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묻지마, 이유는.
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적인 것, 평범한 것에 반대하는 말은, 반항이었다. 오래전에.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이젠 그 말도 옛스럽다. 하고싶은 대로, 내키는 대로 사는 삶이 있을 뿐이다. 그런 삶에 대해 손가락하지 말기, 아예 관심도 두지 않기. 각자 알아서 잘 살기. 그렇게 그렇게... 

정확한 이름도 모르고, 정확한 나이도 모르는 남자 아마와 여자 루이가 함께 산다. 아마는 루이를 사랑하고, 루이는 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 사이에 문신과 피어싱을 하는 시바가 있다. 어느날 아마는 루이를 희롱하는 사람을 죽도록 두들겨 팬다. 루이는 아마를 닮은 "빨간 머리" 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기사를 보게된다. 루이는 아마의 머리를 염색해주고, 아마의 차림새를 바꾸려 한다. 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마가 행방불명 되었다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을 때 그제야 루이는 아마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며 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심적, 물질적으로 시바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결말로 소설은 끝난다.

세사람에게는 피어싱과 문신이 공통점이다. 스플릿 텅 (신체개조, 혀에 피어싱을 하고 구멍을 점차 확장시켜 뱀처럼 끝을 둘로 나눈 혀)을 한 아마. 아마처럼 점점 구멍을 확장시키는 루이. 피어싱을 해주는 시바. 시바와 루이는 아마 몰래 가학적 성행위를 한다. 아마 앞에서는 시치미를 떼지만.   

아마의 말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분위기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갔다. 나를 위해 다른 남자를 죽일 듯 패준 남자와 나에게 강한 살의를 지닌 남자. 언젠가 이 두 사람 중 누군가에게 죽을 날이 있을까.

그들이 왜 그렇게 사는 거냐고 물음표를 달 필요는 없다. 그들은 지금 놓여 있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내가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 건 루이가 결혼을 생각할 때 였다. 결혼이란 그렇지 않은가. 제도권 속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터널인데, 아마의 사랑 때문이었는지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는 루이. 그들이 기성 사회에 대한 반항을 한다거나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남달라 보이기 때문에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편견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산다. 스플릿 텅이 좋고, 기린과 용문신이 좋고, 그걸 몸에 뚫고, 새기고 신체개조를 하고 싶다.

모든 인간은 M과 S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내 등 뒤에서 춤추는 용과 기린은 이제 나를 떠나지 않는다. 서로 배신할 수도, 배신당할 수도 없는 관계. 거울에 비친 그들의 눈동자 없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이 녀석들은 눈동자가 없으니 날아가지도 못한다.

<M은 Maria의 M / S는 Savage의 S 혹은 Saddist다. >

결혼과 소유의 관계망을 생각하던 루이의 독백은 루이가 그렇게 '날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긴 하지만,  충고나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등에 새기는 문신을 떠올리는 루이는 그렇게 사는 것이 싫지 않고, 나쁘지도 않은거다. 부정과 긍정의 틈에 끼어있다고 할까. 물에도 기름에도 섞일 수 없는, 섞이기 귀찮은 부유하는 인생.

초등학교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간결한 문장,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서사, 무라카미 류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만 하다.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이 가까운 블루"가 간간이 떠오른다. 연애소설은 나이가 든 다음에 쓰는 거라는데, 연애를 하는 중에도 쓰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도대체 나를 두고 어떻게, 어떻게 나를 두고 갈 수 있어? 눈물이 멈추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턱이 아파오도록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뚝, 하고 입 안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혀로 입 안을 더듬어보니 충치였던 어금니가 빠져 있었다. 나는 빠진 이빨을 씹어 으깨 그대로 삼켰따. 내 피와 살이 돼줘. 뭐든 전부, 내가 되면 돼. 뭐든 전부, 내 속에 녹아버리면 돼. 아마 너도, 내 속에 녹아버리면 좋았잖아. 내 속에 들어가 날 사랑하면 좋았잖아.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릴 바에야 내가 되어버리면 좋았잖아. 그랬으면 나는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텐데.

루이의 독백은 아름답다. 그녀의 젊은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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