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초코파이, 얼룩말, 말아톤

설 연휴에 본 <말아톤>은 따뜻한 영화였다. 관객들은 다 알고 있다.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마지막에 어떤 감동을 줄 것인지. 관객이 다 알고 있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흐뭇하게 하는 영화가 <말아톤>이다. 자폐 청년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이야기는 한 줄로 줄거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단순 명쾌한 영화이다. 예전에 어떤 감독이 줄거리를 한 줄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흥행이 된다고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아톤은 흥행의 요소를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왠지 상업성과는 상관없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로 분한 김미숙과 조승우의 연기는 근사했고 영화는 따뜻했다.
1. 초코파이
초코파이는 참 특별한 파이이다. 빅파이도 오예스도 몽쉘통통도 따라가지 못한 경지에 초코파이가 올라가 있다. 초코파이에 촛불 꽂고 케이크처럼 후 불어 본 추억을 가진 사람은 많다. 냉장고에 초코파이를 넣어 두면 더 맛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다. 초코파이 포장지가 바뀌었지만 예전의 그 투명한 초코파이 포장만이 진정한 초코파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아는 한자가 많지 않지만 초코파이 상자에 적힌 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다. 군인들의 간식으로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 받는 초코파이는 영화 속에도 가끔 등장한다. <집으로>와 <말아톤>과 같이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소박한 영화 속에서 만나는 초코파이는 참 친근해 보인다.
20살 자폐 청년 초원이는 초코파이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초원이는 초코파이를 쌓아 놓고 살았다. 어린 초원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엄마는 초코파이를 손에 쥐었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초원이를 움직이게 한 건 엄마 손에 쥐어진 초코파이였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건강하게 한 발 한 발 뛰어가는 초원이에게 더 이상의 초코파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초코파이가 추억이 되듯이 초원이에게도 초코파이가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초코파이가 특별한 이유는 초코와 파이의 달콤한 만남 때문이다. 바나나 파이나 초코볼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달콤함과 촉촉함이 초코파이라는 단어 속에 있다. 초코파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초콜릿과 파이는 지금보다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것을 합쳐 놓았으니 더 특별할 수밖에. 지금이야 흔한 것이 초콜릿이요, 파이지만 추억의 힘은 무서운 것이고, 초코파이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작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2. 얼룩말
쉘 실버스타인이 쓴 얼룩말에 대한 시가 있다.
얼룩말의 질문
내가 얼룩말에게 물었다.
넌 검은 바탕에 흰 줄이 쳐진 거니?
흰 바탕에 검은 줄이 쳐진 거니?
얼룩말이 나에게 물었다.
넌 버릇이 나쁜 좋은 애니?
버릇이 좋은 나쁜 애니?
시끄럽게 조용하니?
넌 슬프게 행복하니?
행복하게 슬프니?
넌 지저분하게 깔끔하니?
깔끔하게 지저분하니?
어쩌구 저쩌구
지지구 볶구..
다시는 얼룩말에게 뭘 물어보나 봐라!
- 쉘 실버스타인 -
얼룩말하면 얼룩무늬와 이 시가 생각난다. 뛰어다니는 얼룩말 대신 동물원에 갇힌 얼룩말이 생각나고, 늘씬한 얼룩말의 몸매 대신 얼룩무늬 옷이 생각난다. 그래서 얼룩말은 슬픈 짐승이다. 하지만 동물원에서 만나는 얼룩말은 멋지다. 사람 속마음이 하얗고도 검다고 하지만 드러낼 수는 없다. 그렇게 드러내 놓고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는 얼룩말은 솔직하고 당당해 보인다.
초원이의 눈에도 얼룩말이 들어온다. 엄마가 놀이공원에서 초원이의 손을 놓았을 때 초원이는 얼룩말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찾으러 올 때까지 얼룩말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초원이가 좋아하는 얼룩말은 세상 속에도 있다. 여자들의 핸드백이나 치마 속에 있는 얼룩무늬로 초원이의 눈에 띄는 것이다. 얼룩말도 동물원을 빠져나가서 초원을 달리고 싶을 것이고, 초원이도 얼룩말처럼 초원을 뛰면서 남과 다르지 않은 자신을 느끼고 싶을 것이다.
3. 말아톤
흔히 마라톤을 인간 승리라고 한다. 42.195킬로미터를 뛰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모두 다 뛸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뛰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마음이 뭉클해지곤 한다. 초원이는 매일매일 그림일기를 쓰면서 오늘의 착한 일과 내일 할 일을 쓴다. 춘천 마라톤 대회 전날 초원이가 쓴 내일의 할 일은 바로 '말아톤'이었다. 그건 그냥 말아톤이 아니다. 내가 볼 때는 평범한 사람이 내일 할 일에 우주 여행, 해저 탐사라고 쓰는 것과 맞먹는 아득하고 대단한 일이다. 초원이는 운동장을 100바퀴 돌은 적은 있지만 마라톤을 완주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 초원이가 호들갑스럽지 않게 얌전한 글씨로 '말아톤'이라고 쓴 것이다.
4. 영화
영화는 참 담백하고 소박하다. 그리고 흔한 말이지만 감동이 있다. 김미숙이 아름답고, 조승우가 멋지고, 영화는 따뜻하다. 이 영화 속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초원이에게 의사가 물어보는 말이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어린 초원이에게 "엄마가 아파서 누워 계시면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라고 묻는다. 그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은 보통 기쁘고 슬프고 화가 나고 겁이 나는구나. <말아톤>을 보면서 좋은 영화를 보아서 기뻤고, 조금 슬프기도 했는데 그건 슬픈 게 아니라 감동을 받은 거였다. 화가 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영화 보다가 다른 생각이 문득 들어 화가 난 거였고, 겁은 나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부모님보다 오래 살게 될 내 모습에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 아마 초원이는 그 감정의 선을 확실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가슴이 콩닥콩닥, 혹은 벌렁벌렁 뛰는 것을 안다. 그리고 42.195킬로미터를 달려 보았다. 그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뛰어가는 것과 같다. 남들이 모르는 그 숫자 속 세상을 아는 초원이니까 아마 행복한 세상살기가 가능할 것이다. 기쁘고, 슬프고, 화가 나고, 겁이 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