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다이라 아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들을 중심으로 화려한 경력을 내세우며 문단에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의 등장이 거세다. 벌써부터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 야마모토 바나나 등 그 동안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일본 작가 대열에 세대교체의 시기가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확실히 아직은 낯설지만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들의 소설은 그들의 등장만큼이나 화려하다. 젊은이들답게 파격적이고 또한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실력마저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부족한 2%가 있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나이로는 불가항력적인 것이겠지만 ‘인생’을 겪어본 자들로서의 넉넉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한국에 소개되는 신진 작가들의 이름 속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을 맛나게 쓸 줄 아는 작가가 눈에 띈다. <철도원>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사다 지로를 연상케 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여섯 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멋진 하루>로 찾아온 다이라 아즈코가 그 주인공이다.

코미디를 좋아한다는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은 한편의 어른들의 따뜻한 코미디 같은 ‘유머 소설’들이다. 그런 작가의 글쓰기가 아사다 지로를 연상케 한다는 것은 어떤 소재나 상황이든 날카롭기보다는 부드럽게, 차갑기보다는 따뜻하게, 불행함보다는 행복함으로 글을 끌고 가는 능력에서 평가해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도 눈에 띈다는 점에서 그렇다.

<멋진 하루>에 수록된 여섯 개의 단편은 기존에 소개된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가령 야쿠자의 비정한 생리조차 인간적으로 그려내는 아사다 지로처럼 <멋진 하루>에서 다이라 아즈코는 상처받아야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차가운 현실들을 유쾌하거나 혹은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엄마는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열다섯 나이에 이름도 모르는 군인의 아이를 임신했던 대단한 사람이에요. 전후의 혼란 속에서 유산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거의 자랑처럼 떠들고 다녀요. 정말일까 의심스러워요. 실은, 너무 멋있잖아요.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추억으로 처녀를 바치다니.” ('해바라기마트의 가구야 공주' 中)

다이라 아즈코의 손에 의해서 태어난 <멋진 하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구한 처지에 처해있으면서도 ‘해피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처럼 즐거워 보인다. 스스로 생각해도 구제불능이라고 여기는, 회사 일도 실수하고 좋아하던 여자에게는 차이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배신하고 마는 ‘온리 유’의 나카하라, 자신과 불륜을 저질렀던 여직원이 아끼는 후배의 아내가 되려할 때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의 도모아키 등 모든 인물들이 <멋진 하루>에서는 어떤 난관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후기에서 천연덕스럽게 “책을 사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다이라 아즈코, 이 바닥에서 마구 설칠 예정이오니, 오래오래 사랑해주세요”라고 적어 놓은 낯선 작가 다이라 아즈코. 21세기와 함께 태어난, 자칭 밀레니엄 유머작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글들은 따뜻하면서도 재밌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젊은 작가들에 비해서 화려함이 뒤지는 건 사실이지만 <멋진 하루>는 아사다 지로처럼 오랫동안 사랑받게 될 작가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또한 인생을 겪어본 작가로서의 연륜 또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기대 작가들 하면 다들 20대를 떠올리는 이때에 서점가에 <멋진 하루>를 내밀며 등장한 웃음 많은 아저씨 같은 다이라 아즈코의 존재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