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유부남과의 연애

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결혼을 한 남자에게 이성적으로 끌려본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주변인들 중에서는 저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것은 유부남과 연애를 하는 그녀들이 굳이 그 유부남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남자를 사귈 수 있는 꽤 괜찮은 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유부남과 사귀는 미혼 여성들은 어딘가 조금 모자라거나 떨어진다는 싶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즉 유부남을 사귈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처지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내가 제일 처음 유부남과 사귀는 것을 본 사람은 디자이너 K였다. 그녀와 나는 일때문에 만났고 (당시 나는 신문기자였는데 나와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랑 손발이 안맞아서 내 코너만 따로 디자이너를 고용해야 했다.) 그녀의 능력은 그쪽의 또래중 최고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는 세살이 많았지만.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고 일로나 일이 아닌 일로도 자주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방송국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거기서 나는 유부남 디제이 M을 알게 되었다. M은 예전부터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어느날 M의 코너에 내가 투입되었고 우리팀은 자주 회식을 했다. 그날도 팀회식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취한 M은 전화로 애인을 불러내는 눈치였다. M이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다는걸 알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을 그냥 모른척 했다. 잠시 후 우리가 술을 마시는 장소로 한 여자가 들어섰는데 나는 그녀가 한눈에 K임을 알아봤다. 나는 K가 들어오는 순간 일어서서 화장실로 갔다. 인사를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척을 하기도 그렇고. 아무튼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화장실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K가 전화를 했다. 자기땜에 많이 놀랐냐고. 그리고 아는척을 하건 모르는척을 하건 내가 결정하라고 했다. 자기는 아무 상관없다고. 나는 화장실에서 그녀를 아는척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날 처음 본 척을 할건지 몹시 망설였다. 그 망설임의 이유는 사실 그녀를 위한 배려라기 보다는 내 이미지 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유부남과 사귀는 여자와 친구라는 선입견이 생길것이 걱정되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인사만 하고 급한일이 있는 것 처럼 빠져 나와버렸다. 비록 아는척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끝까지 초면인척 하면서 연기를 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내 주변의 멀쩡한 여자들이 유부남을 사귀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남자들이 무지하게 매달리고 애원해서 사귈꺼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 시작이야 유부남쪽에서 숙이고 들어가지만. 일단 사귀기만 하면 상황은 금방 역전이 되어서 여자들이 매달리고 난리였다. 가끔 남자들이 그녀들에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전부 이해해라. 다 알고 시작했지 않느냐 따위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둘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했다. 보통 여자들이 남자를 사귀면서 할 수 있는 것들도. 유부남을 사귀는 그녀들에게는 너무나 애를 쓰거나 아니면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들 천지다. 그런데 참 이상한것은 상황이 그렇게 지랄스러우면 지랄스러울수록 그녀들은 자기의 사랑을 더 애틋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눈으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남자는 챙길꺼 다 챙겨가면서 (가정) 재미까지 보는데 (그녀들과의 연애) 그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늦게 만나서 이렇게밖에 사랑할수 없을 뿐이지 그의 와이프보다 자기를 먼저 만났다면 와이프의 자리에 자기가 있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하지만. 내가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을 보면 백이면 백 다들 상대방 여자가 특별해서, 혹은 그녀이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바람을 피울 뿐이고 그 상대가 그녀들일 뿐이다. 그녀가 아내가 되면. 역활만 바뀔뿐 상황은 똑같다.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와 바람을 필 것이고 그 상대는 그녀들이 아니다.

미혼인 애인을 사귀는 유부남들은 절대로 자기 가정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언뜻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만큼은 지켜야한다는, 도덕적으로 참 바른것 같이 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애낳고 빨래하고 밥해주고 돌아올때까지 집을 지킬 아내도 필요하고 가끔 만나서 짜릿함을 즐길 수 있는 여자도 필요할 뿐이다. 자기와 함께 살고 자신과 함께 만든 애를 낳느라 이제는 더이상 여자이기 보다는 엄마와 아내로 변해버린 여자를 최대한으로 짓밟는거다. 단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 할 뿐. 나는 그들에게 과연 죄책감이란게 있는지 궁금하다.

유부남과 사귀는 그녀들은 희생적이다 못해 착한여자 컴플렉스까지 있다. 물론 제대로 착하다면 아내를 둔 남자를 사귀어서 그 아내를 슬프게하는 일 같은건 안하겠지만. 그들의 착한여자 컴플렉스는 오직 그 남자에게만 향해있기에 가능하다. 그녀들은 어찌나 말도 잘 듣는지 남자가 집에 귀가하고 나면 절대 전화하지 않고 전화를 하더라도 번호가 남지 않도록 전화를 한다. 거기다 그 남자의 주변인들. 특히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불려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남자가 가정에 돌아간 이후 전화하지 않는것을 남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 스스로 미화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단지 그 남자가 바람을 쉽게 그리고 들키지 않게 피울 수 있도록 완벽한 보조를 맞춰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남의 가정이 지켜지길 바란다면 그의 옆에 그녀는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게 안되니 이거라도 라고 말하지 마라. 직장동료나 친구들이 있을때 부르는 것을 그 남자가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고 남에게도 역시 알리고 싶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모습을 여러번 목격한 나로써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녀들을 부르는 이유는. 내 진짜 사랑은 이것 이라며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바람피는 능력있는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 주변인이라는 인간들은 전부 그들의 집에 가서는 그의 아내에게 형수님 형수님 하면서 또 그녀들 앞에서도 똑같은 짓을 한다. 아무도 그녀들을 힘겹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들이 돌아가고 나면 그는 능력있는 남자가 되고 그녀들은 유부남을 사귀는 골빈여자가 될 뿐이다.

그들에게 밥이 아내라면 그녀들은 빵이나 라면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대부분의 경우 그녀들은 빵이나 라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녀들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면 남자는 분명 밥과 헤어지기를 시도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헤어짐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겠지만. 들여다보면 결국은 복잡해지고 싶지 않고 비난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이다. 정말 사랑에 미처버린다면 그들은 그렇게 가정적이지 못하다. 그들이 가정적일 수 있는 것은 그녀들에게 미치지 않았고, 그녀들에게 미치지도 않았으면서도 만나는 것은 가끔 빵이나 라면을 먹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어쩌다 유부남을 사귀는 여자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녀들은 그들이 굉장히 가정적인 남자임을 강요한다. 그건 곧 자신과의 연애가 사랑이지 바람은 아니라는 얘길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의 가정에 대해 과연 뭘 알고 있을까? 와이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일을 하는지, 애들은 몇살이고 성별은 뭔지 그리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런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정말 그 가정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안다고 해도 그건 남자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일방적인 얘기이며 그건 남자만의 진실이지 그 사실에 대한 진실은 아니다. 가끔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나는 도덕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건 아니다. 다만 그녀들이 불쌍하다.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어리석을 수 있는 건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누군가에게 이용되는 자신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안타깝다.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그 안에 사랑이 자리잡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말이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남자도 너 말고도 바람피운 경력이 숱하게 많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 처음이라고 한다. 너이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 것이지 너 이전과 이후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있는가? 그에게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람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저 바람을 피울 뿐이고 그 상대가 그녀들일 뿐이다. 거기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녀들에게 단 한번도 여기에 쓴 것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들의 얘기를 들어줄 뿐이다. 어차피 사랑이란게 그렇듯 이성적인 판단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러므로 괜히 입아프게 충고랍시고 주절주절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그녀들이 제발 스스로 좀 알았으면 좋겠다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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