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시원한 청량음료보다는 따뜻한 보리차 같은 매력, 괜찮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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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이스라엘 문학은 어린 시절 읽은 탈무드가 전부였다. 이 책은 탈무드 못지않는 지혜를 안겨 준다. 웃음이 줄 수 있는 삶의 지혜. 책 내용도 좋았지만 다른 책과는 차별화된 표지, 내지 모두 만족이다.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온 책답게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다소 두텁고 뭉툭한 느낌이 오히려 가볍지 않아 더 듬직한 느낌을 준다. 규격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편집과 만화적인 삽화가 책내용과 장난스럽게 어울려 더 매력적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남편, 잘나신 아내와 못 말리는 두 아들, 그리고 딸과 개 한 마리로 구성된 평범할 수 있는 구성원이 일으키는 이야기가 익살맞게 전개된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특별히 재미있고 엉뚱한 상황을 만드는 건 아니다. 너무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서 못 느꼈던 소소한 재미가 인생 곳곳에 숨어있는 것 아닐까. 그것을 풀어내고, 생각하는 방식이 따뜻하고 재미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느니 그 음식을 싸 가는 것이 낫다는 결론은 누구나 쉽게 내리면서 사실상 실천을 할 구실을 찾기란 힘든 일이다. <남는 음식이 참으로 아깝습니다. 집에 가서 먹을 수 있게 포장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은행을 터는 것과 맞먹는 용기를 갖춘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는 이 상황에서 <남아 있는 음식을 싸 주실 수 있나요? 우리 개에게 갖다 주려구요.>라고 둘러대는 재치를 발휘한다. 여기서 첫 번째 웃음이 나온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 거기에 이 책은 한 마디 강력한 유머를 덧붙인다. 스테이크가 포장된 비닐봉지를 내미는 주방장의 한 마디.<뼈도 몇 조각 넣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초콜릿에 덮인 곰팡이를 추적하는 부부의 모습은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못지 않다. 누구는 그걸 생일 선물로 받았었고, 다른 누구는 4년 전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받았었고, 승리의 축제, 새 집으로의 이사 등등. 받은 선물을 그대로 쌓아두었다가 다시 선물할 기회가 생기면 주곤 하는 그 순환고리의 첫 번째 인물이 자신들이었음을 알면서 슬픈 추적 역시 막을 내린다.
이야기의 마지막 역시 재치 있다.-누군가는 새 초콜릿을 사야만 할 것이다.-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라는 말은 이제는 통속적인 말이 될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그 평범함이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들 대부분은 한 가지 상황이 다음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 상황의 공백에서 웃음이 나온다. 많은 빨래를 파삭파삭하게 말리기 위해 쨍쨍한 햇빛을 바라는 그 소박함, 하지만 잔뜩 널어놓은 빨래가 무색하게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고 다시 빨래를 넌 순간 5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는 대법원장 내외가 손님으로 오고, 간신히 숨겨 놓은 물에 젖은 빨래는 물을 내뿜는다. 어떻게든 개를 처분하려는 개 주인과 순종 개를 고집하는 잘나신 아내를 사이에 두고 양 쪽 모두를 지치게 해서 개를 데려오는 모습도 재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빨래가 잘 마를 수 있는 햇빛, 낱말 맞추기를 할 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함, 남들 잘 때 잘 수 있는 수면의 자유, 말 잘 듣는 개와 아이들, 개미가 다니지 않는 쾌적한 집 등등이다. 그 소박한 갈망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어쩌면 복권에 당첨되거나 공짜 비행기 티켓을 얻는 것 같은 큰 행운은 인생 속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 행복이 어느 날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낙하산이 착지하듯 우리 집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지 않는다. 나에게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나쁜 일을 가볍게 날려 버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선물일 것이다. 그 선물을 받기 가장 좋은 사람은 낙천적인 사람일 것이다. 책 한 권이 단 번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단 며칠 간이라도 유쾌함과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중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