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비타민
얼마전 장을 보러 이마트에 갔었다. 평소 가던 이마트가 아닌. 좀 산다하는 동네에 있는 이마트였는데 (어쩐 일인지 지방 소도시인 이곳도 점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섬에따라 서울처럼 사는동네 덜사는동네가 나뉘고 있다. 슬픈일이다.) 거기에는 이마트 안에 유기농 코너가 따로 있었다. 이름이 올가였던가? 아무튼 올 머시기 였는데 그 안에 들어가자 눈알 빠지게 비싼 야채와 온갖 건강보조 식품들이 즐비했다. 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그저 사는 사람들이 어떤거 먹고 사나 구경이나 해보자 싶어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무농약, 유기농. 이런거 먹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비싸면 비싼만큼 그 값을 하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허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저돈 주고 콩알만큼 무농약 유기농 방울토마토를 먹느니 몇걸음 걸어가면 쌓아놓고 한보따리 주는 방울토마토를 배불리 먹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는 질보다 양이다.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약병들이 즐비한 코너로 들어섰다. 그때 내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타민 약병이었다. 순간 봄날에서 겁나게 뽀얗고 좋은 피부로 서른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고현정이 피부관리를 위해 늘 비타민을 빠지지 않고 챙겨먹는다던 기사가 확 떠올랐다. 비타민의 가격은 무려 7만원이었고 3개월 분량의 90알이 들어있었다. 얼른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달에 2만3천원 이며, 약 한알은 무려 780꼴이었다. (실은 뒤에 알약은 방금 계산기로 계산했다.) 한달에 2만 3천원이면 적은돈은 아닌데 차라리 저 돈으로 비타민이 풍부한 오렌지며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등을 푸지게 사먹는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다. 그건 귀찮고 또 매번 챙겨먹기도 힘드니까 약의 형태가 더 났겠지? 만약 과일로 충분하게 해결 가능하다면 고현정이 뭣하러 비타민제를 먹었겠어? 등등등.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스파게티 접시를 쏟은것처럼 생각에 생각이 얽히고 꼬이기 시작했다.
알라딘에는 마태우스님이라고 의대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 분께서 서재에다 비타민제를 먹어야 한다고 떠드는건 다 제약회사의 로비 때문이며 일정 이상의 비타민들은 어차피 소변으로 다 배출된다는 글을 여러번 쓰셨더랬다. 그래서 그때는 '그래, 제약회사의 농간에 넘어가지 말고 그저 먹던거나 잘 먹자' 했었는데 막상 갈색 약병을 앞에 두고 보니 또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어쩐지 저 비타민을 챙겨먹으면 나도 고현정처럼 뽀얗고 매끈한 피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비타민은 피로회복에도 좋다던데 아님 피로라도 안쌓이겠지 하면서 계속 내 마음은 약병을 향해 달려갔다. 요즘 나는 멜라클리어를 먹고 있는데 그게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 어쩌면 내가 마음속으로 이 약을 먹으면 피부가 좋아질꺼라고 (즉 플라시보효과 되겠다.) 믿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저 비타민도 사서 먹으면 최소 플라시보 효과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7만원이라는 거금앞에서 굴복을 하고 (카트기 가득 장을 본게 7만원인데, 저 약병 하나를 7만원주고 사야하나 싶었음) 그냥 그 매장을 쓸쓸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집에와서 생각을 하고 회사에 앉아서 생각을 해도 하나 먹어줘야하나 싶은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아는 친구에게 친분이 있는 피부과 의사에게 전화를 해서 제약회사와의 관계따위는 깨끗이 잊고 정말 솔직하게 필요가 있는지 없느지 말해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다.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면 사는거고 아님 마는거다. 그래 그렇게 결정하도록 하자. 가끔 난 왜 이렇게 인간이 우유부단할까 싶을 정도로 어떤 문제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심하게 망설이는데 지금은 비타민 문제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