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lost in translation


비오는 날 토요일 오후, 혼자 보기에 좋았던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좌석은 그다지 차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앉아 옆자리에서 내내 휴대폰 불빛을 번쩍거리며 방해하는 사람 없이 느긋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으니, 심지어 운이 좋다. 라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므로.

한물간 영화배우 밥으로 분한 빌 머레이는 인생에 지쳐버린 표정과 함께 때때로 시니컬하게 표현되는 유머가 역시. 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편과의 의사소통의 부재에 외로와하는 샬롯역의 스칼렛 요한슨. 호스 위스퍼러에서 고약한 꼬마로 나왔던 그 여자아이가 이렇게 컸단 말인가. 소녀와 여인의 길목에 서있는 매력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란 생각이 드는 건, 자칫 뻔한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는 내용을 이렇게 깔끔하게 표현해 낸 그녀의 능력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뒤틀려 있는 문화에도 불구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다고 내내 이야기하는 것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저 한 수 아래의 아시아. 라는 그녀의 비하가 아닌가 생각되어 조금 껄끄럽긴 했지만 이미 늙어버린 남자배우와 산뜻하기 짝이 없는 탱탱(;;)한 여배우를 자연스럽게 조화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을 만하다 생각된다.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느 신문에서인가 이 영화에 대한 평을 보았는데 관객들이 불륜의 기대감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두 남녀는 그저 손을 살짝 잡는 정도의 스킨쉽을 보일 뿐이라고 그래서 더 애틋하다고 씌어있었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내용은 그랬는데. 그 기자는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평을 썼단 말인가. 공항으로 가던 밥이 택시안에서 도쿄의 거리를 걸어가는 샬롯을 발견하고 내려서 그녀를 꽉 끌어안고. 속삭이고 키스도 하는데 말이다. -0-

뭐,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_- 그래도 나는 참 궁금하다. 밥이 샬롯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던 것인지. 눈물글썽이는 샬롯이 환하게 웃었던 건 무엇 때문인지. 불륜이 불륜으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더욱 애틋하다는 평을 읽고 그런 결말을 예상했던 것이 단지 착각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_-a

또한가지 찜찜한 건(나, 어쩐지 좀 까탈스런 노인네가 된 것 같다. 어쩔수 없다. -_-;) lost in translation이 원제인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는 좀 심한 제목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난 거짓말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직전에 만난 사람들이 무슨 영화 보러 가냐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글 제목을 들으면 어쩐지 약간 에로코믹쪽의 영화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거부감이 생긴다. lost in translation은 일본이란 나라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 뿐 아니라 군중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소통할 수 없는 인간의 외로움을 잘 나타내주는 참으로 고독한 제목인데 말이다.

뭐, 결국은 어쩔 수 없지. 하는 결론에 도달하긴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있단 말인가. ㅜ_ㅜ)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건, 25년간의 결혼생활에서 서로에게 무관심해져버린 부부관계에 지쳐버린 밥이나 2년의 결혼생활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실망한 샬롯이나 결국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무언가 통한다. 느끼게 된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것은 축하해 줄 만한 일이지만 결국 인간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 근본적인 고독은 곁에 있는 누군가가 치유해주거나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너무 비관적인 걸까. -_-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