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그 남자 유쾌하다.
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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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하루를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하루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시간이 하루나 이틀에 머무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람들만큼은 어느 전쟁 소설 부럽지 않게 등장한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라는 영화는 2시간 정도의 시간에 20명의 등장인물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서 생동감과 재미를 주었었다. 이 소설도 마을 사람 전체, 부대, 경찰서 식구들, 한 학급의 아이들 등 떼거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이름 옆에 그 사람의 나이를 붙여 놓으니 그 두 가지 정보만으로 우리는 인물을 짐작하고 다 안 체를 할 수 있다.

첫 작품인 <경찰서여, 안녕>의 주인공 강수가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 중 어린 편에 속한다. 요즘 작가들 소설 속 주인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로 굳어진 듯 하다. 사랑 이야기로 풀어도 좋은 나이고, 인생에 회의를 느껴 사춘기때마냥 방황하기도 좋은 나이가 딱 그 나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나이는 다양하기 그지 없다. 특히 50, 60대의 소설 속에서는 모습이 가물가물하고 연속극에서는 주인공 엄마, 아빠로 등장하는 그들이 이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도 되고, 주변 사람도 된다.

요즘 소설들은 찌개가 끓는 순간을 포착하여 섬세하게 보글보글 끓이는 묘사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찌개 불을 보다가 화닥닥 타오르는 감정이 생각나고, 두부를 썰며 물컹물컹한 울적한 기억을 더한곤 한다. 그러한 감수성에 때로는 열광하지만 때로는 옹심이 없는 팥죽을 먹은 것처럼 허전하다. 그 많은 묘사를 지나면 인생이 허무하다는 걸 아는 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세상사라지만 소설이 너무 고요하게 고민만 하다가 끝날 때가 많다.

수다와 고요함이 공존하는 사회라지만 수다보다는 고요함에 초점을 맞춘 듯한 요즘 소설 속의 세계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서울도 떠나 훌훌 털어버리는 듯한 시원시원하고 거칠 것 없는 문장들이 톡톡 튄다. 톡톡 튄다고 해서 콜라맛은 절대 아니다. 막걸리 맛이 더 연상되는 건 소박하고 질박한 그의 독특한 문체 때문이다. 섬세한 감수성에 가끔 질릴 때 입심 좋다는 작가들 소설을 읽으며 새로운 재미를 찾기도 한다. 이문구의 충청도 사투리나 명랑작가라는 성석제의 소설들도 좋았지만 김종광의 입심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다. 충청도 사투리가 착착 붙는 느낌도 재미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전당포를 찾아서'이다. 사람들 시점이 계속 옮겨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얘기지만 덴젤 워싱턴의 영화 '다크 엔젤'에서 악령을 잡아낸 카메라가 생각난다. 좁은 경찰서 안을 사람들이 부딪치거나 악수할 때마다 몸이 없는 악령이 이 사람 저 사람 몸으로 옮겨 다니는데 관객들은 악령의 눈으로 경찰서 안을 들여다 본다. 계속 다른 얼굴로 바뀌는 사람들과 술렁이는 분위기를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조용히 장소의 이동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무현이의 하루가 차분하게 비쳐진다. 그 영화가 떠오른 건 눈이라는 게 자기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보다는 남의 눈에 비쳐져서 인식되고 기억되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잘 해 주고 싶은 후배, 보살펴야 할 남자 친구, 어리버리한 놈으로 다르게 보여지는 무현이의 하루가 기억에 남는다.

군대나 경찰이 많이 등장하고, 농촌 모습이 등장하지만 직업이나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양념이 아닌 소설의 기본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다른 소설과는 달랐다. 사람마다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자잘하지만 소박하고 당연한 사연들을 줄줄이 이야기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에피소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뼈대가 튼튼하고 그 뼈대에 붙은 살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내공도 깊다.

모든 이야기가 다 잘 읽히고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고 생명력 있다. 무엇보다 팔팔 뛰는 듯한 의욕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많아 좋았다. 작가의 다음 작품 <모내기 블루스>도 읽어야지 기약하며 작가의 첫 소설책 낸 걸 지두 많이많이 축하드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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