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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블루스
김종광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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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마을에 마실 갔다가 돌아오는 차편은 전철이었다. 전철을 따라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왠 할머니가 커다란 비닐봉다리를 끌고 다가왔다. 무엇인가 팔려는 모양새였다.
어머나, 그건 뻥튀기였다. 옥수수 튀밥이랑 내 얼굴만한 뻥튀기랑 주렁주렁 이고 와 전철 안에서 그것들을 팔았다.
전철 안에서 뻥튀기를 파는 꼴을 처음보았거니와,(이건 기차가 아니란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서서 당당하게 "꼬순 깡냉이 사잡숴, 으잉?"하고 강요하는 할머니에게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김종광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소설책을 들고 흔들어 보았다. 소설에서 왠 할머니 하나가 튀어나온 줄 알았던 것이다. 너무 열심히 책을 읽다보니 내가 미친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을 때, 할머니는 다음 칸으로 강냉이 팔러 떠나고 없었다.
김종광의 소설에서는 '1호선에서 뻥튀기 파는 할머니'같은 난데없음이 있다. 그 뜬금없음이 되려 눈길을 사로잡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차마 내치거나 함부로 비웃을 수 없는 정다움 같은 것도 갖고 있다. 한광주리 가득 채워 온종일 오물거리고 싶은 깡냉이, 그의 소설은 그런 맛이다.

1. 발가락이 닮았네
그가 이문구와 성석제를 닮았다고? 그 이야기는 그를 인터뷰 해 간 신문이나 작가 평론만 뒤적거려봐도 언제나 나오는 이야기다. 지 입으로도 스스로 "김소진의 사회에 대한 성찰과 성석제의 홀린 듯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나 닮았다. 아니, 닮고 싶어.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
그와 성석제는 어떻게 다른가. 성석제는 머리통을 갈겨주고 싶을 정도로 뻔뻔스런 괴물이다.
그와 이문구는 어떻게 다른가. 이문구는 산과 물과 자연 그 자체다.
그에 비하면, 굳이 비하자면, 김종광은 덜 곰삭은 맛이 난다. 덜 익은 것은 당연히 맛이 덜할 수 밖에 없다. 그보다 덜 뻔뻔스럽고 덜 자연스럽다.
언급된 그 두 작가 미스터 빈이라면, 김종광은 아직 짐 캐리다.
짐캐리는 진짜 바보가 아니라 바보같은 삶을 즐기는 현대인이다. 반면 로완 애킨슨의 빈은 진짜 바보다. 타인을 조롱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가 타인의 웃음 거리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아직 그는 젊다. 파릇파릇한 삼십대 초반이다. 그에 비하면 마흔 셋의 성석제는 늙었다(슬프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이문구는 벌써 고인이 되었다. 그에게 비장의 카드가 있다면, 그것을 '젊음'과 '가능성'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덜 익은 것은 언젠가 저절로 익기 마련이다. 썩지만 않는다면, 제대로 맛이 나게 된다.

2. 아홉 개의 단편으로 남은 당신
참 재미난 소설집이다. 간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끼들끼들 웃었다. 사족이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얼굴로 연기를 한다. 어떤 내용을 읽고 있는지가 고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내 표정만 보면 <목화밭 엽기전>을 읽고 있는지,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를 읽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참 많이 웃었다. 웃다가 굳어지기도 여러 번, 솔직히 하품도 일곱 번 정도 했다.
<모내기 블루스>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가 이야기'꾼'이자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단편이 아닌가 싶다. '대충' 웃기는 놈이 아니라 '제대로' 웃기는 놈일세, 짐작하게 만든다.
<노래를 못하면 아, 미운 사람>은 81년 부터 98년도까지, 8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의 세대를 이삼년 단위로 잘라먹고 있다. 그 동안 대통령이 바뀌고, 데모가 일어나고, 어디선가 청춘이 떠나고, 우후죽순 거리에는 노래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도 기억한다. 노래연습실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는 데 겁이 덜컥 날 정도였다. 온통 노래방의 숲이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에서 슈퍼나 비디오 가게는 전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 바람은 그 후에 피씨방으로 이름을 바꿔 한번 더 불어온다)
노래 부르기를 강요하는 사회. 사실상 흥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러야만 하는 사회. 그것은 자유가 사라진, 주체적인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다.
<윷을 던져라>는 보이는 소설이다. 늙은이 편 젊은이 편으로 나누어 윷을 던지는 장면이 훤히 보인다. 마을 회의도 보이고 숲길도 보이고 노인네들 주름살도 보인다.
<언론낙서백일장>에 대해서는 나 할말 많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할말이 없다. 단지 소설 속의 문구를 빌어 '낙서, 아무나 쓰는 게 아닌디' 라고 하겠다. 나는 이 소설에서 김종광이 좀 더 과감해지지 못한 이유를 생각했다(같은 책<서점, 네시>에서 선배들의 소설 제목을 주루룩 달며 '씨발'을 고명처럼 얹어놓던 그가 아닌가!)
발상 자체가 '유치하다'는 혐의 역시 벗어날 수 없다.
<서점, 네시>는 혐오스럽다. 인간이 없다, 이 소설에는. 강간이 없는데 강간이 있다.
그 서점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히 무시되었다. 인간성 자체가 말살되어버린 공간이 하필이면 '서점'이다. 수많은 이야기꾼들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뇌한 흔적들 속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근자근 짓밟는다. 삶은 처연한 문학이나 한권의 소설책이 아니라, 폭력이다. 무차별하게 가해지는 폭력에 불과하다.
<당구장 십이시>는 산만하다. 산만함의 극치다. 그의 소설은 자칫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의 첫번재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에 수록된 <많이 많이 축하드려유>의 경우에는 등장인물만 30명이 넘는다. 입이 딱 벌어진다. 도대체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머지 세 소설은 같이 묶어도 되겠다. 의심받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귀찮아서가 아니다. 나머지 세 녀석은 같은 테마를 다르게 다룬 소설,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실직과, 월급미납과, 찌찔한 사회 구조와 노동협동조합이 그 테마다. 사회는 이토록 냉정하다. 사회는 '열쇠가 없는' 문이고,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삭막한 '서울'의 겨울인데다가 곧잘 '배신'까지 때리곤 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의 삶은 어찌나 궁상맞고 초라한지 꼭 나를 들킨 것만 같다. 나도 한달에 이십만원짜리 월급 받으면서 일 할때 여섯 달 밀렸었다. 그것도 모으니까 백만원이 넘긴 하더라마는.

3. 71년생 종광이
개인적으로는 참 흡족했다. 간만에 등장한 물건이다, 싶다. 재미있었고, 발랄했고, 깜찍했고, 가끔은 무섭거나 숨이 막히거나 긴 한숨을 토해내게도 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솜씨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내게 주었다.
농촌, 80년대, 사회 속의 개인.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가지 테마. 아마도 그는 이것들을 평생 애물단지처럼 글 속에 이고지고 갈 생각인가 보다. 그러다보면 그 속에서 사금처럼 가라앉는 다른 이야기들이 반짝일 것이다. 기대가 크다.
간만에 괜찮은 뻥쟁이 하나 발견했다. 속을 때 속더라도 지금은 그의 뻥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촌구석에서 일어나는 노인들의 일상이어도 좋고, 데모하던 시절이거나 월급 못 받은 서러운 토로여도 좋아. 내게 이야기를 들려줘 봐.
어디 내게 한번 뻥을 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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