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기억력이 좋기도 하지..
아까 낮에 점심시간에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네이트온으로 쪽지를 보냈는데 확인 바란다고. 보니까 모르는 번호라서 그냥 무시하고 있었는데 방금 조카가 네이트온으로 할말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 봤더니 쪽지가 와 있었다. 혹시나 해서 클릭을 했더니 이렇게 적혀있다.
안녕하세요. ***님. 혹시 **유치원 나오지 않으셨나요? **초등학교 앞에 있는.. 맞으시다면 저와 유치원 동창이시네요. 제 이름은 ***입니다.
햐. 누군지 몰라도 기억력한번 끝내준다. 초등학교 동창도 가물거리는 판국에 유치원 동창이라니. 그걸 기억하고 있는것도 신기했지만. 더 신기한건 유치원때 사진을 빼면 그때의 기억이라고는 등때기에 난 잔털만큼도 기억에 없는 나였다. 정말이지 내가 유치원을 다니긴 한걸까 싶었다. (하나 기억난다. 노란 유치원 가방과 노란 빵모자. 난 그 모자 되게 싫어했었다. 턱 고무줄 땜에 늘 토할것 같았다.)
이름을 보아하니 남자인데. 나를 어찌 기억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답장을 남겼다.
네. 이름도 유치원도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성함이 영 낮설어서요.
이렇게 보냈더니 댐시 또 답장이 온다. 그 답장의 내용인즉슨. 유치원때 그쪽과 나는 되게 친했단다. (난 전혀 모르겠다.) 자기에게 누나가 있는데 그 누나도 나를 기억한다나? 하긴 내 이름이 어디 한번 들으면 잊혀질 이름이여야 말이지. 우리 아버지는 딸네미가 평범해빠져서 다른 일로는 타인의 뇌리에 각인될 일이 천지 없다는걸 예감이라도 하셨던건지 하여간 이름 하나는 기똥차게 지어놓으셨다. 아무튼 그리그리 하여 초등학교마저 같이 들어갔고 그쪽은 4학년때까지 다니다가 전학을 갔다고 한다. 초등학교때는 한 반이 된적이 없었고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간에 기억이 전혀 나질 않으니 좀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자주 놀러가던곳, 내 특징까지 다 기억을 하고 있는데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었다고 기억을 한단다. 세상에 지금 보면 기절하시겠군.)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가방과 빵모자가 전부이니... 심지어 그쪽집이 그 동네에서 갈비집을 해서 내가 몇번 놀러가기까지 했다는데 말이다.
뭐 기억이 전혀 없긴 하지만 그쪽에서 동창이라고 우기니 믿을 수 밖에. 나이는 나랑 동갑이고 결혼은 일찍 했단다. (스물 다섯에 했다네)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그저 평범하게 산다고 했다. 나는 기억해주어 고맙다. 나도 회사원이다. 아직 결혼은 안했다. 등등의 얘기를 대강 적어서 답장을 보냈다. 나도 그쪽처럼 뭔가 콩딱지 만큼이라도 기억이 나면 좋겠지만. 무슨 기억상실증에 걸린것 처럼 머리속이 하애서 당최 적을것이 없었다. 그는 불손한 의도는 전혀 없으며 혹시나 자기가 연락을 해서 기분이 실례가 되었다면 가감없이 얘길 하라고 했다. 난 뭐 그럴것 까지는 없다고. 이름이 원채 특이해놔서 이런일 왕왕 겪는다고 그러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용기를 얻었는지 혹시 시간이 괜찮으면 오늘 저녁을 사고싶단다. 그래서 나는 죄송하지만 선약이 있다고 했다. (선약은 당연히 없다.)
찾아준 동창이 여자였다면 한번쯤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겠지만. 남자라니 별로 관심이 없다. 더구나 유치원 동창을 새새하게 기억하고 찾아내는 자잘한 성실함이란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근데 정말이지 그쪽은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걸까? 심지어 재롱잔치에 왔던 우리 엄마,아빠에 내 여동생까지 다 모조리 기억을 하고 있었다. 정말 기억력이 좋기도 하다. 뭐 한편으로는 부러운 감도 없잖아 있다. 기억할만한 유치원 동창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난 아무도 기억에 없다. 아. 아니다. 나도 한명 있구나. 이름이 김샛별이었던 아이. 내 이름도 신기하지만 너도 참 만만치 않구나 싶어 측은하기까지 했었다. (당시 이름이 신기하면 다 측은했음) 샛별이란 애는 까맣고 되게 마른 애였는데 눈은 겁나게 반짝거리는 애였다. 지금 생각하니 이본이 어렸을때 그렇게 생겼겠다 싶다. 음... 찬찬히 떠올리니 나도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군. 유치원 동창이라. 참 오래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