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선인장 > 한 번뿐인 인생, 착한 척 하지 말자-역도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생각보다 재밌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역도산에 대한 기대는 정말 대단했다.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한 후에 읽게 된 리뷰들은 역도산에 대한 찬양 일색이던 프리뷰들과 완전히 달랐다. 평론가들은 역도산이 흥행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 작품과 감독에 대한 냉혹한 평을 쏟아냈다. 프리뷰와 리뷰들을 번갈아 읽으면서, 나 역시 역도산에 대한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고갔다.

딱히 볼 영화가 없어서, 나는 역도산을 봤다. 영화는 너무 길었고, 후반부는 지루했다. 감정선을 이끌어갈 만한 명확한 스토리라인 없이 단편적인 사건들로만 이끌어가는 역도산의 몰락 과정은 관객들의 감정과 소통하지 않는다. 한 장면 한 장면, 그의 고백은 처절하고 그의 심정은 절실하지만, 관객들은 인물에 동화되지 않고, 멀찍이 서 있어야 할 뿐이다. 역도산이 링 위를 기어다닐 때도, 그가 자신을 알아본 평범한 사람을 청부살인자로 오인해 폭력을 행사할 때도, 병색이 짙은 아야의 안타까운 얼굴을 볼 때도, 관객들은 역도산에게 좀처럼 다가갈 수 없다. 그렇게나 처참하고, 그렇게나 비극적인 데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역도산은 그런 인물인 거다. 그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대단한 호의를 느낄 만한 영웅도 아니고, 민족의 비극은 한 몸에 짊어진 슬픈 사람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욕망에만 정직하게 살아간, 그래서 자신 이외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관객들이 역도산의 편에 설 수 없는 건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아야와 역도산이 살았던 옛집에서 아야와 역도산은 재회하지 않고, 역도산은 자신의 착각으로 인해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난다. 패전 이후 일본에서 역도산은 분명 영웅이었지만, 그의 삶은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삶에서 저만큼 떨어져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착한 척할 시간이 없다는 그는, 그저 그렇게 희극과 비극이 오고가는 삶을 살아간 한 인간이었다.

나는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남성의 욕망을 과장하는 영화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욕망이 거대할 수록, 그것이 표현되는 삶의 내용들은 정당하지 않기 마련이다. 큰 세계를 보고 왔다는, 그 때 마음속으로 뭔가 들어왔다는 역도산을 이해하는 순간, 그의 집착과 그의 폭력은 미화된다. 아야와 역도산의 아름다운 한 때가 강조될수록, 역도산은 그저 사회가 낳은 비극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세상을 향한 그의 욕망은 잠깐 동안 가슴을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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