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창공을 비추는 연못의 밑바닥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서점의 신간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다. 누런 색의 소박한 표지의 책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산문집을 좋아하는 데다, 붓으로 친 듯한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스르륵 펼쳐본 책의 안쪽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하드커버에 커다란 글씨, 지나치게 여백의 미를 살린 얇다란 책들이 그저 예쁘기만 한 장식품처럼 느껴졌던 내게, 빡빡하게 들어찬 글씨들.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은 한눈에 진지하게 와닿았다. 들었던 책을 놓게 만든 것은 오른쪽 하단, 모프로그램의 선정도서라는 빨간 동그라미였다. 분명, 편견이겠지만, 두 명의 개그맨이 장난스럽게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선정도서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물론 좋은 책들이란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세번을 그저 들었다 놓았다만 반복하다, 결국은 읽고픈 마음이 더 강해져 퇴근길에 서점으로 뛰어갔었고 틈틈이 한 번 읽고, 휴일동안 꼼꼼히 다시 한 번 읽었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밑줄을 쳤는데, 온통 밑줄과 포스트잇으로 알록달록한 책을 보니, 정말 잘 샀다. 하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간 내가 읽었던 책들은 굉장히 얌전을 뺀달까 하는 느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수하게 내뱉는 전라도 사투리라든지, 창을 하듯 길게 길게 늘여진 호흡의 문장이라든지, 매우 걸쭉하게 느껴지는 그야말로 '사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를 오로지 '없음'만을 간판으로 달고 몸하나만을 굴려가며 숨가쁘게 살아왔다는 작가의 분명, 아플 이야기들은 그의 특유의 유머로 버무려져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글속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눈물과, 함께 채웠던 잔속의 술과, 불편한 속을 달래주었을 칡냉면과 아욱국과 콩나물 해장국들의 냄새가 지인들간의 진한 우정과 함께 느껴졌다.

임우기씨의 해설에서, '작가의 밑바닥정신은 그저 어둡기만 한 밑바닥이 아니라, 저 창공을 비추는 커다란 연못의 밑바닥이다.' 라고 했다.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 단언했던 작가의 거칠고 아프지만,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연못이 내내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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