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Before sunset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이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
요즘 이상하게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 못 보고 있었던 비포 선셋. 아무래도 롱런할 영화는 아닌지라 월요일이라 쫌 피곤했지만 보러 갔다. 관객은 열명이 안 되어보였고 영화가 끝난 뒤 불이 켜지고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이름이 화면에 뜨자 큰소리로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_-
사실 나도 중간에 살짝 졸았었다. ;;
그렇다고 해서 정말 재미없는 영화. 라고 말하기는 싫다.
언젠가 오동진씨의 영화평을 읽었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사랑에 대해 하고픈 말을 다했다.'(정말 이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평을 읽고나서 내가 받은 기분은 오동진씨가 이렇게 말하고 있구나. 였다. )
제시와 셀린. 비포선라이즈이후 9년만에 재회한다. 두 사람의 하룻밤의 애틋한 만남을 그린 제시의 책 'this time'을 홍보하러 제시가 파리에 온 거다. 약간 서먹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커피한잔 할까? 로 시작한 데이트는 카페에서 묘지, 세느강변의 유람선을 따라 결국 셀린의 아파트로 이어진다.
영어로 말하곤 있지만 역시 프랑스인답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수다속에서 제시와 셀린은 서로의 조금은 변한 외모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예전에 사랑했던 모습을 찾아낸다.
그리고.. 노래 한 곡 불러달라. 는 것을 이유로 제시는 셀린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셀린이 불러준 노래는 단지 하룻밤만의 사랑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품에 있더라도 그 기억이 있기에 영원히 너를 사랑하겠다는. 제시를 향해 쓴 곡이었다. 물론 셀린은 착각하지 말라며, 그냥 네 이름을 붙여 불러준 것 뿐이라며 웃어넘기지만.
그리고는 음악을 틀고, 가수의 흉내를 내며 셀린이 제시에게 묻는다.
'hey babe, 이러다가 너 오늘 비행기 놓쳐. '
그러면 제시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알고 있어. '
그리고 영화는 끝나버리는 거다.
참 슬펐다. 9년전 분명 사랑했고 6개월 뒤 빈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둘 다 절실히 지키고 싶었다. 때맞춰 할머니 장례식이 있었던 셀린이 빈으로 가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인생은 방향을 바꾼다. 아무일 없이 셀린이 제시를 다시 만났더라면.
인생에 있어서 if란 말만큼 공허한 것이 없다지만, 그리고 만약이 없기에 리허설없이 치열한 하루를 살 수 있는 거라지만. 자꾸만 생각한다. 만약, 만약.
제시가 처음 썼던 책의 내용처럼,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멋진 sex를 했어도 결국은 성격차이로 헤어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편집자가 거부했어. 흥행이 안 된다고. ' 그렇게 비워둔 애매모호한 결말을 영화는 그대로 따르는 것 같다.
자신의 방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조금씩 흔들리던 셀린의 표정과 나도 알아. 라며 짓는 제시의 미소로 결말을 상상해볼 수 있지만(혹은 상상하고 싶지만) 제시가 독자와의 대화에서 이야기했듯, 결론은 항상 독자가(관객이) 원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맺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이 비단 사랑뿐은 아니겠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을 농담과 우스개소리속에 살짝 숨겨둔 두 사람의 수다가 무척 슬퍼보였다. 두 사람의 탐색전(-_-;)은 어쩌면 차라리, 나의 환상을 좀 깨 줘. 라는 아픈 절규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추억만 끌어안고 살아갈 것인가. 혹은.. 그것이 차라리 다행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