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여자, 정혜

<여자, 정혜>는 건조한 영화이다. 재미를 주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그렇다고 어떤 추억을 되살리거나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무엇을 먹고 싶어졌다거나 어딘가를 가고 싶다거나 그런 느낌이 드는 영화도 아니었다. 음악이 떠오르거나 대사가 떠오르거나 한 장면을 곱씹어서 보게 되는 영화도 아니다.

정혜는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표정도 없고, 혼자 산다. 이런 정혜의 모습은 조경란이나 강영숙, 윤성희의 소설 속에서 많이 보아왔던 여자이다. 조용한 나날을 보내는 소설 속의 그녀들의 모습 속에는 상처가 있다. 가족에 대한 짐, 떠난 애인에 대한 원망, 경제적인 불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에 대한 절망, 정혜는 그 여자들을 닮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형체가 없던 그녀들과 달리 형체를 가지고 있다. 화면 속에서 유독 자주 클로즈업되는 정혜는 소설 속에서 만나는 그녀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생동감이 없고 어떤 면에서는 생생하다.

이 영화 속에는 음악이 거의 없다. 아주 가끔 음악이 간간이 흐를 뿐이다. 나오는 배경음은 모두 텔레비전 소리이거나 라디오 소리이다. 정혜가 틀어 놓는 텔레비전 채널은 대부분 홈쇼핑 채널이다. 약간은 과장된 쇼핑 호스트들의 만담식 주고받음은 친절하게는 들리지만 친절한 만큼 속은 공허하다. 정혜의 알람 시계의 울림이 영화 속에서 가장 요란한 소리였고, 호프집에서 싸우는 취객의 소리가 약간 시끄러웠을 뿐 고요하게 영화 한 편이 끝난다.

정혜의 직업은 우편취급소 직원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우편물이 들어오는 우편취급소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퇴근 후에는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치킨을 먹기도 한다. 정혜는 화초에 정성껏 물을 주고 동네를 헤매는 어린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돌본다. 화초와 애완동물은 끊임없이 마음을 쏟아야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정혜의 마음이 닿을 곳이 세상에 아주 없지는 않은 것이다.

정혜는 세상 속에 있으면 하나도 돋보이거나 다르게 보이지 않을 평범한 여자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녀의 하루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살아온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영화 속에서 본다. 하루종일 따라다녀도 늘 똑같을 것만 같은 정혜의 일상은 조금씩 관객의 마음과 다르게 움직인다. 구두 가게에 들어가서 느끼는 그녀의 불안, 잘 모르는 남자를 집에 초대하는 대담함, 호프집에서 만난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엉뚱함이 쌓이면서 정혜는 영화 초반과 조금 다른 여자가 된다.

어떤 면에서 생각하면 정혜의 삶이 꼭 지루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녀는 화초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니까. 늘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그 사람이 참 딱하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지루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인생을 사는 방법은 다른 거다. 남의 눈에 보여지는 인생과 자신이 느끼는 인생은 다른 거니까, 정혜의 삶을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외로움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한 인간, 한 여자의 상처에 대한 영화이다. 상처를 받았지만 치유는 하지 못한 묵은 상처에 대한 영화이다. 어쩐지 소소한 일상이나 평범한 하루나 상처 받은 여자라는 설정이 다 상투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누군들 상처가 없을까마는 그네들 상처만 보름달만한 것은 아닌데 왜 이렇게 세상에 문을 닫아걸고 살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이다. 초승달만하건 보름달만하건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그 달빛이 상처를 비출 것이다. 희미한 달빛에도 놀라서 움츠려드는 게 상처받은 사람의 심리다. 홈쇼핑 채널 속 뻔한 말과도 같은 친절한 말 한마디, 번드르르한 말 한 마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실 누구도 정혜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감독도 배우도 알 수 없는 마음이 정혜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건조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이 있다. 자극도 없고, 울림도 크지 않지만 신나게 웃고 나오거나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나온 것보다 여운이 있다. 하지만 정혜의 고독에는 상투성이 있다. 액션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에만 상투성이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영화 속에서 만나는 그 고독과 상처도 이제는 조금은 지루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인생도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영화 속에서 만나는 주인공도 지루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답답할 수밖에.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가 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달라진 것 없을 것 같은 빨래를 널은 풍경 속에서, 빨래는 햇빛과 바람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말라가고 있다. 잘 펴서 널지 않으면 구김까지 선명하게 마르는 빨래가 있다. 사람들의 저마다의 삶도 빨래처럼 조용히 말라 간다. 구김은 구김대로 마르고 얼룩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마른다. 어느 날은 햇빛에 바싹 마르겠지만 어느 날은 조금은 축축할 것이다. 상처도 고독도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처럼 말리면 좋을 것 같다. 조금 구김이 가더라도 얼룩이 남더라도 드러내 놓고 말려야 하지 않을까. 옷장 속에 젖은 빨래를 넣어 둔다고 마르는 건 아니다. 냄새만 나고 옷만 상할 뿐.

<여자, 정혜>는 11월을 닮은 영화이다. 둘이 있는데도 쓸쓸해 보이는 건 11이라는 숫자뿐이다. 1과 1은 서로를 바라보거나 등을 돌리고 있을 뿐, 서로 간격을 좁히지 못한다. 정혜는 사람들과 있어도, 혼자 있어도 쓸쓸해 보인다. <여자, 정혜>는 찬바람이 느껴지지만 아직 겨울옷을 꺼내지 못한 11월을 닮은 영화다. 정혜의 인생에도 따뜻한 3월이 찾아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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