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선인장 > 상투적이고 유쾌한 성의 세계-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우나기>의 애처롭고 따뜻한 세계가 오래 감동이었던 나에게는 이 늙은 감독이 그려낸 성에 대한 판타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나기의 두 주인공 야쿠쇼 코지와 시미즈 미사가 함께 만들어내는 야한 동화라니. 우나기를 강물에 놓아주며 나즈막이 작별인사를 하던 아큐쇼 코지의 목소리에 한 동안 사로잡혀 있었으니, 나는 꽤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생각만큼 기발하지도, 새롭지도 않는 동화다. 여자의 성욕을 몸에 차오르는 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물과 생명에 대한 이해도 그닥 새로울 것이 없다. 여성의 자궁과 그 안의 양수. 그 물과 생명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미즈 미사가 연기한 사에코는 몸에 물이 차 오를 때마다 성욕이 발동한다. 그 성욕을 해결할 수 없을 때마다 그녀는 도둑질을 하고, 그녀의 집에 있다는 타로의 보물을 찾으러 간 요스케는 그녀의 독특한 병에 이끌려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사에코와 요스케가 사랑을 나눌 때마다 그녀의 몸에서는 물이 솟아나고, 그 물이 강에 흘러 고기떼가 모이고.... 결국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물은 사에코의 성욕이면서 생명의 근원이다. 이타이이타이 병으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던, 무당이었던 그녀의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강은, 사에코의 몸에서 나온 물로 인해 생명의 원천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여성의 욕망에 대한, 여성의 자궁와 양수에 대한 지극히 상투적인 이해는 후반부 사에코의 몸에서 물이 줄어들자 그녀의 정절을 의심하는 요스케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신파로 흐른다. 물에 대한 변태적인 집착과 그녀에 대한 의심, 그 동안 경험했던 모든 남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요스케에 대한 그녀의 절망과 갈등이 통속적으로 펼쳐져, 전반부의 유쾌함은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바닷가 바위 틈에서 그들이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사랑을 나누고, 사에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물줄기에 무지개가 생길 때는, 처음에 터져나왔던 웃음과는 조금 다른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 공간이 자궁과 닮았다는 요스케의 언급은 불필요한 설명이고, 이런 과도한 친절이 영화를 보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와 가정에서 내몰리고, 정체도 분명히 알 수 없는 보물을 찾아갔다가 이상한 사랑을 하게 되는 요스케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의 뒷모습은 사회에서 내몰린 쓸쓸함을 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표정과 그의 말투, 그의 행동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사에코의 절박한 부름을 받고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그의 모습은 내가 본 중년남자의 모습 중 최고였다. 또한 오줌을 참고 있는 듯,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물을 안간힘을 다해 참으며 요스케에게 신호를 보내는 사에코의 모습은 유쾌하다. 자신의 욕망을 참아내지 않고 낯선 남자를 향해 돌진하는 사에코,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특별히 과장하지도 않고 그것 때문에 과도한 절망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그저 웃음띤 얼굴로 부끄럽다며 담백하게 말할 뿐이다. 그런 담백한 사에코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요스케를 향해 자신의 괴로움을 절절하게 토로하는 사에코의 모습은 신파로 보인다. 암울한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던 순간에도 담백한 발랄함을 잃지 않았던 사에코가 아닌가. 
영화는 분명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사에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와 무지개,
그리고 그 물을 향해 몰려든 온갖 새들. 요스케는 타로가 감춰둔 보물이 사에코의 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에코는 요스케로 인해 자신의 몸 속에 차오르는 물이 사랑이라고 고백했다.
이, 상투적이고 뻔한 결말. 그러나 이 영화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일흔을 훌쩍 넘긴 노감독의 유쾌한 상상을 뭘로 부정할 것인가.
다만, 힘이 있을 때 인생을 즐길 것. 어느 날 갑자기내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기 전에, 아직 내 몸 구석구석에 힘이 남아 있을 때, 유쾌하고 즐겁게 살 것. 내 몸이 전하는 욕망에 충실할 것.
그렇다면, 아직 충분히 살지 않았는데도 불쑥불쑥 힘이 빠져나가는, 이유 없는 피로에 잠식 당하는 이 몸은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