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생 안 소피 브라슴. <숨쉬어>의 저자는 분명히 어리다. 소설을 쓰는데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숨쉬어>라는 작품이 17살(발표 당시)의 손에서 나왔다면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비결로 소녀의 손끝에서 이렇게 강렬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었을까?
저자는 창작동기를 까뮈의 <이방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숨쉬어>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방인>의 모습은 잔잔히 흐를 뿐, 표면적으로는 아멜리 노통브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적의 화장법>과 <두려움과 떨림>, <오후 네 시>등에서 나타난 아멜리 노통브의 숨결이 <숨쉬어>에서도 간간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류작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차피 아멜리 노통브가 다루는 주제가 그 작가만의 것이 아니고 안 소피 브라슴의 손끝에는 아멜리 노통브와 다른 분명한 ‘무언가’가 있다. 굵직굵직한 행동묘사와 극단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아멜리 노통브와 다르게 섬세한 심리묘사와 차분한 행동설명이 다르다. 또한 최종목적지에서 외치는 소리가 다르다.
주인공 샤를렌은 살인을 저질렀다. <숨쉬어>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뻔뻔할 정도로 반성치 않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어린 나이의 그녀는 살인이라는 극악한 죄를 저지르고도 왜 그렇게 태연한 것일까?
샤를렌은 어려서부터 소위 말하는 왕따였다. 바네사라는 천사 같은 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바네사와 이별한 뒤에 샤를렌은 철처하게 혼자였다. 특히 상급학교에서 샤를렌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절망감은 나날이 깊어갔는데 결국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자살은 시도에 그친다. 샤를렌이 잡은 동아줄은 썩은 동아줄이었고 그녀는 호랑이가 기다리는 세상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녀는 베로니카가 자살을 시도한 후에 눈을 떴을 때보다 더 암담한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절망의 한숨을 쉬려 한다.
그때 사라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사라는 샤를렌이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왜 그랬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호랑이를 물리쳐주는 엄마 같은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샤를렌은 살아간다. 사라와 함께.
하지만 사라는 그렇게 착한 아이가 아니다. 사라는 샤를렌을 이용한다, 절망케 한다, 우울하게 한다, 더욱 극심한 고독감을 맛보게 한다, 치욕스럽게 한다, 모욕한다, 모독한다, 놀린다, 때린다, 짓이겨 누른다…….
사라에 의해서 샤를렌은 자아정체성을 잃어간다, 홀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빼앗긴다, 절망의 심연에 빠져든다, 바보가 되어간다, 놀림감이 되어가고 반항심을 잃어간다, 또래의 소녀들에게까지 동정 받는 존재가 되어간다, 남자친구마저 떠나보낸다…….
샤를렌이 사라를 죽이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이유를 늘어놓는 죄수의 모습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나약한 소녀의 정당함을 말해주는 것 같다.
1984년생 안 소피 브라슴. 작가는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대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작가 안 소피 브라슴. <숨쉬어>는 힘 있는 기대주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