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my darling, my blood. Mo Cuishle..


최근에 본 영화중 가장 훌륭했다. 많은 눈물을 흘렸고 아직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지혈전문가로 일하다 트레이너 겸 매니저가 된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낡은 체육관의 관장. 체육관의 살림을 돌보고 청소를 하는 에디 스크랩(모건 프리먼)은 왕년의 복서로 109번째 시합에서 한쪽 눈을 잃은 후, 그 시합에서 만취해 뻗어버린 매니저 대신 자신과 시합에 나선 프랭크와 동고동락하게 된 사이. 프랭크는 여전히 자신이 보호하지 못해 에디가 한 쪽 눈을 잃게 된 거라고 자책하고 있다. 진짜 매니저가 아니었기에 타월도 던지지 못했건만. 그리고 그들의 체육관에 매기 피츠제럴드(힐러리 스웽크)가 나타난다. 31살의 나이에, 권투가 너무 좋다는 그녀는 밀어내려는 프랭크를 설득해 자신을 트레이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반칙전문가로 동독의 창녀 출신이라는 챔피언과 타이틀매치가 잡히고, 정말 잘 싸웠지만 레프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 반칙을 당해 쓰러지고 그 와중에 경추가 부러져 목아래부분이 완전히 마비되고 만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외롭다.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 없는 것만 못하다. 그들에게 서로는 유일한 사랑하는 이이고, 혈육이고 싶은 이이다. 프랭크에게는 딸이 있지만 이미 회복불능의 사이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쓰지만 그가 쓰는 편지는 모조리 반송된다. 1년 내내 교회를 찾는 프랭크는 신을 믿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마음을 많이 다쳤다. 영화 내내 떠다니듯 잔잔히 흐르는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은 프랭크의 딸 케이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의 마지막은

'그러니, 케이티. 아버지를 용서하렴.. '

무능력하고 뻔뻔스러운 가족들에 둘러싸여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가족을 책임지려 발버둥치는 매기의 어깨위 삶은 너무나 힘겹다. 그러나 권투가 좋다. 권투가 너무 좋아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손님들이 남긴 고기를 개 줄 거라며 싸들고 가서 먹어도, 스피드볼을 사기 위해 팁을 모으는 게 즐겁고 바닷가를 달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행복하다. 늘 예의바르고 착한 그녀이지만 동정은 참지 못한다. 프랭크에게, 날 지켜봤죠? 라고 물었을 때 프랭크는 안돼 보여서 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그녀의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한다. 절대로 날 동정하지 말라고. 누구도 그럴 자격이 없다고. 여자는 가르치지 않는다던 프랭크이지만 그녀는 다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조이는 듯 아팠다. 영화속 사람들은 슬픔을 눈물로 표현하지 않았다. 퉁명스럽고 짧은 한마디. 꼭 다문 입술. 틀어쥔 주먹. 대신 내가 울었다.

"프랭크, 내겐 당신 뿐이에요. "

"이미 가졌잖아.   ..  좋은 새매니저를 찾을 때까지. "

마주보고 웃음.

이 간결한 대사들이 이렇게 슬플 수 있을까.

프랭크는 영국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매기를 위해 특별한 가운을 만들어준다. 100프로 실크야.  프랭크가 뻘쭘하게 웅얼거리며 자랑스러워하는 그 가운은 아일랜드의 초록색. 프랭크가 늘 들고 다니는 예이츠의 시집. 게일어라는 "모쿠슈라"를 뒤에 새겨놓아 그것은 그녀의 닉네임이 된다. 반칙왕과의 시합을 앞두고 무슨 뜻이죠? 묻는 그녀에게 시합에서 이기면 가르쳐주지. 라고 역시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프랭크. 병상에 눕게 된 그녀가 다시 물었을 때도 졌으니 가르쳐줄 필요가 없지. 라고 대답할 뿐이다. 그가 대답하는 것은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보내 줄 때이다. 평생을 웨이트리스로 살 수도 있었지만 프랭크 덕분에 자신은 뭔가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었다며 지금 보내 달라고, 관중들의 환호가 더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자신을 이곳에 눕혀두지 말라고 매기가 애원했을 때 프랭크는 그럴 수 없다고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하게 만들지 말라고 도리어 애원한다. 신부도 마찬가지이다. 신부로서는 당연했겠지만 그런 일을 하게 되면 남은시간 후회만 남을 거라고 말한다. 결국 약을 챙기게 되는 프랭크에게 에디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자신이 눈을 잃게 된 걸 가슴아파 하는 걸 알지만 자신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고 그런 모습으로 죽어가면서 자신에겐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고. 그러나 매기는 그 기회를 가졌다고 그걸 네가 주지 않았냐고. 그래서 매기는 딴 세상을 본 거라고. 그녀 역시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 그렇겠지. 질기고 희망없는 삶을 오래토록 유지하는 것보다 프랭크가 보여준 강렬한 링 위의 삶을 짧게나마 만끽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그러나.. 그러나, 당연히 안타깝다.

한밤중 그림자처럼 조용히 프랭크는 매기의 침대 곁에 앉는다.

이제 산소 호흡기를 뗄께. 약도 같이 주사해 줄께.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거야.

볼에 입맞춤하고 my darling, my blood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모쿠슈라를 고백한다. 자살시도로 혀를 깨물어 이젠 말도 할 수 없는 그녀의 눈꼬리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프랭크는 사라져 버렸다. 영화의 마지막은 매기와 함께 간 적 있던 roadside diner. 통조림이 아닌 진짜 홈메이드 레몬파이를 판다며, 여기 헐값에 팔지 않나? 하고 집에 온 듯 편안해 하던 프랭크의 뒷모습이다. 함께가 아닌 혼자의. 흐릿한 간유리너머 보이는 쓸쓸하고 굽은 등.

영화속에는 예이츠의 시가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이라는 이니스프리에 관한 시. 그 시를 병상에 누워지내는 매기에게 읽어주며 오두막을 짓고 함께 살자며 이루지 못할 소박한 꿈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피로 맺어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진실한 가족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흰나방이 날개짓하면. 이라는 싯귀도 예이츠의 것. 그와 인연이 있는 시인인가보다.



힐러리 스왱크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 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그녀의 연기력이 그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특이한 역을 맡았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거고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에서 나는 그녀에게 감탄했다. 그녀는 연기를 하기 이전에 복서로 자신을 만들었다. 예전의 깡말랐던 몸은 간데없고 근육이 완벽하게 자리잡은 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코가 부러지고 눈이 붓고 멍투성이의 얼굴을 유감없이 자랑했다. 오스카를 위해서 여배우는 몸을 학대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녀의 천진한 웃음은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산드라 블록 등의 더 유명한 여배우들이 캐스팅 후보였었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녀를 지목했다고 들었다. 아카데미상 수상 후 코멘트에서 클린트, 당신은 나의 모쿠슈라예요. 라고 말했다고. 이제 그 의미를 알게 된 나는 또 가슴이 뭉클하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고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었다. 이 영화는 노인들이 만든 거라고. 감독과 모건 프리먼 외에도 많은 스탭들이 60세 이상의 고령이었다고. 90세가 넘은 자신의 노모에게 유전자 감사하다며 조크를 던지는 그의 열정과 여유가 너무나 부럽다.

감정의 과잉을 절대 허용치 않으면서 관객들에겐 잊혀지고 있던 감동을 감당못하게 안겨 준 영화. 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제는 대가라고 불릴 이의 작품답다.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 예이츠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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