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오늘 아침

평소의 내 기상 시간은 9시 5분과 10분 사이이다. 10시에 출근인걸 생각하면, 꼴에 씻고 찍어바를것이 많은 여자라는 점에 도시락까지 싸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간당간당한 기상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저기서 잠시라도 지체를 하면 지각은 따 놓은 당상이다. 따라서 옷을 뭘 입을까 혹은 신발과 가방은 어떤걸 하고 나갈까를 고민하면 절대로 안된다. 그저 그 전날밤에 벗어놓은 옷을 대강 주워입고 나가야 한다. 저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나는 전날 밤에 몹시 준비한다. 가방을 미리 챙겨놓고 도시락 반찬은 미리 만들어두고 샤워를 하면서 머리까지 감아둬야 한다. 아침에 반찬을 하고 긴 머리를 감고 말린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한시간쯤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까.

나는 언제나 알람을 8시 30분에 맞춰둔다. 그러면서 10분씩 뒤로 미루며 아직까지 3번이나 더 그짓을 하면서 잘 수 있음을 만끽한다. 남들은 차라리 그냥 스트레이트로 자지 왜 저려냐고 생각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직도 10분이나 더 잘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자는게 더 좋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오늘 아침이 그런 날이었다.

눈뜬 시각은 7시 40분. 아직까지 1시간 25분에서 최대 30분까지 잘 수 있는 시간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어쩐 일인지 다시 잠이 들지를 않는다. 8시대도 아닌 7시대에 일어나다니. 스스로 기특해 죽겠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잠이 오질 않아 억울하다. 20분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뒤척거리다가 결국 포기를 하고 머리맡에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요즘 내가 읽고있는 책은 이해경의 '그녀는 조용히 살고있다' 라는 책이다. 1시간 동안 책을 읽다가 9시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도시락 밥을 푸려다가 말고 오늘은 직원중 한명이 점심을 쏜다며 도시락을 싸오지 말라는 얘기를 기억해내고는 다시 밥주걱을 수저통안에 넣고 도시락통도 싱크대에 넣는다. 10만원 저금 통장이 어제부로 60만원 가까이 채워졌으므로. 그 중 50만원을 빼서 정기예금을 하기 위해 예금통장과 저금 통장. 현금카드를 챙기고, 읽던 책을 넣고 피부를 위해 먹는 멜라클리어 6알을 약통 (어찌나 머리가 나쁜지 회사에 약을 통째로 두고 먹으니 먹은지 안먹은지 당최 기억이 안나서 3칸으로 나뉘어 시간마다 삐삐 울리는 약통에 따로 넣어서 다닌다. 머리가 나쁘면. 언제나 그렇듯 가방이 무겁다.) 에 넣었다가 다시 아침 분량인 두알을 꺼내서 아침에 주스랑 함께 마신다. 델몬트 콜드를 마시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라앉는 찌꺼기의 걸죽함이 싫어서 아침에 주스로 바꿨는데 이것도 슬슬 질린다. 어디 맛있는 오렌지 쥬스 없을까? 회사에서 마실 자스민 티백을 5개를 챙기고 핸드폰도 넣고 마지막으로 동전 지갑을 열어서 토큰의 갯수를 확인한다. 한개가 들어있다. 지갑에서 4천원을 꺼내어 코트 주머니에 넣는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 토큰 5개를 사야지. 얼마 안있으면 국민은행 체크카드에 교통카드 기능도 추가가 가능하다니 그때가 되면 이짓도 끝이다. 그럼 동전 지갑은 왜 샀을까? 그때 딴걸 골라서 사달랠껄 그랬다. 뭐 이를테면 목도리 라던가. 코모도에서 본 파란색과 흰색의 굵은 실로 짠 목도리가 이쁘던데...

오늘은 일찍 일어난 기념으로 얼굴에 파우더라도 발라주기로 한다. 평소에는 이 얼굴에 용감하게도 노메이컵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손가락 3개의 넓이 만큼이 이상적인 이마 넓이인데 나는 무려 손바닥을 다 올려놓아야 겨우 이마가 가려지는 주제에 앞머리도 실핀으로 띡 꼽고 다닌다. 앞머리를 내리려면 아침에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실핀 꼽은 모양새는 내가 봐도 좀 너무한다. 햇살좋은날 길가다 날 마주치면 상대는 내 얼굴을 똑바로 처다보지 못하리라. 이마가 좀 넓게 번쩍여야 말이지. 세수를 하고 (우유가 떨어져서 우유세수는 못했다. 파스퇴르가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비싸서 목구멍으로 넘겨야지 얼굴에 처바를게 못된다.) 거울앞에 앉아서 스킨 로션 수분크림을 바른다. 안티에이징 에센스와 화이트닝 에센스가 떨어진지 오랜데 살 엄두가 안난다. 그것들은 집었다 하면 개당 12만원은 가볍게 넘겨주신다. 간만에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고 파우더도 두들겨준다. 확실히 화장품을 발라서 번들거리던 피부가 다시 새수를 막 마쳤을때의 뽀송함으로 돌아간다. 파우더만 발라도 이지경인데 완벽한 메이컵을 하면 실제의 나와 얼마만큼 공백이 생길까 생각하니 잠시 아찔하다. 내친김에 눈썹도 그려주자. 우리집안 여자들은 대대로 눈썹이 별로없다. 남들처럼 자유자재로 눈썹을 그리기 위해 밀어낸게 아니라 원래 숱이 적다. 연예인 중에는 변정수가 눈썹이 그렇게 없다지? 저번에 친구 메이컵할때 따라간 청담동의 유명한 메이컵 아티스트가 날 보고 그랬다. '어머 변정수씨만큼 눈썹이 연하네' 눈썹과 메이컵을 마치고 얼마전에 맞춘 안경을 낀다. 원래는 안경을 끼지 않고 렌즈를 끼지만 1회용이라 그 비용이 가히 눈이 뒤집힐 만큼이라 큰맘먹고 안경을 하나 했다. 안경테는 거의 졸도할 만큼 비싼걸 했다. 그러나 안경이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내 얼굴에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유일한 테였으므로 망설이고 자시고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끼고 다니면 1회용렌즈 4개월치 값은 훨씬 더 빠질테니까. 안경을 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되게 똑똑해 보인다고 자부해본다. 난 안경낀 사람은 무조건 다 똑똑해 보이더라.

회색 면바지에 흰셔츠와 까만 V넥 니트를 입고 초록색 머플러를 맨다. 어제밤에 이미 다 생각해놓은 코디다. 약속도 없는데 이러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옷을 미리 챙겨뒀다. 양말을 두개 껴 신은 다음 세탁소에서 찾아온 더플코트를 입고 (파란색 롱코튼 너무 오래 입어주셔서 실실 지겹다.) 그 위에 다시 회색 털 목도리를 두른다. 잘 두르면 코와 입은 물론 양쪽 귀까지 다 커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까만색 울 장갑을 끼고 가방을 들고 주머니에 동전 지갑과 아침에 넣은 4천원을 확인한 다음 열쇠를 집어들고 집을 나선다. 나서자마자 찬바람이 확 끼친다. 오늘도 겁나게 춥겠구나. 빨리 뛰어가서 토큰을 산 다음 잽싸게 버스가 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