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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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골동양과자점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장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바깥쪽은 부드러운 초콜릿 케이크지만, 한 입 먹어보면 입안에서 퍼지는 새콤함!! 레몬과 초콜릿의 멋진 조화에 손님들도 놀라실 겁니다. 화이트 초콜릿과 피스타치오 페이스트의 그린 데코레이션도. 저희 가게만의 여름 특별 상품이랍니다.
여름은 위대했다고 장미의 시인 릴케는 말했다. 케이크 전문점 앤티크에는 위대했던 여름을 보낸 네 남자가 운영하는 가게다. 여기서 여름이란 그들의 특별한 인생체험기다. 그들에게는 모두 벗어날 수 없는 아픈 과거가 들어있다. 공간 설정부터 뭔가 좀 특별해보인다. 상권, 유동인구등을 따져서 잘 나가는 가게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과 그들은 좀 다른 것이다. 앤티크는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오다가다 한 번씩 들러 단골이 되고야 마는 특별한 가게 가족들의 "체험 -극복하는 삶" 스토리라고나 할까...
앤티크의 주인 타치바나 부터 살펴보자. 그는 재벌가의 외손주로 어린 시절에 유괴당한 적이 있다. 유괴범은 그에게 달콤한 케이크만 먹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망쳐 온 그는 유괴범을 스스로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친구, 천재 파티셰 오노 유우스케는 "마성의 게이"라고 불리는 호모다. 타치바나와는 고교동창생.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자보단 남자가 좋았던 그는 자신이 처음 사랑했던 남자, 중학교때 담임선생님과 엄마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엄마를 증오한다. 역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노를 사부로 떠받드는 칸다 에이지는 전직 복싱선수다. 이기기만 하면 되는 복싱에 도전하였으나 망막바리 (망막이 그 아래층의 맥락막에서 떨어져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병) 때문에 포기한다. 치카게는 타치바나를 도련님으로 모시는 충복.
그들이 만들어내는 현란한 케이크는 차마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지만, 늘씬하게 상품 설명을 하는 타치바나를 보노라면 아몬드가, 레몬이, 아이스크림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꺼내놓게 되면 절절하게 아플 꾸러미를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한 순간을 사로잡고 있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면서 조금씩 그때의 일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에서 벗어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여전히 무섭지만 이미 달콤한 케잌을 만드는 일처럼 상처도 내 생에 자리를 잡고 말았다. 잊는다는 말 처럼 무모한 말은 없다.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안겨준 것이라면 더더욱 그 말은 무용지물. 마음의 상처가 된 것을 잊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곱씹어 되뇌이고 나를 괴롭히는 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거다. 그런거다, 라고. 또 악몽을 꿨네. 그렇네. 라고. 물론, 말은 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꾸 떨궈내려 하면 할수록 더 괴로운 것을. 피할 수 없을 바에는 부딪치라고 했던가. 앤티크 케이크전문점의 남자들도 그렇게 잘 살고 있는데...
요시나가 후미의 노력이 돋보이는 4권의 마지막 페이지! 만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이런 요리법을 알게 되었을까 싶었는데, 아주 많은 요리 자료집들이 나열되있었다. 굉장한 노력파이며 야무진 만화가라는 걸 단번에 깨닫는 순간, 그녀의 다른 만화도 보고 싶어지는 걸... 만화도 따뜻하고, 인물의 대사도 따뜻한 건 모두 작가의 기질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작가는 작품에서 자신의 성향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