰고 여주인공 앞에 나타나는 재벌의 아들은 바라지도 않지만, 웬 60대 할아버지와 지극히 평범한 처녀가 전혀 부럽지 않은 데이트를 펼친다.

말이 데이트지, 데이트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이들의 관계는 동네할아버지가 이웃에 살고 있는 손녀 뻘 되는 처녀와 바람 쐬러 나간 것 같은 사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할아버지가 왕성한 기력을 소유한 할아버지도 아니고, 미국의 늙은 배우들처럼 어디서든 멋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런 할아버지도 아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한 그런 할아버지다. 특별하다면 착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화자인 평범한 처녀 ‘나’도 마찬가지다. 보통 신데렐라의 운명을 맞이하는 여주인공들과 달리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성격, 모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런 여자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한 그런 처녀다. 특별하다면 할아버지와 같이 살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로맨스가 어떨까? ‘파리의 연인’의 결말을 상상하듯 두근거리는 그런 감정은 없다. 그저 ‘정말 이들이 같이 살까?’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가 주는 여운은 결코 ‘쩨쩨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집요할 정도로 현실적인 문제들은 계속해서 일깨워주는데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감각으로 무장한 채 환상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환상 대신에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한 흐름이 있다. 애초 신데렐라 따위는 없고, 우울한 결정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환경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고 그것에 만족한다는 흐름. 그 흐름이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을 인간적인 로맨스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는 정말 쩨쩨한 로맨스를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까지 쩨쩨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이자,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그것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 작품은 겉으로는 쩨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떤 럭셔리한 것보다 더 눈에 띄는 ‘번쩍한 것’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럭셔리한 것들과는 분명히 다른, 오랫동안 기억되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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